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논란과 권위 사이, 2022 터너상의 최종 후보

영국에 기반을 둔 예술가에게 헌정하는 이 상은 어떻게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예술상이 되었나.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현대미술상이며, 동시에 예상을 뛰어넘는 도발적인 작품으로 종종 논란이 되는 화제의 ‘터너상’. 2022 터너상의 최종 후보, 이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2022.08.09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터너상 후보의 작품 전시가 열릴 테이트 리버풀. 우고 론디노네의 설치 작품과 어우러져 더욱 압도적인 모습이다. Ugo Rondinone, Liverpool Mountain, 2018. Photo: Ant Clausen 

2022 터너상 최종 후보로 선정된 신 와이 킨(Sin Wai Kin), Grade Ref Still 2 잉그리드 폴라드(Ingrid Pollard), Pastoral Interlude 1987 © Ingrid Pollard,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3 헤더 필립슨(Heather Phillipson), The End © David Parry PA Wire 4 베로니카 라이언(Veronica Ryan OBE), Custard Apple (Annonaceae), Breadfruit (Moraceae), and Soursop (Annonaceae), 2021. Commissioned by Hackney Council; curated and produced by Create London. Photo: Andy Keate. Courtesy the Artist,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and Alison Jacques, London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왜 영국에 기반을 둔 예술가에게 헌정하는 터너상을, 그것도 최종 수상자도 아닌 후보 발표부터 주목해야 하는가. 터너상의 역사를 알면 이유는 명확해진다.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 윌리엄 터너의 이름을 딴 ‘터너상’은 영국 현대미술을 후원하기 위해 테이트 브리튼의 주관으로 1984년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작가들이 이름을 올렸을까? 데이미언 허스트, 애니시 커푸어, 앤서니 곰리, 리처드 롱 등 오늘날 내로라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그 영광의 수상자. 이뿐인가. 터너상 후보였지만 당시 수상자보다 더 큰 이슈를 낳은 트레이시 에민도 빼놓을 수 없다. 2022 터너상 최종 후보로 선정된 작가 4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헤더 필립슨, 잉그리드 폴라드, 베로니카 라이언, 신 와이 킨이 바로 그들. 사실 터너상은 영국 최고의 현대미술상이라는 권위 뒤로 파격, 논란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어미와 아기 소를 포름알데히드가 담긴 유리장에 넣은 데이미언 허스트의 ‘분리된 엄마와 아이(Mother and Child, Devided)’, 침대와 콘돔, 술병 등이 난잡한 트레이시 에민의 ‘내 침대(My Bed)’는 이게 작품이냐는 비난을 받을 만큼 충격과 논란을 낳았다. 2022 터너상 최종 후보 4명은 우리에게 어떤 신선한 충격을 안겨줄 것인가. 이들의 전시가 10월 20일부터 2023년 3월 19일까지 테이트 리버풀에서 열리며, 12월 최종 수상자가 발표될 예정이다. 

 

 

Turner Prize 2022 nominee, Heather Phillipson. Image: Heather Phillipson, Photograph by Rory Van Millingen  

1 Tate Britain Commission: Heather Phillipson: RUPTURE NO 1: Blowtorching the Bitten Peach © Tate photography (Oliver Cowling)  2  Heather Phillipson, The End © David Parry PA Wire 

 

‘관계’를 실험하다

헤더 필립슨

설치미술가 헤더 필립슨(Heather Phillipson, 1978)의 흥미로운 신작을 보기 위해서 잠시 런던 트라팔가 광장으로 떠나보자. 트라팔가 광장에는 플린스(Plinth, 기둥이나 동상의 대좌)가 4개 있는데, 대좌 3개에는 전쟁 영웅과 기마상이 세워져 있고 네 번째 대좌는 비어 있는 상태. 1990년 후반부터 빈 대좌는 ‘네 번째 대좌 프로젝트’라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곳에 독특하고 재미난 설치 작품이 들어섰다. 거대한 휘핑크림 위에 위태롭게 놓인 탐스러운 체리와 드론, 그리고 파리 한 마리. ‘네 번째 대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설치된 헤더 필립슨의 ‘디 엔드(The End, 2020~2022)’다. 높이 31피트(약 9.5m), 무게 9톤에 달하는 거대한 설치 작품으로, 탐스럽고 먹음직한 체리와 혐오스러운 파리가 크림 위에 아슬아슬하게 동거 중이다. 드론의 정체는? 작품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드론을 통해 촬영되며, 우리는 작품을 보지만 또한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묘한 이중성을 담아내고 있다. 테이트 브리튼 커미션으로 열린 헤더 필립슨의 단독 전시 <파열 No.1(Rupture No.1: Blowtorching the Bitten Peach)>의 풍경 역시 예사롭지 않다. 이등분된 항공기 연료 탱크, 서로 부딪쳐 쨍 소리를 내는 가스통, 폐타이어와 배럴 통으로 만든 뿔 달린 생명체 등 붉은색, 푸른색, 보라색으로 물든 각각의 전시장은 낯선 돌연변이 생명체로 가득 채워졌다. 작가는 우리가 직면한 근본 문제, 즉 지구상의 생명체를 위협하는 에너지 소비, 자연보호, 현대 전쟁 등을 신화적·종교적·의례적 시각언어로 풀어낸다. 예상치 못한 여러 조합을 통해 새롭고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헤더 필립슨.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양자적 사고 실험’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철학과 가치를 증명하듯 끝없는 실험을 펼친다. 조각, 비디오, 설치, 작곡, 시, 디지털 미디어 등 실험을 위한 재료의 경계 따위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Cooperation Tate Liverpool

