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한 권의 책을 재탄생시키는 북 디자이너를

빛을 보지 못한 가치 있는 텍스트를 발굴해내는 기획자와 이를 아름다운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시키는 북 디자이너를 만났다.

20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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읻다 출판사 대표

김현우 

대중은 텍스트에 내재한 가치를 그 자체로 판단하지 않는다. 기획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책으로 묶느냐에 따라 평가가 좌우된다. 읻다 출판사는 사람들이 아직 주목하지 않은 주옥같은 고전을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고, 텍스트의 본질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기획한다. 2015년 출범한 노동 공유형 독립 출판 프로젝트 읻다를 시작으로 출판사가 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읻다의 역사를 지켜본 김현우 대표를 만났다. 


출판사의 전신 읻다 프로젝트가 처음 선보인 괄호 시리즈는 정형화된 틀을 탈피하며 큰 주목을 받았어요. 어떤 시도를 했나요? 가장 좋은 예로 1권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전쟁일기>를 들 수 있겠네요. 비트겐슈타인의 유고 노트 3권을 다뤘는데, 일부는 철학 작업 노트고 나머지는 일기예요.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철학 작업 혹은 일기만 각각 모아 출간했는데 저흰 이걸 같이 다뤄보자 싶었죠. 그래서 날짜별로 철학 작업과 일기를 나란히 배치했어요. 예를 들어 7월 1일이면 한쪽 페이지에는 그날 노트에 쓴 철학 작업을, 반대쪽 페이지에는 일기를 담았죠. 그래서 철학 작업이나 일기를 쓰지 않은 날은 한 면이 비어 있어요. 처음엔 인쇄 사고 아니냐는 전화도 받았죠(웃음). 그렇게 작업한 게 세계 최초였고, 현재 독일에서 저희와 같은 판형의 출간을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괄호 시리즈 외에 어떤 작업을 하셨나요? 괄호 시리즈 외에 ‘읻다 시인선’, ‘척도와 구성’, ‘잔상’, ‘상응’ 시리즈가 있어요. 읻다 시인선은 제가 회사에 들어오기 전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특화시켜보자는 취지로 기획했죠. 프로젝트 형태로 운영하던 당시, 외국 문학에 관심을 둔 동료가 많았거든요. 나머지 시리즈는 제가 회사에 들어온 이후 구성한 것인데, 출판사를 유지하려면 우리의 특징을 보여주면서도 스스로 재밌게 작업할 수 있는 시리즈를 내야겠다 싶어 시작했어요. 상응 시리즈는 쉽게 말하면 서한집이에요. 이전 책을 준비하며 저자들을 연구할 때 처음엔 작품으로 시작해서 나중엔 편지나 인터뷰 등을 찾아보게 되었어요. 그때 든 생각이 이런 편지들을 묶어도 특색 있겠다 싶었죠. 잔상 시리즈는 이미지를 어떻게 다루고 이해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에요. 보통 미술 관련 책이면 작가론이나 예술사, 회화론이 대부분인데 잔상 시리즈는 미술사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철학서나 역사서 같기도 하죠. 척도와 구성 시리즈는 의학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어요. 사람의 몸을 가지고 사람이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는 서적들이죠.


읻다 출판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전이나 재조명할 가치가 있는 텍스트를 발굴해요. 그만큼 찾기 힘든 텍스트를 다루는데, 어떤 경로로 발견하나요? 가장 좋은 방법은 훌륭한 해외 출판사의 리스트를 훑어보는 거예요. 그 안에서 저희가 내면 좋을 책을 찾으면 다른 국가에서 출판된 동일한 책이 어떤 출판사에서 어떤 테마로 출간됐는지 살펴요. 기획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가늠해볼 수 있죠. 또 다른 방법으로 역자와 같이 해당 분야·작가·언어의 책을 많이 접한 분들의 의견도 듣죠.


그렇게 찾아낸 텍스트를 책으로 만들기 전, 충분한 가치가 있는지 어떻게 판단하나요? 가장 큰 기준은 이 책이 과연 독자를 자극할 수 있는가예요. 작성된 시대, 언어권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당시 저자의 의도와 정서가 담긴 글을 번역해 출간했을 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자극을 줄 수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텍스트가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되기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되나요? 텍스트 의미를 잘 살려 번역해줄 역자를 찾는 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쏟아요. 난도가 높고 특수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 대부분이라 해당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역자와 협업하는 게 필수거든요. 일단 그들을 찾아가서 ‘선생님 저희가 이 책을 출간하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하고 묻죠. 저희는 작은 출판사고 보통 판권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서적을 다뤄서 역자의 스케줄에 맞춰 판권 계약을 해요(웃음). 


