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샬롯, 그리고 새로운 시작

셰프로서의 삶의 시작점에 샬롯이 있었다고 했다. ‘더 그린테이블’ 김은희 오너 셰프의 이야기다.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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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할 때, 이를 알아챌 수 있는 신호 중 하나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대상에 대한 궁금증이다. ‘더 그린테이블’ 김은희 오너 셰프가 자신 안에 숨어 있던 요리에 대한 열정을 명징하게 깨달은 순간 역시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을 때다. 그 시작은 TV에서 우연히 본 샬롯이었다. “1995년쯤이었던 거 같아요. 대학생 때죠. TV를 켰는데 전 세계 요리사들의 주방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어요. 화면 속 셰프가 요리의 첫 순서로 샬롯을 볶고 있더라고요. ‘저 낯선 식재료의 정체가 뭐지?’라는 의문이 들었죠.” 셰프의 손짓에 따라 팬 위에서 리드미컬하게 춤을 추는 샬롯은 그 회에만 등장한 게 아니었다. 다음 회에도, 그다음 회에도 대부분의 셰프가 조리의 첫 순서로 샬롯을 볶았다. 김은희 셰프는 양파와 닮은 듯 어딘가 다른 저게 대체 뭐기에 매번 제일 첫 순서로 등장하나 싶어 다큐멘터리를 계속 보았다. 그러다 보니 리소토에 넣은 무를 닮은 빨간 비트의 정체가 궁금해졌고, 연쇄적으로 또 다른 식재료와 요리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사실 김은희 셰프는 오래전부터 요리에 흥미는 있었지만 자신이 셰프가 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인생의 방향을 바꾸게 만든 일생일대의 사고를 겪기 전까지는.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가 사과를 깎으면 옆에 앉아 저도 해보고 싶다고 졸랐죠.” 고추장, 간장, 된장을 직접 만들 정도로 요리에 능숙한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는 날엔 꼭 옆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고등학생인 언니들이 가정 수업에서 고로케, 핫케이크 만드는 법을 배워오면 어깨너머로 익혀 직접 해 먹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여성 셰프는 거의 전무했고, 그는 셰프란 직업을 장래 희망의 범주에 넣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학 전공도 요리와는 어떤 관련도 없는 환경공학을 택했다. 졸업 후엔 컴퓨터라는 공학적 요소와 어려서부터 좋아한 예술이 접목된 일을 하고 싶어 웹 디자이너로 활약했다. 일에 대한 욕심으로 더 공부하기 위해 미술 대학원을 준비하던 어느 날 인생의 전환점이 된 교통사고가 일어났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지향점이 전복된 순간이었다. “만약 내가 오늘 죽었다면 과연 내 삶이 만족스러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오랜 고민 끝에 요리라면 그럴 수 있겠다라는 판단이 들었어요.” 20대 중반, 지금까지 한국에서 해온 모든 것을 접고 미국 3대 명문 요리대학인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로 유학을 떠났다. 학교에 다니며 수업 시간이나 마트에서 샬롯을 만날 때 그는 종종 생각했다. ‘아, 너였구나. 나를 여기로 이끈 게.’


얼핏 보면 조그마한 자색 양파 같은 샬롯은 한식의 마늘과 양파처럼 프렌치 퀴진에서 자주 사용하는 식재료다. “맛도 양파의 매운맛과 마늘의 알싸함을 모두 지녔어요. 대신 한결 부드럽죠.” 익혔을 때도 비슷하다. 볶은 양파의 달콤함과 구운 마늘의 구수함을 내며 요리에 아로마를 더하고 천연 조미료 역할을 한다. 샬롯의 복합적인 특성을 듣다 보니 김은희 셰프의 삶의 궤적과 어딘가 닮은 듯 느껴졌다. “셰프로 일하기 이전의 경험이 제 요리 세계에 여러모로 영향을 미쳐요. 새로운 메뉴를 구상할 때 마치 과학 실험을 하듯 가설을 세워보고 검증하는 시간을 갖죠. 또 식재료의 과학적인 부분을 공부하고 분석해보기도 하고요. 웹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은 플레이팅에 조금씩 녹아나고요.” 요즘도 김은희 셰프는 주방에서 요리할 때 샬롯을 보며 지난 추억에 잠기곤 한다. 그리고 옛 기억을 떠올리며 콩피를 해보거나 잎을 꽃잎처럼 얇게 벗겨 피클링한 샬롯 자체를 그릇 삼아 오일을 담아내기도 했다. 아마 그에게 샬롯은 여전히 궁금하고 탐구하고 싶은 식재료인가 보다. 김은희 셰프는 여전히 마르지 않는 호기심, 애정을 담아 매일 요리한다.      

 

Stylist 홍서우, 엄지예 Assistant 정유진, 신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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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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