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파리를 새롭게 바라보는 법

미국의 사진작가 멜빈 소콜스키가 어린 시절 마주한 그림으로부터 시작된 초현실적 여정. 커다란 비눗방울을 타고, 혹은 맨몸으로 파리를 날아다니는 모델들의 모습은 익숙한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는 법을 알려준다.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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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눗방울처럼 속이 환히 비치는 구체에 둘러싸인 여자가 센강 위에 서 있다. 강의 표면엔 구체와 여자의 실루엣이 물결에 따라 어른거린다. 여자를 둘러싼 투명한 보호막에는 관찰자의 시선에 채 담기지 못한 뒤편의 풍경이 비친다. 신화적인 분위기마저 감도는 이 사진은 미국의 사진작가 멜빈 소콜스키(Melvin Sokolsky)의 작품 ‘버블(Bubble)’ 시리즈 중 하나다. 미국 <하퍼스 바자>의 지면을 통해 공개된 이 연작은 사진계와 대중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냈다. 빅토리아&앨버트 박물관은 이 작품을 패션 사진계의 지난 100년을 대표하는 사진 중 한 장으로 선정했다. 웬 호들갑인가 싶을 수 있다. 약간의 작업만 거치면 강 위는 말할 것도 없고, 우주를 부유하는 피사체의 모습도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닌가.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멜빈 소콜스키가 ‘버블’ 시리즈를 찍은 시기가 1963년이란 사실이다.

 

 

 

멜빈 소콜스키는 2년 뒤 이와 비슷한 시리즈를 한 번 더 선보인다. 새로운 작품 속 여자는 알을 깨고 나오듯 제 몸을 감싸던 투명한 구체로부터 벗어난다. 그리고 팔과 다리를 자유롭게 휘저으며 날아다닌다. ‘플라이(Fly)’ 시리즈다. 두 시리즈는 모두 파리에서 촬영했다. 루이 비통은 1960년대의 파리를 미래 도시처럼 낯설게 만든 멜빈 소콜스키의 두 연작에 주목했다. 그리고 이를 묶어 루이 비통 트래블 포토그래피 컬렉션 ‘패션 아이(Fashion Eye)’ 시리즈의 2021년 가을 신작 중 하나로 출간했다. 

 

 

 

우연히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을 보았어요. 한번 감상한 뒤로 제 마음속 깊은 곳에 그 인상이 남아 있었는데, 새로운 촬영을 통해 이를 사진으로 실현시켜보고 싶어졌죠.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상상

1938년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멜빈 소콜스키는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그러나 열 살 무렵 아버지의 상자형 사진기로 찍은 첫 사진의 인화지를 손에 쥔 이후 줄곧 사진가의 길을 꿈꾼다. 그는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진술을 익히고, 광고 사진가들에게 조언을 얻으며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사진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초창기 그는 사진계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나 1959년, 멜빈 소콜스키의 재능을 알아본 아트 디렉터 헨리 울프(Henry Wolf)에 의해 <하퍼스 바자>에 합류하게 되고, 몇 해 뒤 자신의 이름을 전 세계에 널리 떨치게 해준 ‘버블’ 시리즈를 찍는다. 촬영 목적은 컬렉션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지만, 오래전부터 그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영감을 구현해 전설적인 시리즈를 만든다. “열 살 때였어요. 서점에서 우연히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그림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을 보았어요. 한번 감상한 뒤로 제 마음속 깊은 곳에 그 인상이 남아 있었는데, 새로운 촬영을 통해 이를 사진으로 실현시켜보고 싶어졌죠.” 파릇한 잔디가 깔린 그림 속 동산에는 쾌락을 탐하는 나체의 사람들과 동물이 가득 차 있다. 그중에는 투명한 방울 속에서 은밀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도 보인다.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아이디어는 백화점 쇼윈도에서 얻었다. 데커레이션용으로 만든 투명한 플렉시글라스 구체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제 아이디어를 들은 리처드 아베돈(Richard Avedon)은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 말했어요.” 그러나 되려 그 말을 듣는 순간 상상력이 더 풍부하게 샘솟았다. 이전에 찍어본 적이 있는 것마냥 잘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는 특수 제작한 커다란 플렉시글라스 반구체 두 개를 이어 하나로 만들었다. 모델이 들어간 구체를 볼트와 경첩으로 고정한 뒤 35mm 산업용 케이블에 연결해 크레인에 매달았다. 시범 촬영을 위해 뉴저지 위호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 비눗방울은 파리로 날아와 센강에 안착한다. 그리고 생제르맹데프레 거리, 불로뉴의 숲 등 파리 곳곳을 돌아다니다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알렉상드르 3세 다리에 도달하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멜빈 소콜스키는 이 초현실적인 행적을 프레임에 담았다. 