 

 

 

 Ingrid Pollard, Photo: Emile Holba 

Ingrid Pollard, <Carbon Slowly Turning> Installation views from MK Gallery. Photo by Rob Harris 2 Ingrid Pollard, Self Evident (detail) 1992 © and Courtesy of the Artist 

 

역사와 시간을 담아내는 예술가

잉그리드 폴라드

영국 현대미술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잉그리드 폴라드(Ingrid Pollard, 1953). 주로 사진을 통해 작업하지만, 조각, 설치, 드로잉, 영화, 사운드를 넘나들며 사진가, 미디어 아티스트, 연구자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폴라드는 인물과 풍경 사진을 이용해 자연 세계와 우리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또한 ‘Britishness’, 즉 영국성과 인종, 섹슈얼리티 같은 사회적 구성 요소에 대해 질문하며, 자신만의 실험적 프로세스를 결합해 사회적으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을 창조해낸다. 
60대 후반의 폴라드는 터너상 후보 4명 중 가장 연장자로, 50세 미만이던 수상자 연령 제한이 2017년 사라지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남아메리카 북부의 공화국인 가이아나 조지타운 태생의 잉그리드 폴라드. 1972년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이주한 폴라드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런던의 현실을 작품으로 담아내기 시작했다. 폴라드에게 명성을 안긴 ‘목가적인 풍경 사이(Pastoral Interlude)’ 시리즈 역시 1982년과 1987년 사이에 제작됐다. 사진 속에는 영국 시골에서 일하거나 걷는 젊은 흑인의 이미지와 두려움과 취약성을 암시하는 짧고 강렬한 텍스트가 함께 적혀 있다. “나는 하얀 바다에서 검은 얼굴로 외롭게 방황했다(I wandered lonely as a black face in a sea of white).” 영국성과 이주에 대한 복잡한 생각은 폴라드의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지난 5월,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잉그리드 폴라드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엿볼 수 있는 전시가 영국 밀턴케이스의 MK갤러리에서 열렸다. 아카이브 자료, 사진, 필름, 콜라주, 조각 등을 이용해 인간의 모습과 움직임을 탐구하는 폴라드의 작업 전체를 아우르는 최초의 전시다. <Carbon Slowly Turning>, ‘탄소는 서서히 순환한다’라는 너무도 심오한 전시 제목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터. 인체, 천체 물리학, 지질학에 관심을 가져온 폴라드의 연구를 보면, 그리 낯설지 않은 일이다. 폴라드의 많은 작품은 역사와 인간 경험의 순환적 성격을 반영한다. 수백, 수천 년에 걸친 인간의 그것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변화할 수도 있다. 탄소, 암석 및 기타 천연 재료가 만들어지는 수천 년의 시간은 어떠한가. 지질학적 시간은 자연의 순리를 따라 천천히 순환한다. 인간의 시간과 지질학적 시간. 폴라드는 그 시간의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 역사 속 숨은 이야기와 시간을 담아내는 잉그리드 폴라드의 간결하면서도 복잡한 기록. 68세의 폴라드는 1년 전쯤 런던 생활과 결별을 결심하고 잉글랜드 북동부의 시골인 노섬벌랜드로 이사해 또 다른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다.   

 

 

 

 Sin Wai Kin. Crop by Vic Lentaigne 

 Sin Wai Kin, It’s Always You, 2021, 4K dual channel video, 4'05". Video still. Image Courtesy of Artist and Blindspot Gallery. 2, 3 Sin Wai Kin, A Dream of Wholeness in Parts (still) 2021 © the Artist. Courtesy the Artist, Chi-Wen Gallery, Taipei and Soft Opening, London. Produced by Chi-Wen Productions, Taipei. Supported by Hayward Gallery Touring for British Art Show 9 

 

