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다양한 언어로 공간을 탐구하는 다이아거날 써츠

12월 대중에 공개될 ‘MMCA 과천프로젝트 2021 : 예술버스쉼터’의 최종 당선작으로 다이아거날 써츠의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 ) Function’이 선정됐다. 건축을 베이스로 하지만 설치 작품, 영상 작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언어로 공간을 탐구하는 다이아거날 써츠의 김사라 소장을 만났다.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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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까지 물리적 성질은 ‘공간’이란 개념이 성립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 생각했다. 지금 기사를 쓰기 위해 내가 앉아 있는 사무실 책상 앞부터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머무는 어딘가 등 물질이 존재하거나, 할 수 있는 곳이 곧 공간이니까.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이 명제가 낯설게 느껴진 건 다이아거날 써츠(Diagonal Thoughts)의 김사라 소장과 대화를 나누면서부터였다. “영상 프로젝트 ‘마지막 장소(Last Place)’는 무언가를 짓지 않고 공간성을 발현하는 작업이었고, 기획 전시 <남이 설계한 집(Designed by Another Architects)>은 구축하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작업이었어요.”
2015년 개소한 다이아거날 써츠는 보편적인 기준으로 ‘굳이’ 분류하자면 건축사사무소다. 그러나 그들이 지금까지 세상에 내보인 작업을 살펴보면 건축사사무소로만 한정하기엔 어딘가 석연찮다. 건물과 파빌리온을 짓는 줄 알았는데, 어느 때는 영상 작업을 진행하고, 올해 광주 비엔날레에서는 스위스 파빌리온관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작품 ‘얼론 투게더(Alone Together)’의 건축적 요소를 담당했다. 최근엔 그들이 제안한 설치 작품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          ) Function’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공모 프로그램 ‘MMCA 과천프로젝트 2021 : 예술버스쉼터’의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버스 정류장의 기물들을 추상 조각처럼 표현한 이 작품은 한시적으로 선보이던 기존의 야외 파빌리온 및 설치 프로젝트와 달리 반영구성을 지녀 더욱 뜻깊다. 이처럼 김사라 소장은 표현 장르를 다양하게 넘나들고 때론 여러 장르를 결합하기도 한다. 매번 완전히 새로운 작업을 하는 듯 보일 수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의 근원은 동일하다. ‘공간’에 대한 탐구다.

 

 

‘MMCA 과천프로젝트 2021 : 예술버스쉼터’의 최종 당선작으로 선정된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     ) function’의 모형과 렌더링.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취하는 동작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네거티브 이미지를 추상 조각처럼 표현했다. 

 

 

최근 좋은 소식이 있으셨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셔틀버스 정류장 3곳에 설치 예정인 ‘쓸모없는 건축과 유용한 조각에 대하여’ 이야기부터 해볼게요. 작품 이름을 보고 놀랐어요.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고 있지만 뿌리는 건축에 두고 계시잖아요. 일시적으로 전시하는 파빌리온이나 설치 작업을 하며 늘 하던 고민이 담긴 이름이죠. 이런 프로젝트는 보통 3~6개월 정도 전시하고 철거하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을 보며 문득 ‘무엇을 위한 것일까’란 의문이 들더라고요. 이 물음에서 시작해 미술계가 건축가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 우리는 미술계와 건축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등을 스스로에게 물었죠. 작품명은 이번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이런 평소의 의문을 담은 이름이에요. 때마침 이번 MMCA 과천프로젝트는 국립현대미술관 장기 공간재생프로젝트란 점에서 잘 맞아떨어졌죠. 

 

이번 작품의 주제는 ‘기다림의 미학’이에요. 아이디어를 어떻게 전개했는지 궁금해요.처음 저희에게 주어진 것은 설치 장소에 대한 정보와 버스 쉼터라는 용도였어요. 흥미로웠던 점은 위치가 미술관이라는 것이었는데, 도시에서의 버스 정류장은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빠르게 지나치는 장소지만 미술관의 버스 정류장에는 앞으로 볼 것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나 전시를 감상하고 나서의 충만한 감정, 사색 등이 공존할 거라 생각했어요. 또 배차 간격이 20분이라 일반 버스 정류장과 기다림의 시간도 차이가 나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며 정류장에서 취할 수 있는 자세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도시에서는 앉거나 서는 정도라면 버스를 오래 기다려야 하는 미술관의 버스 정류장에서는 허리를 숙여 스트레칭을 하거나 기지개를 켤 수도 있겠죠. 벽에 기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요. 다양한 동작을 취하며 생긴 공간에서 사람을 제외하고 남은 네거티브 공간을 도형화했어요. 어떻게 보면 조형을 제거한 조형인 셈이죠.

