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승부사, 정웅인

배우 정웅인의 연기는 지난 25년 동안 한번도 무딘 적이 없었다. 다양한 무대를 오가며 연기에 깊이를 더해온 승부사, 정웅인과 나눈 스물다섯 가지 질문과 답.

2021.09.23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왼쪽) 화이트 재킷과 셔츠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오른쪽) 블랙 슈트는 솔리드 옴므,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테이블은 메종 바로바우.

 

 

25년 전 데뷔 당시, 그해의 기억 대학 동기인 장항준 감독이 시트콤 <천일야화> 메인 작가로 데뷔하면서 연극판에 있던 저를 불렀어요. 아르바이트 겸 단역을 제안했는데, 갑자기 주인공 자리가 펑크 나면서 행운이 제게 굴러왔죠. 항준이에겐 늘 고마워요. 벌써 데뷔 25년인가, 놀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열심히 잘 살아왔다고 저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어요. 


배우가 된 계기 고등학생 때 선배들의 권유로 연극반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연극부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상상이 가지 않네요.   


정웅인의 청춘기 연기 외 다른 길은 쳐다보지 않았어요. 연극과 영화, 방송 드라마 사이에서 고민과 불안이 피어났지만, 연기라는 뼈대는 변함없이 단단했죠. 열정과 자신감이 넘쳤고, 뜨거웠던 젊은이였습니다(웃음).   

 

그때로 돌아간다면 ‘지금처럼 하던 대로 하라’고 말할 것 같아요. 우리 직업이 인기가 하늘로 치솟는다고 한들, 어느 곡선을 타고 내려올지 아무도 몰라요. 마치 주식 그래프와 같죠. 잘된다 한들 자랑할 필요 없고, 안 된다 한들 한탄할 필요가 없어요. 열정을 가지고 연기하면, 언젠가는 나만의 상승 곡선을 타는 때가 오니까요.  

 

차곡차곡 쌓아온 필모그래피의 비결 끊임없이 작품하는 게 직업적인 도리라 생각했고 열정도, 욕심도 많았죠. 생활인 배우다 보니 경제적인 면도 물론 있습니다.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니트는 프레드 페리, 팬츠는 솔리드 옴므.

 

 

인생을 대표하는 작품 시트콤 <세 친구>와 영화 <두사부일체>는 잊을 수 없어요. 개그맨 출신으로 오해한 분들도 많았죠.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가 반복되어 지루함과 갈증을 느꼈던 찰나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민준국’이 찾아왔어요. 그때부터 제2의 연기 인생이 펼쳐져 지금까지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유행어가 있는 배우 배우의 유행어는 희극인의 유행어와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작품이 흥행했지만 ‘감 잡았어’, ‘죽일 거다’ 대사가 유행할 줄은 상상하지 못했어요. ‘짤’이라고 하죠? 정수기 옆에 ‘물 흘리면 죽일 거다’라고 써넣은 사진을 보면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인생의 기회 히트작을 놓쳐서 아쉬워한 적은 없어요. 뒤돌아보진 않아요.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믿어요. 


행복했던 촬영장 사극 <홍국영>에는 최불암 선생님을 비롯해 어마어마한 대선배님들이 조정 대신으로 출연하셨어요. 촬영이 끝나면 MBC 앞 호프집에 모여서 선배님들께 연기와 삶의 지혜를 들었죠. 그 기억이 아직도 따스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그리움을 그곳에서 달랬나 봅니다. 행복이란 게 별거 있나요? 좋은 사람들과 사고 없이 작업하고 즐겁게 헤어지면 행복한 거죠. 


정형화되지 않은 캐릭터의 비밀 엄청난 칭찬인데요(웃음)? A, B, C란 색색의 연기 페인트가 있다면 배역에 따라 각기 다른 배합을 고민해요. 물과 흰색, 검은색을 섞는 양도 미묘하게 달라지고요. 재방송과 다시보기 서비스가 많아서 고민이 더 깊어져야 하죠. 쉽지가 않네요(웃음). 

 

잊지 못할 칭찬 정웅인의 연기는 ‘섬세하다 못해 처절한 사람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제 인생도 금수저는 아니었으니까, 처절한 욕망 같은 게 있었죠.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팬츠는 아람, 슈즈는 바나나핏.

