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감이 오지 않으면 아무리 멋진 프로젝트라도 맡지 않는다.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는 모든 상상이 마무리되어야 비로소 그림으로 그린다. 누구보다 새로움에 민감한 얼리어답터이자, 누구에게도 나이와 경력을 과시하지 않는 그는 여전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한 크리에이터다.

202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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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 리뉴얼 프로젝트를 진행한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998년 개봉한 영화 <정사>는 세련되면서 튀지 않는, 무채색 옷을 입은 두 주인공 덕분에 서정적인 아름다운 장면들로 기억된다. 2003년 개봉한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는 스타 배우뿐 아니라 한옥과 한복, 소품까지 화제를 모았다. 두 영화의 미술을 맡은 이가 바로 정구호다. 패션 디자이너로 먼저 이름을 알렸지만 영화 의상과 공간 디자인, 무용극 연출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활약했다. 제일모직, 휠라코리아, 제이에스티나 등 국내 패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물론, 서울패션위크 총감독, 2018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한국관 예술감독, 2021년 공예트렌드페어 총감독 등 굵직한 일을 도맡아 했다. 2021년 10월, 그의 이름은 리움미술관의 재개관으로 또다시 화제에 올랐다. 

 

리움미술관의 재개관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리움 리뉴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어떤 것을 보여주고 싶었나요?  리움은 지금까지 제가 한 일 중에 가장 큰 챌린지였어요. 전체 콘셉트는 ‘리움을 리움답게’입니다. 별도 공간이 없었던 스토어를 로비 옆에 배치하고 티켓 카운터, 소지품을 보관하는 로커도 갖추고 공간마다 각기 특성에 맞춰 재구성했습니다. 사실 리움에서는 고려하지 않았던 MI(Museum Identity)도 영국 테이트미술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세계적 미술관 MI를 디자인한 울프 올린스에 의뢰해 변경한 것도 변화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죠. 어린이를 위한 공간도 새롭게 구상하면서 좀 더 친숙한 뮤지엄으로 인식을 바꾸고자 했어요.

 

 

정구호 디렉터는 리움 리뉴얼에 맞춰 한국 전통 건축 방식인 목재 짜임과 격자 형태의 구조물을 적극 활용한 리움스토어를 고안했다.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리움은 건축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건축과 작품의 조율은 어떻게 하나요? 마리오 보타, 렘 콜하스, 장 누벨 3명의 건축가가 만든 특징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어요. 전시 작품을 배치할 때는 그런 오리지낼리티를 손상시키지 않는 동시에 편리성을 갖춰야 했고, 기존 리움의 문턱이 높다는 인식이 있다 보니 밝고 친근한 공간도 확보해야 했죠. 가장 어려운 곳은 M3예요. 전시에 따라 M3가 있으면서 M3가 아닌 듯하게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비정형적 전시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은 많은 분들과 협업하면서 동선과 공간의 변화에 여러 가지 시도를 했습니다. 


처음 머릿속에 구상했던 리움과 완성된 리움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놀랍게도 제가 생각한 그림과 의도대로 구현되었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건축가들의 공간이라는 아이덴티티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것과 한국을 대표하는 뮤지엄에 맞는 한국 작가의 작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모두 실현되었죠. 

 

 

로비 한가운데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창문과 특수필름을 통해 빛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김수자의 설치 작품 ‘호흡’을 볼 수 있다. 

 

 

리움의 로비는 세 건축가가 각각 디자인한 세 건물을 이어주는 공간이자, 각 건물에서 선보이는 한국의 고미술과 전 세계 근현대미술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 중앙에는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로툰다, 즉 나선형 계단과 이를 둘러싼 유리 천장이 자리한다. 기존 로툰다 아래에 있던 매표소는 동심원 바깥으로 이동시키고 카페와 스토어를 벽 안쪽으로 숨겨 편의 공간이 건축의 원심력과 충돌하지 않도록 재배치했다. 로비 가운데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빛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김수자의 설치 작품 ‘호흡’을 감상할 수 있고, 뒤편 안내 데스크에는 숯 240여 개를 묶어 만든 대형 작품 ‘불로부터’가 투명한 케이스에 덮여 있다. 한국 전통 건축 특유의 목재 짜임과 격자 형태의 구조물을 적극 활용한 공간에서 작가들의 감각적인 작품을 볼 수 있는 리움스토어, 챔프커피 카페, 미디어월 모두 로비를 둘러싸고 있다.

 

 

세 건축가가 지은 세 건물이 만나는 공간이자 한국의 고미술과 전 세계 근현대미술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공간인 리움미술관 로비. 