 

 

‘남이 설계한 집’은 짓지 않고 폐건물을 리모델링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감상이 곧 목적이 되는, 일반적인 설치 작품과는 결이 다르네요. 그러나 시설물이라 부르기엔 내포된 의미가 작품에 가깝고요. 작품 이름은 그런 부분과도 맞닿아 있어요. 단열도 안 되고 창도 없는 이것을 건축이라기엔 부족하지만 조각이라고 하기에는 실용적이잖아요. 그렇다면 이 작업은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 것인가, 저희도 끝없이 고민하며 작업했고 이용하는 사람들도 같은 고민을 할 수 있길 바랐어요. 그래서 영어 이름이 ‘(          ) fucntion’이에요. 빈 칸은 이용객이 채우는 거죠.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면 멀티(Multi),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디스(Dis), 기능에 역행해서 만들었다 생각하면 안티(Anti) 등을 채워 넣을 수 있겠죠. 

 

누구나 올 수 있는 국립미술관이라는 공적인 장소에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버스 쉼터라는 공적인 목적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공공’이란 무엇일까요. 공공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하는 건 굉장히 어려워요. 단어의 의미가 접근에 있어서의 평등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안전에 대한 문제인지, 혹은 프로젝트의 방향이 보편적인지를 뜻하는 건지 고민해봤지만 무엇이다라고 결론을 내리지 못했어요. 다만 누군가가 무언가를 인식할 때, 자신의 관점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무수히 많은 개인적인 시선이 포개졌을 때 서로 겹치는 공통된 지점을 공공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광주 비엔날레 스위스 파빌리온관에서 진행한 퍼포먼스 작품 ‘얼론 투게더’. 가변적인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접어서 가방에 넣을 수 있는 건축적 요소인 포터블 시너그라피(Portable Scenography)를 디자인했다. 사진은 스위스 비엘 쿤스트하우스 파스콰르트(Pasquart Kunsthaus Centre d’art)에서의 공연 모습.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네요. 그런 셈이죠. 다만 보편적이라 규정짓는 것들도 사실은 많은 사람이 그렇게 인식한다고 맹목적으로 믿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요. 알고 보니 다수의 의견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어떠한 것을 보았을 때 나도 보고, 상대방도 보았지만 각자 무엇을 보았는지 공유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각자의 감상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해요. 그것이 건축이든 설치물이든, 뭐든지요. 

 

다이아거날 써츠가 생각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 영상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영상 작업을 하는 건축사사무소는 못 본 것 같거든요. 시발점은 문화역서울 284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284: 시간여행자의 시계>에서 선보인 파빌리온 ‘도어: 펼쳐진 시공간’부터였죠.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프로젝트 284: 시간여행자의 시계>는 시간을 다양한 장르의 예술로 제시한 융복합 문화예술 행사였어요. 그중 저희는 중앙홀 입구를 담당했고요. 역 입구라는 공간 자체의 볼륨은 아주 얇지만 문을 경계에 두고 각자의 삶을 살아온 수많은 사람이 오가며 일어나는 사건들의 밀도는 굉장히 높다고 생각했죠. 그렇다면 응집된 시공간을 펼쳐서 보여줘야겠다 싶었어요. 반사되는 반투명 유리 소재의 파빌리온이었는데 한쪽으로는 긴 역사를 지닌 서울역의 문이 비치고 반대쪽으로는 현재의 도시가 보였어요. 과거와 현재가 뒤엉킨 시공간이죠. 그리고 파빌리온에 문을 3개를 설치했는데 앞에 서서 바라봤을 때 파빌리온의 문을 통해 역의 입구가 보이도록 해 파빌리온을 통과할 수밖에 없는 강제성을 부여했어요. 일단 들어갈 수밖에 없고 나가고 싶다면 작은 문을 통해 나가겠죠. 이렇게 만들어진 수많은 사람들의 동선은 뭉쳐진 에너지를 펼쳐요. 그러다 보니 파빌리온의 구조 자체보다 주변 상황과 이용자의 동선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한데, 사진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뮤직비디오를 봤어요. 촬영 감독님을 수소문해 찾아 영상 작업을 진행했죠. 

 

 

응집된 시공간을 펼쳐서 보여주는 파빌리온 작업인 ‘도어:펼쳐진 시공간’.

 
 
‘도어: 펼쳐진 시공간’의 영상이 기록을 위한 수단이라면 이후의 영상 작업인 ‘마지막 장소’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어 보여요. ‘도어: 펼쳐진 시공간’의 영상 작업을 할 때만 해도 필요에 의해서 의뢰를  한 것이지 우리가 영상 작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도어: 펼쳐진 시공간’ 프로젝트 이후 첫 질문에 대한 답변처럼 한시적으로만 설치하는 작업에 대해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 마침 경기문화재단에서 주관한 공공하는 예술 아카이브 전시 참여를 의뢰받았는데 여기서 선보인 게 ‘마지막 장소’죠. 저희가 프로젝트 참여자 중 유일하게 건축 집단이었어요. 당연히 우리가 무언가를 구축해주길 원해서 의뢰했겠지만 건설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만큼 생각하고 설계하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간과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미술계가 건축을 소비하는 방식이 소모적이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서 학예사님께 ‘참여하겠다. 대신 아무것도 짓지 않고 공간을 표현하게 해달라’고 조건을 내세웠는데 받아들여졌어요. 말은 그렇게 했는데, 막상 시작하자니 막막하더라고요(웃음). 아무것도 짓지 않았지만 이미 존재하고 있는 공간을 인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우선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물질이었어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새까만 공간은 디멘션(dimension)을 인지할 수 없지만 그곳에 무언가가 놓이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가장 보편적인 물질인 인간의 몸을 선택해 안무가와 협업하게 됐어요. 그다음으로 사람과 상응하는 공간을 표현할 수 있는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짓지 않고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했어요. 투명한 아크릴 박스도 생각해봤는데 목업을 받아보니 생각보다 존재감이 크더라고요. 촬영 감독님이랑 정말 열심히 브레인 스토밍을 하다가 얼음을 떠올렸죠. 공간을 만들 수 있지만 녹고 나면 존재하지 않는 재료잖아요. 게다가 철거로 인한 쓰레기도 안 생기고. 딱 제가 원하는 재료였죠. 꼭 벽과 바닥을 지어야만 공간을 구축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이 결과물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해선 시간성이 필요해 영상을 찍게 되었죠.