 

 

 

 

자유로운 비행을 향한 소망

“당시 날아오르는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대부분 어딘가 경직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죠. 연출이 아닌 실제 날고 있다고 착각할 만큼 자연스러운 비행 장면을 찍고 싶었어요.” 1965년 멜빈 소콜스키는 ‘버블’ 시리즈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는 ‘플라이’ 시리즈를 찍는다. 투명하고 둥근 보호막을 벗어난 모델은 맨몸에 35mm 산업용 케이블을 매달고 하늘을 날게 된다. “자신을 보호해주는 거대한 비눗방울이 없어졌기 때문에 아마 더 무서웠을 거예요.” 멜빈 소콜스키는 ‘플라이’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촬영하기 전 스튜디오에서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쳤다. 당시 모델이었던 도로시아 맥고완(Dorothea McGowan)은 높은 공중에서도 겁내지 않고 역동적으로 몸을 움직여 멜빈 소콜스키를 만족시켰다. 새로운 여정의 배경은 레스토랑 안이 되기도 하고 주택가 지붕 너머가 되기도 했다. ‘버블’ 시리즈에서 다수의 작품 제목이 촬영 지명을 따른 것과 달리 ‘플라이’ 시리즈의 대부분은 ‘점프(Jump)’, ‘공중을 걷다(Walk on the Air)’ 등 동작에 초점을 맞춘 제목이 붙는다. 화면 구성에 있어서도 주변 풍경이 보이는 면적이 줄고 모델이 보다 전면에 등장한다. 더불어 보호막인 동시에 방해물이기도 했던 거대한 비눗방울에서 해방된 자유를 만끽하는 듯한 역동적인 포즈는 시선을 인물에게 집중시킨다. 이로 인해 배경은 여행지와 같은 낯선 장소가 아닌, 마치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나는 풍경처럼 심상에 자연스럽게 스민다. ‘버블’ 시리즈가 거대한 투명 비눗방울을 타고 온 이방인이 파리 곳곳을 탐방하는 재미라면, ‘플라이’ 시리즈는 하늘을 나는 초현실적인 장면과 일상화된 배경이 만나 만들어낸 아이러니를 체험하는 또 다른 유희랄까. 멜빈 소콜스키의 상상력은 우리에게 친숙한 파리를 익숙한 듯 낯선 미지의 세계처럼 느끼는 법을 제시한다.    

 

PARIS BY MELVIN SOKOLSKY

루이 비통 트래블 포토그래피 컬렉션 ‘패션 아이’ 시리즈의 2021년 가을 신간 중 하나로 미국의 사진작가 멜빈 소콜스키의 <파리(Paris)> 편이 출간된다. 그의 ‘버블’과 ‘플라이’ 연작의 이미지를 한데 모은 사진집이다. 비눗방울을 연상시키는 투명한 구 안에서 혹은 맨몸으로 공중에 떠 파리의 곳곳을 유영하는 듯한 이미지는 낭만의 도시 파리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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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루이 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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