 

 

둥글고 네모난 형태와 무늬의 가구를 둔 ‘블랙박스’ 라운지는 리움의 이미지와 달라 보여요. 부모와 아이들이 같이 놀 수 있는 곳이라 어린이 관련 프로젝트를 많이 작업한 김용관 작가와 함께 재미있고 상상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미술관을 방문한 어린이들은 창의력을 기르는 체험 학습을 하고 어른들은 편히 쉴 수 있죠. 


리움스토어나 2021년 공예트렌드페어 주제전 ‘형형색색’을 보면 어떻게 저 많은 작가들을 찾았을지 궁금하더라고요. 길게는 10년 이상, 짧게는 3년 정도 작품 활동을 꾸준히 지켜봐온 분들이에요. 제가 그분들의 성향을 잘 알고 있고, 리움과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어떻게 어우러지게 풀어낼지 생각해 연락드렸어요. 이번에 함께하지 못한 분들도 많아요. 앞으로 천천히 그분들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모색해갈 생각입니다. 

 

 

인디에프와 정구호 디자이너가 함께 선보이는 브랜드 ‘존스’ 컨벤션 이벤트. 

 


기존 인터뷰를 보면 창의력의 원천은 호기심이라고 했는데, 그 호기심이 생기는 분야가 따로 있나요? 항상 새로운 분야에 호기심이 있어요. 새로운 일에 대한 제안이 왔을 때 리서치하면서 분야를 익히고, 그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되면 제의를 수락합니다.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더 큰 거 같아요. 


그럼 일을 할 때 원칙으로 삼는 건 무엇인가요? 제가 먼저 제안하지 않는 것이에요. 새로운 일을 앞두고 저를 설명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니까요. 저에 대해 충분히 알고, 어떤 일이 가능할지 판단한 후 제의하는 분들과 함께하면 확실히 일의 진행 속도도 빠르고 결과물도 좋기 때문이에요. 


그러한 제안 중에 선택하는 기준은요? 딱 한 가지예요. 제가 그 분야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그 분야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 그런 고민 끝에 자신 있으면 일을 맡는 것이죠.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체화하나요? 파슨스디자인스쿨에 다닐 때부터 선생님이 스케치를 해오라고 해도 안 해서 혼나곤 했어요(웃음). 전 머릿속으로 그려요. 저 스스로 모든 걸 머릿속으로 정리해서 끝내야 해요. 만약 공연을 하게 되면 마지막 막이 올라가는 장면까지 상상이 끝나야 그림으로 옮길 수 있어요. 

 

생각을 정리한 다음 마무리하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나요? 이 얘기를 들으면 뭐라고 할 거 같은데(웃음) 되게 짧아요. 하루 만에 다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왜냐하면 전 의뢰를 받고 첫 미팅할 때 아이디어가 떠올라야 해요. 그래서 미팅하는 동안 아이디어를 정리하죠. 그것을 한 단계씩 발전시키는데, 여러 상황이 펼쳐질 것에 대비해 좀 더 시간을 쓰는 거예요. 제가 그려낸 그림을 100% 실현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변수를 다양하게 시뮬레이션하고요. 제가 보여드리는 최종 그림은 우리가 이렇게 진행할 것이라고 공유하기 위함이죠. 


요즘 특별히 관심 갖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전 기계를 엄청 좋아하는 얼리어답터예요. 하지만 이제 콘셉트를 바꾸려고 해요.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버려지는 기계들이 많잖아요. 하나하나 귀하게 만들고 귀하게 간직하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명함 지갑 하나도 장인과 공예적으로 풀어서 내가 죽은 다음 물려줄 수 있을 만한 것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에요. 다른 이에게 물려줄 만한 소품을 쓰자 그런 생각이 든 거죠. 평생 가지고 있어도 좋을 만큼 가치 있는 물건. 


그중 누군가에게 물려준다면 어떤 것을 고를지 궁금합니다. 정말 좋은 원단, 단추 그런 것을 모아 장인에게 찾아가 한복으로 지었어요. 아직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았는데 내가 이걸 못 입더라도, 누가 보더라도 공부가 될 수 있는 좋은 물건이거든요. 집에서 쓰는 그릇도 공산품은 사지 않아요. 도예 작가 전시에 가서 하나씩 모으다 보니 실용성이 좀 떨어지는 것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실용성도 겸비한 도자기 그릇을 공예 작가에게 의뢰해서 만들어요. 