 

 

평창동에 위치한 주택 리모델링 작업. 작은 건축 프로젝트였지만 이를 통해 맺은 인연을 아직도 이어간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 작업 중 하나로 뽑았다. 

 


기록 속에 존재해 시각, 청각 등 감각으로는 인지할 수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현존하지 않는 공간이네요. ‘남이 설계한 집’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은데, 이 영상 작업에는 실제 건물이 등장해요. ‘남이 설계한 집’은 한마디로 말하면 짓지 않고 리모델링을 시도하는 작업이었어요. 건축을 하는 입장에서 설계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완성된 직후예요. 언젠가 내가 설계한 건물을 완공 후, 딱 구조만 있을 때 그곳에서 안무가와 협업해 이를 드러낼 수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어요. 그러다 경기도 양평에 한 버려진 건물을 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요즘 건축계의 가장 큰 화두는 도시재생, 리모델링 등이거든요. 저 역시 리모델링에 관심이 많은데, 짓지 않고 공간을 재해석해보자 한 거죠. ‘마지막 장소’가 궁금증으로 시작해서 어떻게든 완성한 설익은 프로젝트였다면 이번엔 조금 더 준비된 상태에서 하고 싶었어요. 촬영 감독님, 안무가와 각자의 방식으로 어떻게 공간을 재해석할지 정말 많이 상의했어요. 사실 영상은 프로젝트의 일부분이고 드로잉, 책, 사진까지가 프로젝트의 전체였고 전시도 진행했어요. 짓지만 않았을 뿐 설계하듯 그린 드로잉이라던가, 건물을 리모델링할 때 필요한 것들을 어느 정도 갖춘 셈이죠. 

 

 

경사지를 따라 34채의 주택을 적절하게 배치한 용인 수지구에 위치한 동천동 주택단지. 

 


결국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작업들은 공간을 표현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일 뿐이네요? 그렇죠. 수단이에요. 결국 이 모든 프로젝트를 통해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공간’이죠. 


보통 사람들은 ‘공간’이라 하면 건물을 가장 많이 떠올리죠. 거기서 더 나아가면 야외 정도고요. 그런데 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실존하지 않지만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것 또한 공간이 될 수 있겠다 싶어요. 그 외에도 공간이라 정의할 수 있는 게 또 있겠죠? 그렇다면 소장님이 생각하시는 공간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과학자인 저자가 진행하는 북토크에서 과학자를 당황하게 하려면 시간과 공간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 있어요. 근데 그 질문이 저에게 올 줄이야(웃음). 사전 질문지에서 이 질문을 발견하고 과학적인 부분을 설명해야 하나, 아님 경험에 입각해 말해야 하나 많이 고민했는데, 답변드릴 수 있어요. 좀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는 공간으로 인해서 사람이 존재하고 또 사람이 있기 때문에 공간이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굉장히 신비로운 어떠한 것인데, 다이아거날 써츠는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중이죠.

 

 

다이아거날 써츠가 처음 디렉팅한 영상 작업인 ‘마지막 장소’는 무언가를 건축하지 않고 공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영상감독 박수환(Swan Park), 안무가 아나 안데르그(Anna Anderegg)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해 완성했다. 

 


다이아거날 써츠는 원래 강소진 소장님과 함께 운영했었죠. 그런데 작년 이맘때부터 혼자 이끌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작업 과정에서 달라진 건 없나요? 지금은 직원이 5명인데, 강소진 소장과 함께할 땐 둘이서 대부분의 것들을 감당했어요. 인턴이 간간이 도와주었지만 저와 강소진 소장으로부터 프로젝트가 시작해 둘이 그 프로젝트를 끝내는 방식이었죠. 저는 그런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소비적인 프로젝트를 계속 해내서는 지속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다이아거날 써츠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작업하는 집단인지부터 알아야 했죠. 물론 지금도 다이아거날 써츠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집단인지를 계속 묻고 찾아가고 있지만 이제 조금은 우린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이아거날 써츠는 무엇이에요? 다이아거날 써츠죠(웃음). 현재는 이미 존재하지만 익숙해서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건축,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언어로 극명화해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요. 하지만 미래는 저도 알 수 없어요. 다이아거날 써츠는 계속해서 변화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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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임한수(인물), 사진 제공 다이아거날 써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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