LIFESTYLE 전국부캐자랑

올해 방송가를 뜨겁게 달군 단어를 꼽는다면 단연 ‘부캐’다. 그런데 부캐란 사실 오래전부터 우리 일상 속에 항상 존재해왔다. 과연 지금 가장 뜨거운 트렌드며 나에게도 존재하는 부캐란 무엇일까.

2020.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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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프로듀서는 지미유다. 그는 올해 여름까지만 해도 혼성 그룹 싹쓰리에서 듣보를 맡은 유두레곤이었고 봄엔 치킨을 튀기는 닭터유였다. 작년 겨울에는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서 방송연예대상 예능 부문 남자 신인상도 탔다. 모두 유재석의 ‘부캐’ 이야기다.


바야흐로 대한민국은 부캐전국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 40주년을 맞이한 전국노래자랑을 변치 않는 모습으로 이끄는 94세의 송해조차 아리송해라는 부캐로 엠넷의 새로운 예능 <본캐 파괴쇼 부캐릭터 선발대회>에 출연한다니 말이다. 부캐는 원래 게임에서 사용하던 용어다. 본 캐릭터의 줄임말 ‘본캐’에 대응하는 단어로 부캐릭터의 줄임말이다. 이런 부캐라는 단어가 게임 밖으로 나와 곳곳에서 사용되고, 너나 할 것 없이 부캐들에 열광하기 시작한 것은 김태호 PD의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다양한 부캐 모습으로 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유재석의 부캐들은 등장하는 족족 화제를 모았고, 어느새 방송가에는 부캐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 잘나간다는 방송인 대부분은 부캐 하나쯤 가지고 있다.

그뿐인가 이들의 부캐는 본캐보다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예능인 김신영은 지난 5월 둘째 이모 김다비로 화려하게 데뷔하고, 이효리는 싹쓰리의 멤버 린다 G로, 비는 비룡으로 활약하며 오랜만에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까지 차지했다. 지금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1위 곡은 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의 부캐인 만옥, 천옥, 은비, 실비로 구성된 여성 그룹 환불원정대의 신곡이 차지하고 있다. 유재석의 부캐들이 탄생하기 전인 2018년 등장한 매드클라운의 부캐 마미손은 최근 다시 주목받으며 둘째 이모 김다비와 듀엣곡을 발표했다.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의 여성 멤버 박나래, 한혜진, 화사는 조지나, 사만다, 마리아라는 부캐로 금요일 밤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군다. 사실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지금 방송가에는 수많은 부캐가 존재한다. 이에 엠넷은 갤럭시코퍼레이션과 손잡고 부캐 전문 매니지먼트 (주)페르소나유니버스까지 설립했다.


부캐 열풍은 방송가에만 부는 것이 아니다. 최근 유튜브에서는 부캐로 이슈를 모은 유튜버가 있다. 바로 피트니스 유튜버 핏블리. 그의 부캐는 먹방을 선보이는 BJ 치즈볼이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격상하며 최근 오픈한 본인의 헬스장 운영이 중단되었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헬스장에서 먹방을 진행했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치즈볼에 보인 진심 가득한 반응은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고 급기야 BJ 치즈볼이란 부캐를 갖게 되며 사회적 거리 두기의 단계가 낮아진 지금까지 주말에는 먹방을 진행한다. 그 누구보다 유행에 민감한 마케팅 업계에서도 부캐란 단어는 매일같이 쏟아진다. 빙그레는 빙그레우스라는 부캐를 만들고 브랜드의 제품별로 다양한 부캐를 만들며 새로운 세계관을 들고 나왔다. 대상 청정원의 브랜드 미원도 부캐 흥미원을 이용한 패키지의 한정 판매에 나섰다. 심지어 몇몇 브랜드는 비주력 제품이나 신제품을 부캐로 포지셔닝하며 마케팅에 이용하기도 한다. 