 

 

<향연>은 한국 춤을 총망라한 연회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정구호의 작업을 ‘가장 한국적인 럭셔리’라고 이야기하는 분이 많습니다. 한국적 럭셔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제가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만 해도 한국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만의 가치를 찾기 위해 한국적인 것에 더 관심을 두게 된 것 같아요. 영화 <스캔들>을 제작할 당시 한 필에 500만원 하는 모시 원단을 구해 한복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장인 한 분이 시도했다가 포기하셨어요. 모시는 여름에 입는 옷이잖아요. 그래서 기온이 높고 습기가 많을 때 바느질해야 하는데 가을에 만들려니 원단이 끊어지더라고요. 난로를 피우고 물을 끓이며 여름 날씨를 조성한 곳에서 옷을 지으려고 해도 바느질이 이어지지 않은 것이죠. 이렇게 계절에 따라 옷을 만들고, 음식을 차리는 것을 보면 우리 고유의 전통이야말로 가장 럭셔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를 제작할 당시 이재용 감독과 정구호 디렉터는 ‘우리 옷다움을 잃지 말 것’과 ‘풍부하고 세련된 미를 살리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시각적 즐거움은 주되 국적 불명의 의상이나 소품을 피하겠다는 두 사람의 의도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과제였다. 박물관에서 대여하기도 여의치 않았고 협찬받아 만드는 똑같은 옛날 물건이 영화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자료를 참고하며 직접 제작했다. 연극, 영화에 이어 정구호가 연출을 맡은 국립무용단의 무용극 역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세련된 아름다움으로 각광받았다. 화려한 색감을 버리고 무채색 의상으로 춤에 집중한 것이 주효했다. 

 

영화나 공연을 통해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업을 많이 했고, 특히 <스캔들>은 의상이며 소품 모두 화제를 모았어요. 제작비의 3분의 1을 미술 비용으로 쓴다고 하니 다들 기막혀 했죠. 투자자에게 직접 프레젠테이션해서 허락받고 진행했습니다. 영화가 흥행한 후에 일본에서 전시도 했는데, 당시 배용준 씨의 인기가 너무 높아서 전시에 나온 물건이 다 팔렸어요, 그 바람에 한국에서는 전시를 진행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 공연 <포이즈>에서는 검은색 천으로 발목부터 가슴 아래까지 꽉 조이는 발레 의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2012년 <단>을 시작으로 <묵향>, <향연> 등 국립무용단 공연을 연출한 데 이어 2021년에는 신작 <산조>도 선보였죠. 무용은 저에게 자연스러운 장르예요. 미국에서 유학할 때 알게 된 친구들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는 안무가들이거든요. 그들이 하는 작업을 보고 너무 재미있어 컬래버레이션도 하고, 의상을 봐주다가 연출까지 이어진 것이죠. 안은미, 안성수 이런 분들과 친해지면서 무대 디자인을 하다가 연출까지 맡게 되었어요. 국립무용단의 공연 중에서는 <향연>이 저의 대표 작품이에요. 특히 1막 1장을 시작하는 일무는 의상과 무구를 바꿔 현대적인 일무가 되었죠. 


무용 작품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용은 정말 다양한 분들과 협업하게 돼요. 무용가, 안무가, 여러 분야의 스태프들까지 모든 이들을 이끌며 총지휘자가 되는 것이라 저한테는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판이 되어줍니다. 


앞으로 어떤 무용 작품을 보여주실지 기대되는데요. 저는 항상 두 가지를 생각해요. 하나는 가장 한국적인 것을 잘 표현하는 것, 다른 하나는 완전히 현대적이면서 실험적으로 가는 것이에요. 이쪽으로 기회가 생기면 이쪽, 저쪽으로 가능하면 저쪽으로 시도해볼 거예요.


레스토랑을 차릴 만큼 요리도 잘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떤 요리를 특히 즐기시나요? 먹고 싶은 메뉴가 떠오르면 장을 봐서 바로 만들죠. 스케치를 안 하듯 레시피 메모도 안 해요. 모든 메뉴가 머릿속에 있거든요. 직접 장도 담그고, 김장도 해요. 대부분 11월에 김장을 하지만 12월에 해야 진짜 맛있는 해남 배추를 구할 수 있어요. 첫 서리가 내린 후에야 배추 속이 꽉 차니까요.

 

 

 12가지 전통 춤을 기품 있는 연출로 담은 <향연>은 한국 무용 작품으로는 전례 없이 전 회 매진을 기록한 흥행작이기도 하다. 

 

 

전통 음식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책으로 내고 싶은 생각은 없으세요? 책 출간 제안을 받은 적도 있고, 제가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고 말씀드리기도 했는데 다들 너무 놀라셨죠. 재료를 기준으로 삼아 요리책을 생각했는데, 그걸 다 담으려면 100권이 넘는 프로젝트가 되더라고요. 한번은 누군가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하겠다는 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만들고 싶어요. 

