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결국은 좋아서다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b2 프로젝트 권용식, 변재희 대표의 빈티지 가구 컬렉션처럼. 그들의 10년 여정을 담은 <마이 디어 빈티지>가 출간됐다.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2021.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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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산 대학로 우리 집 코앞에 b2 프로젝트가 있었다. 왁자지껄한 거리에서 한 골목 더 들어왔을 뿐인데, 갑자기 유럽의 어느 조용한 거리로 순간 이동한 듯한 곳이었다. 짙은 벽돌 건물에 철재로 더한 심플한 발코니, 루이스 폴센 조명이 흘려보내는 백열등 빛깔, 거기에 한 번도 구경한 적 없는 압도적인 사이즈의 폴 헤닝센 PH 아티초크 램프까지. 1층 카페엔 빈티지 가구들이 무심히 놓여 있는데,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앉고 기대고, 심지어 의자를 끌어당기기도 했다. 음악도 빈티지인지, AFN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연일 기웃거리며 괜히 찾아와서 커피를 마시던 어느 날 이곳의 주인들과 친구가 됐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출신의 변재희 대표와 아티스트 권용식 대표는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자 이 공간을 열었고, 이곳을 채우기 위해 취향에 맞는 빈티지 가구를 찾아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빈티지 컬렉션의 대여정이 시작됐다. 지하와 2층은 빈티지 가구 쇼룸, 1층은 카페, 3, 4층은 그들의 주거 공간이다. 한번 친해지자 무슨 행운인지 나는 b2 프로젝트 어느 층에서나 환영받았다. 이곳에 오면 가장 신나는 일은 2층에 있는 희귀한 오리지널 가구를 내 집 가구처럼 이용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거였다. 베니 워레인 빈티지 모로칸 러그를 지그시 밟고서 폴 키에르홀름 대리석 커피 테이블에 놓인 아이스 라테를 들이켜는 거다. 아름답게 변색된 뵈르게 모겐센 소파의 안락함을 칭송하면서 말이다. 빈티지 가구에 대한 권 대표의 이야기와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한 점도 못 살 게 뻔한 나를 앞에 두고도 확장형 테이블을 해체하고, 의자를 앞뒤 옆으로 뒤집어가며 세부를 설명했다. 가구, 여행, 사람, 문화, 역사…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모두가 했던 것 같다. 드디어 b2 프로젝트 권용식, 변재희 대표의 피, 땀, 눈물, 그리고 무엇보다 빈티지에 대한 사랑을 담은 <마이 디어 빈티지>(몽스북)가 세상에 나왔다. 

 

책이 나왔다. 560페이지에 달하는 역작이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역작이라니, 과찬이다. 책을 본 사람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는데, 실감이 나지 않는다. 우리로선 일상을 기록한 것뿐인데 다른 사람들한테 흥미롭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책 작업은 상상보다 더 고됐다. 일주일에 다섯 꼭지씩, 여든아홉 개의 아이템과 디자이너, 그리고 개인 스토리를 써야 했고, 7만 장에 달하는 사진을 정리해서 포토샵 처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뜻깊은 시간이었다. b2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컬렉팅 여행을 다니며 쉬지 않고 달려왔다. 작년에 코로나19 때문에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지 못했다. 대신 책 작업을 하면서 지난 10년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볼 수 있었다. 


책에 실린 가구 사진이 인상적이다. 정말 꼼꼼하게 담아냈는데, 모두 직접 찍은 거로 알고 있다. 우리가 컬렉팅한 모든 가구는 여행을 하면서 하나하나 직접 산 것이어서 각 가구마다 이야기와 추억이 깃들어 있다. 그런데 판매되면 그 모든 게 사라질까봐 하나의 의식처럼 촬영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빈티지 가구의 희소성과 내 컬렉팅 방식의 특성상 동일 상품을 반복해서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찍은 사진을 판매 사이트에서 계속 활용하지도 못한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데 비해 효용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컬렉션을 꿋꿋이 사진으로 기록했다. 누군가 책을 보고 덕후라는 표현을 했는데, 듣고 보니 내 성향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렵게 찾아낸 빈티지 가구를 타인에게 떠나보내는 기분은? 정말 간직하고 싶은 건 꺼내놓지 않을 때도 있고, 누군가 산다고 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회피하기도 하지만, 아는 사람일수록 더 고집한다. 그럴 때면 판매했음에도 빼앗긴 기분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기에 묶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떠나보냄으로써 새로운 컬렉션의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안목이 높아지면 다른 게 보이기도 한다. 