역자와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중요하겠군요. 맞아요, 사실 저희의 역할은 중개자죠. 뮤지컬로 친다면 뒤에서 공연이 잘 진행될 수 있게 서포트해주는 스태프고 번역가가 배우인 거고요. 그래서 역자를 신뢰하는 것은 물론 이 책을 고른 이유, 국내 독자에게 어떠한 것을 전하고 싶은지 등을 잘 전달하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게 저희가 할 일이라 생각해요.


디자이너와의 협업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출판사의 색깔을 한정하기보단 디자이너 각자의 해석과 스타일을 존중해요. 단, 시리즈로 책을 출간하다 보니 연속성은 중시해요. 예를 들어 새롭게 기획한 시리즈의 표지를 디자인할 때 저자의 서명을 넣는다고 하면 앞으로 다른 저자의 글이 같은 시리즈로 나왔을 때 서명을 어떻게 통일성 있게 배치할 수 있는지 등을 고려하는 식으로요.


읻다 출판사에 대한 기억에 남는 피드백은 무엇이 있나요? 수십 년간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Friedrich Holderlin)을 연구하고 작품을 번역해오신 장영태 선생님의 피드백이 기억에 남아요. 시 전집부터 소설, 희극 등 작가가 남긴 텍스트의 대부분을 번역한 분이에요. 그분이 아직 번역해 출간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횔덜린의 텍스트가 서한집인데 내년에 저희 출판사와 함께 펴내기로 했어요. 워낙 의미 있는 작업물이다 보니 선생님께서 작업을 마치고 어느 출판사에서 내야 할지 오래 고민하시다 저희를 선택했어요. 그동안 읻다 출판사에서 낸 책들을 보고 함께 작업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오래 공부하신 선생님께 인정받은 느낌이라 감회가 새로웠어요.


현재 진행 중인 시리즈 외에 앞으로 나올 시리즈가 있을까요? 올해 하반기에 세 가지 시리즈를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에요. 과학 시리즈는 전문서와 교양 과학 서적의 중간쯤 되는 책들로 구성할 예정이고, 첫 번째 책은 AI의 시초라 여겨지는 사이버네틱스 관련 책이에요. 그 외 글이나 방송으로 남은 작가의 인터뷰를 모은 인터뷰집도 나올 예정이고요. 현재 저희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 대부분이 17세기부터 20세기 중반에 작성된 텍스트를 기반으로 하는데, 그 이전 시기의 철학, 역사 등을 다룬 중세 시리즈도 계획 중이에요. 


언젠가 읻다 출판사에서 펴내고 싶은 책은?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의 시를 모은 시집을 외국어로 번역해 해외에 선보이고 싶어요. 업무상 해외 저작권사와 메일을 주고받을 일이 많은데 가끔 한국 시 추천을 의뢰받아요. 혹은 역으로 저희가 해외 출판사에 다양한 언어권의 시를 출판했는데 어째서 한국 시집은 없는지 물어볼 때도 있고요. 현재 프로젝트 팀을 짜서 진행 중이며, 번역까지 저희가 하려고 합니다. 1차로는 영어와 일본어, 2차로는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총 5개 언어로 번역해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김현우 대표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고전이나 재조명할 가치가 있는 텍스트를 발굴해 번역 출간하는 읻다 출판사의 대표. 출판사의 시발점이 된 젊은 출판인들이 모여 만든 노동 공유형 독립 출판 프로젝트 읻다의 초창기 멤버이기도 하다. 

 

 

 

 

 

북 디자이너

석윤이

표지는 책의 첫인상을 좌우한다. 디자인에 따라 읽을 책에 대한 기대감을 품기도, 혹은 손에서 놓아버리기도 한다. 11년간 열린책들에서 근무하고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약하는 석윤이 디자이너는 텍스트로 향하는 관문을 디자인한다. 표지를 캔버스 삼아 책의 핵심 요소를 한 점의 그래픽 아트 작품으로 재현하는 듯한 그에게 북 디자인 세계에 대해 물었다. 


북 디자이너가 된 계기가 궁금해요.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전업 작가를 꿈꾸던 중 개인적 사정으로 경제활동에 뛰어들게 되었어요. 검퓨터 학원을 다니며 디자인 툴을 익히고 여러 가지 시안을 만들며 포트폴리오를 쌓다가 서점에서 우연히 열린책들에서 펴낸 책들을 봤어요. 이런 디자인을 하는 회사에서 일하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관심이 생겨 출판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는데 때마침 신입 디자이너를 모집하고 있길래 지원해 입사하게 됐어요.