퍼포먼스와 영화 사이

신 와이 킨 

파격적인 화장과 치장을 한 사람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드래그 퍼포먼스, 동영상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신 와이 킨(Sin Wai Kin). 1991년생으로 터너상 후보 중 가장 젊은 아티스트답게 작업 방식 역시 직접적이고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작가는 여성 혐오와 인종차별을 해체하는 수단으로 화장과 치장을 자신의 작품에 끌어들인다. 한데 어딘가 익숙한 화장법이 아닌가? 바로 중국 연극의 하나인 경극 화장이다. 신 와이 킨은 경극의 화장 기법이 색을 통해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데서 영감 받아, 진한 화장에 직접 만든 옷을 입고 또 다른 페르소나로 변신한다. 강렬한 화장만큼 작가의 메시지 역시 명확하다. 이상화된 이미지, 구획된 범주, 이진법적인 의식과 사고. 신 와이 킨은 이 모든 것에 의문을 제기하며, 퍼포먼스, 동영상, 글, 인쇄물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텔링으로, 작가는 객관화를 방해하는 판타지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대표 영화 <A Dream of Wholeness in Parts>(2021)는 중국 사상가 장자의 ‘나비의 꿈’에서 영감 받았다. 어느 날 장자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나는 꿈을 꾼다. 하지만 꿈에서 깬 장자는 ‘내가 나비가 된 건지, 나비가 내가 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순간 호접지몽, 인생무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신 와이 킨의 영화 속에는 이분법적 개념과 씨름하는 캐릭터 3명이 등장한다. 각 주인공은 경극과 광둥극의 원형에서 영향 받은 진한 화장을 한다. 그는 혼합된 페르소나를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뿐 아니라 자아와 타자, 생각과 느낌, 삶과 죽음, 꿈꾸는 것과 깨어 있는 것, 현실과 환상의 이분법을 둘러싼 사회적 서식을 전복시킨다. 중국 전통 철학과 극작에, 동시대의 드래그, 음악, 시를 참조해 다양한 세계와 새로운 존재 방식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을 창조하는 신 와이 킨. 터너상 심사위원단은 작품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계성을 뛰어넘는 그의 작업 특성과 라이브 공연을 영화로 교묘하게 해석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신 와이 킨을 터너상 후보로 선정했다.

 

 

 

Veronica Ryan. © Veronica Ryan. Courtesy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Photo: Steven Probert 

1 Veronica Ryan OBE, Custard Apple (Annonaceae), Breadfruit (Moraceae), and Soursop (Annonaceae), 2021. Commissioned by Hackney Council; curated and produced by Create London. Photo: Andy Keate. Courtesy the Artist,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and Alison Jacques, London 2 Veronica Ryan, <Along a Spectrum (2021)> Installation view, Spike Island, Bristol. Commissioned by Spike Island, Bristol and supported by Freelands Foundation. Photograph by Max McClure. Copyright Veronica Ryan. Courtesy Spike Island, Bristol, Paula Cooper Gallery, New York and Alison Jacques, London.

 

절묘하고 관능적인 내러티브

베로니카 라이언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이스트 런던 해크니 중심가. 작년, 이곳에 설치된 재미난 조각 작품 하나가 인기를 끌었다. 조각, 설치 작업을 하는 베로니카 라이언(Veronica Ryan, 1956)의 ‘커스터드애플, 빵나무열매, 그리고 가시여지(Custard Apple, Breadfruit, and Soursop(2021)’다. 이 작품은 해크니 지역의 윈드러시 세대를 기념하려고 기획한 ‘해크니 윈드러시 아트 커미션’의 일환으로, ‘흑인 역사의 달’인 10월 첫날에 대중에게 공개됐다. 윈드러시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이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초청한 카리브해 출신 이민자를 말하며, ‘해크니 윈드러시 아트 커미션’은 해크니에 거주하는 윈드러시 가족을 부당한 차별로부터 보호하고 그들의 문화를 기리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1956년 영국 보호령인 카리브해 몬트세라트에서 태어나 어릴 적 영국으로 이주한 베로니카 라이언에게도 이번 작업은 특별했을 것이다. 이 역사적이고 민감한 이주의 경험을 작가는 어떻게 명민하게 풀어냈을까. 그 해답은 열대 과일이었다. 청동과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열대 과일 작품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심각한 주제를 흥미롭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풀어내는 힘을 발휘한다. 그런데 왜 열대 과일이었을까? 이것은 캐리비언을 대표하는 과일로, 사람들은 이 과일을 보며 윈드러시의 역사를 떠올릴 것이며, 이주민 역시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의미 있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브리스틀의 스파이크 아일랜드에서 열린 개인전 <Along a Spectrum> 역시 터너상 심사위원단이 주목한 프로젝트. 라이언은 스파이크 아일랜드 레지던시 기간에 팬데믹으로 인한 심리적 영향뿐 아니라 생태학, 역사, 분열, 소외 등을 탐구했다. 바느질, 염색 직물, 다양한 씨앗으로 채운 네온 컬러의 뜨개질 주머니 등 전시장에 설치된 다양한 조각 오브제와 설치물은 그 오랜 탐구의 결과물이다. 그의 조각은 유기적 형태를 취하지만 이런 형태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거부하기 때문에 관객의 해석에 따라 다양한 내러티브가 나타날 수 있다. 죽음과 재생의 주기, 환경 파괴, 집단적 트라우마, 세대 간 및 상업적 교류의 역사적 네크워크 같은 사회적 주제가 독특한 조각 작업 속에 서식한다. 그것은 직접적이지 않으며, 절묘한 관능과 촉감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아트

CREDIT

EDITOR : 설미현PHOTO :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