 

 

요즘 깨달은 것 나이를 먹을수록 연기가 더 어려워져요. 그렇지만 몸은 사리지 말아야지요. 심장마비가 왔다면 책상 위에 부딪쳐 넘어지고, 장군이라면 한 손에 칼을 든 채 말을 타야 실감나는 몰입을 이끌 수 있어요. ‘저 배우, 새로 집 계약했나봐, 연기가 처절해’란 말을 듣는 게 좋아요. 나이 들면서 받는 대우와 배려, 그 안락함에 기대면 위험하거든요. 


배우로서 경계하는 것 나태함. 매너리즘, 타성에 젖지 않고, 거만해지지 않으려고 늘 애써요. 


나에게 무대는 평생 먹거리의 훈련 장소예요. 가장 두려운 건, 연기의 근간인 무대에 더 이상 서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롤모델 얼마 전 이순재 선생님이 상기된 얼굴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리어왕>을 맡은 소식을 전해주셨어요. 원대사로 읊는 3시간짜리 작품이거든요. 어찌나 자랑하시던지! 정말 멋지잖아요? 그때 롤모델을 확실히 정했죠.    


좋은 배우의 덕목 주변에 대한 배려가 가장 큽니다. 늙지 않는 생활 태도와 습관도 중요하죠. 그리고  좋은 대본을 볼 수 있는 안목, 주어진 상황에 시대를 녹인 연기를 펼쳐 나가야지요. 


배우로서 정웅인의 강점 웃음과 그늘. 배우 잭 니컬슨과 짐 캐리. 두 이미지가 공존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어요. 지금까지 밥 먹고 살 수 있는 이유인가 봐요(웃음). 
 

슬럼프의 극복 드라마 <오작교 형제들>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뒤로, 한동안 일이 없어서 힘든 적이 있어요. 이미지가 반복되는 지루함도 겹쳤고요. 그때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연결되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50대는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 지천명이라고 하잖아요. 이제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요. 

 

 

롱 재킷은 아트이즈오버, 터틀넥은 DKNY, 셔츠는 8 by YOOX, 팬츠는 아람, 슈즈는 바나나핏. 의자는 메종 바로바우. 

 

 

삶의 에너지를 주는 취미 가족과 맛있는 밥 먹으면서 나누는 맥주 한 잔이 낙이죠. 최근 아내와 함께할 수 있는 취미를 찾다 골프에 입문했어요. 새로운 걸 시작했으니 더 재밌게 살아야죠. 


예능의 추억 <아빠! 어디가?>는 첫째 세윤이와 여행하는 스케줄이라 오케이했는데, 나중에는 가족이 총출동하게 됐어요. 좋은 경험이었죠. 지금도 가족끼리 추억 삼아 종종 이야기해요.   


가족과의 시간 첫째는 중학생이 됐어요. 사춘기에 돌입했죠. 순리대로 살라며 믿고 지켜보고 있어요. 둘째는 미술을 해요.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바빠요. 최근에는 막내와 시간을 자주 보냈어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슬슬 부모와 떨어질 준비를 하거든요. 예전에는 달려와 꽉 안겼다면 이제 몸을 ‘슥’ 빼요. 아이들의 성장을 존중하고 또 응원하면서 받아들이고 있어요. 


세 딸이 나를 닮길 바라는 것 주관을 지키며 살되 주변을 보듬는 것, 그리고 눈치가 있어야 자신의 인생에서 캐스팅될 수 있다고 말해요.


앞으로의 계획 이민 4세대의 삶을 담은 드라마 <파친코>는 캐나다에서 촬영을 끝냈어요. 글로벌 OTT 애플TV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에요. JTBC 뮤직 드라마 <IDOL>에서 아이돌 그룹 ‘커튼콜’을 만든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분합니다.  


정웅인의 꿈 롤모델, 이순재 선생님의 연세에 고전극을 소화하는 것이 꿈입니다. 마이크를 통하지 않는 육성과 숨소리, 움직이는 마찰음으로 관객과 호흡하는 거죠. 그리고 정웅인이 화면에 나오면 의자를 고쳐 앉게 되는, 기대감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 


스스로에게 건네는 한마디 지금도 말해요. ‘너는 60대에 획기적인 모습을 보여줄 거야’라고요. 시간이 흐르면 ‘돌아보지 마. 넌 70대에 인생 정점을 맞이할 거야’라고 주문을 외우겠죠.  

 

스타일리스트 박지영(자이언트)  헤어 안미연 메이크업 오가영 가구 협조 메종 바로바우(barobau.com)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박소현PHOTO : 고원태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