디자인이 아닌 회화를 전공했기에 갖는 장단점은 무엇이 있나요?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다가 한정된 작은 공간에 디자인하는 게 처음엔 무척 어려웠어요. 그리고 책은 그림과 달리 제목, 지은이, 옮긴이, 출판사 로고 등 필수적으로 넣어야 할 것들이 있잖아요. 초창기엔 그런 필수 요소를 간과했어요. 편집에 대한 훈련이 부족했죠. 이미지 위주로 고려해 작업한 뒤 어떻게든 끼워넣었어요(웃음). 한 3년 차까지는 배우는 시기였던 거 같아요. 장점은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작업하고 색을 조화롭게 쓴다는 평을 들은 기억이 나요.


많은 상을 안겨준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세트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작업일 거 같아요. 열린책들이 소중히 여기는 작가 12인의 대표작 기념 판인 만큼 국내에서 아직 시도하지 않은 디자인을 하고 싶었죠. 처음에는 작가별로 대표하는 색을 선정해 컬러칩을 나누는 것에서 시작했어요. 이후 각 책의 특성을 분석해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했죠. 예를 들어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은 소설 구조 자체가 복잡하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느낌의 그래픽 디자인을 적용하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는 향에 대한 소설이기에 그러데이션을 사용하는 식으로요. 새로운 디자인은 띠지 형태로 덧입혀 선물 포장 같은 느낌을 주었죠. 내부 커버는 시간이 지나도 소장 가치가 있도록 깔끔하게 텍스트만 넣었어요. 

 

 


프리랜서로 독립한 이후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요? 모두 소중하지만 단 하나만 꼽으라면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을 선택하고 싶어요. 1959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포스터의 일러스트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어요. 의뢰를 받은 순간부터 꼭 영화 포스터의 이미지를 살리고 싶었는데, 의도대로 구현해서 뿌듯했던 작업이에요. 이후 사람들이 제 작업물에 대해 이야기할 때 꼭 한 번씩 언급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처럼 이미 출간된 책을 리커버하는 작업은 완전히 새롭게 출판되는 서적을 디자인할 때와 중점을 두는 부분이 다를 거 같아요. 리커버 디자인의 경우 출판사가 왜 이 책을 리커버하길 원하는지, 그리고 새로운 표지가 가졌으면 하는 포인트가 뭔지를 중점적으로 생각해요. 익숙함이 주는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커버를 하는 데엔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걸 충족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죠. 


평소 디자인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인테리어 서적이나 예술서 등에서 주로 얻어요. 예를 들면 책에서 본 공간 속 커튼의 패턴이 지금 작업하고 있는 책과 어울릴 거 같다, 영화 장면에서 발견한 공간 오브제를 포인트 요소로 사용하면 조화로울 것 같다 등 의외의 것들에서 얻는 편이에요. 


좋은 책 디자인이 갖춰야 할 요소는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이건 디자이너마다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콕 집어 얘기하긴 힘들어요. 타이포그래피에 중점을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종이 질감부터 무게 등 만듦새에 굉장히 공을 들이기도 하니까요. 저의 경우 눈에 띄는 이미지나 컬러를 이용해 책을 오브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걸 좋아해요. 대신 텍스트의 가독성을 해치는 디자인은 지양해요. 책의 본질을 흐린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보통 표지에 멋을 부리고 내지는 되도록 클래식하게 디자인하죠. 그러나 겉과 안이 연결되는 어떤 지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커버와 내지 디자인을 함께 진행할 때 통일감을 신경 쓰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다른 디자이너의 작업물이 있을까요? 워크룸프레스에서 펴낸 책들의 디자인을 좋아해요. 제가 생각하는 선진적인 디자인을 그 출판사에서 대부분 실현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운영하는 출판사이다 보니 실험적인 디자인을 꾸준히 시도하는 점이 인상 깊어요. 


한 권의 책 구성에 있어 디자인이 하는 역할을 정의한다면? 오브제 역할을 하는 동시에 포스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심미적인 부분을 고려하기 보다 책의 내용이나 의미를 재해석하는 데에만 치중한 디자인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책도 물건이기 때문에 진열대에 놓였을 때 예쁜 게 눈에 띄고 사고 싶어져요. 그렇다고 본래의 기능을 잃어서도 안 되죠. 그래서 심미성과 정보성을 균형 있게 갖추는 게 중요해요. 

 

석윤이 디자이너 
프리랜스 북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동시에 디자인 스튜디오 모스그래픽을 이끌고 있다. 이전엔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11년간 북 디자이너로 일했다. 재직 중 진행한 열린책들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 작가 12세트 디자인으로 2016년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에서 그래픽 부문상, ‘2016 올해의 출판인상’ 디자인 부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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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임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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