 


사실 부캐는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존재한다. 김난도 교수는 <트렌드 코리아 2020>을 통해 ‘멀티 페르소나’란 개념을 제시하며 이를 시사했다. 멀티 페르소나는 쉽게 말해 한 사람이 갖는 여러 가지 가면이란 뜻이다. 멀티 페르소나는 사실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2020년에 들어 주목받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직업을 동시에 갖는 N잡러와 인터넷 네트워크와 모바일 상거래 시장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긱(gig) 노동자의 증가, SNS 세계의 몰입도 심화, 취미 생활의 중요도 증가와 취향 공동체의 발달 등으로 인해 인간 정체성의 복합성이 더욱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멀티 페르소나는 N잡러, 유튜버,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등 특정 직업군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인 나조차 인스타그램을 할 때 일상을 드러내는 계정과 개인적인 생각을 적는 부계정을 구분해 사용한다. 한때 참여했던 독서 모임에서는 직업과 나이를 밝히지 않는 규칙에 따라 사회적으로 규정된 나의 본캐에서 자유로워지며 의도치 않게 부캐를 갖기도 했다. 이처럼 우리의 부캐, 멀티 페르소나는 의도치 않아도 다양한 곳에서 서로 다른 성격과 방식으로 표출된다.


한 사람에게서 표출되는 다양한 자아인 부캐, 그렇다면 이건 한 사람이 다양한 인격을 지닌 해리성정체장애로 불리는 다중인격과는 어떤 차별점을 지녔을까. 한방신경정신과를 비롯해 다양한 진료과목과 특수클리닉을 운영하며 평소 부캐 문화를 예의 주시해온 더존한방병원의 이상훈 병원장은 이렇게 답했다. “해리성정체장애는 인격끼리 서로를 모르는 상태입니다. 즉 두 인격은 완전히 구분되죠. 부캐 문화와는 달라요. 우리가 부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나의 모습을 완전히 잊는 건 아니니깐요. 하지만 부캐에 매몰돼 나의 일상과 사회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라면 경계해야 합니다.” 부캐에 지나치게 심취하다 보면 각종 질병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본캐와 이질적인 부캐는 스트레스를 유발하기도 하는데, 이런 상황이 지나치게 지속되다 보면 가볍게는 소화불량, 두통, 불면, 근육통 등부터 시작해 심하면 불안, 초조, 불면, 공황장애, 우울감, 화병 등의 증세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해리성정체장애로 이어질 위험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상훈 병원장은 부캐 문화의 부정적 측면보다는 긍정적 측면을 강조했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정신적 문제를 안고 살아갑니다. 부캐는 이를 건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죠. 학창 시절 가수를 꿈꾸던 사람이 취미로 밴드 보컬이라는 부캐를 갖는다면 멋진 일 아닐까요? 다만 부캐는 일상의 작은 일탈 정도로 즐기는 것이 적당합니다.”


다시 방송가의 부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지금 불어닥친 부캐 열풍은 아직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후에 대해 예측해본다면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이다. 우선 지금의 수많은 부캐는 존재의 가장 큰 매력을 상실했다. 바로 신선함이다. 우리에게 특정 모습과 성격으로 이미지화된 기성 연예인이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을 부캐를 통해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이 많은 이들에게 어필했다. 유재석의 부캐들을 비롯해 대중의 큰 호응을 받은 부캐들이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는 기성 연예인이 고착된 이미지를 탈피하고 마치 새롭게 데뷔한 듯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 여기에 더해진 일명 세계관이라 불리는 상세한 배경 설정은 몰입감을 더했다. 그러나 시류에 따라 급하게 등장하는 부캐들은 상대적으로 세계관 설정이 약하며 기존의 부캐를 답습하는 경향을 보인다. 부캐끼리 자가 복제하는 느낌이랄까. 억지스럽게 부캐란 단어를 끼워 맞추는 많은 브랜드들의 마케팅 전략 또한 부캐라는 이미지 소모를 가속화하는 데 한몫한다. 원래 트렌드는 언젠가 시들기 마련이다. 일상생활 속 우리의 부캐는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고 사회의 변화 양상에 따라 더욱 다양하게, 그리고 자주 등장할 테지만 트렌드로 소비되는 방송가의 부캐 문화는 언젠가 잠잠해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트렌드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한다 쳐도 지금과 같이 지나치게 소모한다면 부캐 문화는 생각보다 빨리, 어느 날 갑자기 물거품처럼 소멸하지 않을까?    

Advice 이상훈 병원장(더존한방병원)
Reference <트렌드 코리아 2020>-김난도, 전미영, 최지혜 외 6명

 

 

 

더네이버, 트렌드, 부캐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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