 

정구호 디렉터는 패션 기업 ‘인디에프’와도 협업해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브랜드 전체 리뉴얼과 함께 2021년 하반기에는 젠더리스 신규 브랜드 ‘컴젠’도 출시했고, 2022년 봄에는 타임리스 클래식을 콘셉트로 럭셔리 여성복을 표방하는 ‘존스’의 론칭을 앞두고 있다.

 

2022년 론칭을 앞둔 존스에 대한 기대가 큰데, 어떤 브랜드를 지향하나요? 10년 전에 선보인 ‘르베이지’가 프리미엄 브랜드라면 ‘존스’는 캐릭터가 확실한 프리미엄, 그래서 수입 브랜드와 겨룰 수 있는 캐릭터를 갖는 것이 목표예요. 전체 테마는 타임리스 클래식이지만 그 안에 일상복과 이벤트성의 글래머러스한 라인까지 갖출 계획입니다. 또 여성복 내에서 남성복을 판매하는 섹션도 생각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구상하고 있어요. 


브랜드 론칭만큼 리뉴얼도 많이 하셨어요. 리뉴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리뉴얼의 핵심 목표는 타깃의 변화예요. 그곳을 찾는, 그 물건을 사는 분들이 다양해져야 그 리뉴얼이 성공하거든요. 기존 타깃 이외의 확장성을 만드는 것이 성패를 좌우합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또 다른 브랜드를 시도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매일 두세 개의 브랜드를 만들었다 없앴다 하는 것이 저의 취미이자 놀이예요(웃음). 요즘은 작은 거 하나 사도 박스에 담아와 너무 많은 쓰레기를 버리게 돼요. 환경과 관련된 브랜드를 시도한다면 재고를 활용해 다시 창작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재활용, 친환경 소재로만 새 옷을 만드는 것은 아니에요. 혹시 옷이 버려진 창고를 보신 적이 있나요? 옷이 산더미처럼 쌓인 데서 필요한 원단을 찾아 해체하고, 세탁하고, 그 원단에 재생 효과를 주고, 그걸 다시 옷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아트워크를 할 수도 있고요. 단순히 옷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누군가가 그걸 원한다면.


수많은 브랜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스갯소리로 저를 심폐소생술사라고 불러요(웃음). 저는 팬데믹 이후 일이 더 많아졌거든요. 경기가 가장 안 좋을 때에 온갖 안 좋은 것이 드러나게 되잖아요.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극복할 수 있는 브랜드보다 극복할 수 없는 브랜드가 많아지니까 저를 찾는 분이 늘어나는 것이죠. 어떻게든 살려내니까.


의뢰를 받으면 솔루션에 대한 감이 오나요? 저는 바로 감이 와야 해요. 아무리 봐도 안 될 것 같으면 못한다고 하죠. 전문적인 의견을 듣기 위해 저를 찾는 거니까 현실을 알려드려야 해요. 리뉴얼을 안 하면 저 역시 일이 없어지는 것이지만 저는 도움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강연에서 2020년까지 관여한 브랜드의 총 매출액이 2조8000억원에 이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중 가장 큰 수익, 성공을 거둔 브랜드는 어떤 것이었나요? 의외로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제품은 제가 처음으로 시도한 화장품 ‘려’ 샴푸였어요. 용기 디자인부터 스토리텔링도 같이 만들고 캠페인까지 하면서 기존에 없던 제품군을 새롭게 개발했고 이후 리뉴얼 작업도 했죠. 또 휠라가 성공을 거둔 것도 있고요.


트렌드를 읽는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주변의 흐름을 보는 거예요. 새로운 영화, 새로운 사람들,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더듬이를 좀 더 높게 세우고 관심을 갖다 보면 흐름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더듬이를 얼마나 열심히 켜놓고 사는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져요. 어떤 이는 너무 피곤하지 않냐고 하는데 저는 그게 너무 재미있으니까. 많은 일을 하는 것이 힘들겠다고 하는데 전 패션을 하다가 미술을 하다가 무용으로, 다시 패션으로 이렇게 여러 방향으로 전개하다 보니 오히려 시너지가 나는 거 같아요. 하루 종일 머릿속에 패션만 담고 있으면 괴로울 수도 있는데 미술관에 오면 패션에 관해서는 1도 생각 안 하거든요.


선택과 집중이 분명하시군요. 스위치의 온오프가 잘되는 편이에요. 한 가지 일을 하면 그 외에는 아무 생각이 안 나요.


2022년을 맞아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어떤 흐름이 와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가고자 하는, 나의 아이덴티티예요. 그것만 뚜렷하다면 아무 걱정 없을 거예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에 맞는 일과 창작을 해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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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이영채PHOTO : 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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