컬렉션을 할 때 꼭 필요한 게 안목일 거 같다. 안목은 어떻게 높아지는가? 안목은 결국 돈과 시간, 경험이 길러내는 거다.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늘 컬렉션을 옆에 두고 보고 직접 체험해야 안목이 좋아진다고 생각한다. 특히 많이 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직접 내 돈을 내고 살 때 물건을 보는 집중도가 달라진다. 실패를 하며 값비싼 수업료도 치러야 한다. 내게도 뼈아픈 경험들이 있다. 유럽에도 레플리카(복제품)가 많이 돌아다니는데, 처음에는 안목이 없어 그런 제품을 사기도 했다. 그런 물건들은 지금도 처치 곤란이다. 레플리카라는 것을 안 이상 판매할 수도 없고. 안목이 힘을 발휘할 때는 진짜 좋은 물건을 만났을 때다. 좋은 물건을 알아봤다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한다. 다소 비싸더라도 구입하는 것이 맞다. 오리지널 빈티지는 희소하고 점점 더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리지널 빈티지와 리프로덕트, 레플리카. 용어가 다소 혼란스럽다. 오리지널 빈티지는 1950~1970년대에 생산된 것, 리프로덕트 제품은 현재까지 생산되는 제품, 중고 리프로덕트 제품은 1970년대 이후에 생산된 것을 말하고, 레플리카는 복제품, 그러니까 짝퉁을 뜻한다. 빈티지를 구입할 때 레플리카 말고도 조심할 건 오리지널 빈티지로 둔갑한 중고 리프로덕트 제품이다. 짝퉁은 아니지만 오리지널 빈티지와는 분명 구분된다. 사실 사용자가 무엇을 선택하는지는 비판거리가 안 된다. 오리지널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빈티지 디자인은 좋아하지만, 중고품의 사용감이 싫어 리프로덕트 제품을 사는 사람도 있다. 또 빈티지 감성으로 집을 꾸미고 싶지만 돈이 없어 레플리카를 살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판매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유럽 딜러의 말만 믿고 중고 디자인 가구를 수입한 후 빈티지 가구로 판매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오리지널 빈티지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가구가 50년 후면 빈티지가 될까?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1920년 전후에 시작된 바우하우스, 데 스테일 같은 모더니즘 운동은 세계대전 이후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당시의 디자이너들은 가구를 만들 때 기능과 구조, 소재와 형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또 그때까지만 해도 수작업으로 가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규모 공방들이 건재했다. 그렇게 고민과 정성, 오랜 시간을 자양분으로 만들어진 가구의 소재와 디테일은 정말 다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점차 대량 생산과 경제 논리가 지배하면서 공방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가격 경쟁력은 생겼지만 품질은 떨어졌다. 불과 30년 정도 생산된 미드센추리 모던 오리지널은 이제 거의 다 소진됐다. 석 달을 여행해도 몇 개밖에 구입하지 못한다. 빈티지 페어라고는 하지만 오리지널은 10% 미만이고 그나마도 정말 좋은 물건은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다. 시대정신, 뛰어난 품질, 희소성, 이 모든 걸 갖춘 오리지널 빈티지가 어떻게 가치가 없을 수 있겠는가. 

 

 


희귀한 빈티지 가구를 발견한 순간을 이야기한다면?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빈티지 페어에서 윌리 반 데 미에렌의 캐비닛을 만난 순간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독특한 다리 모양과 앞면 철판 위의 푸른 색감의 조화는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건축가이자 벨기에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인 반 데 미에렌은 특정 계층이 아닌 대중을 위한 모던 디자인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간결한 조형미와 뛰어난 기능성을 추구했다.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한 만큼 당시 가격은 저렴했을 테지만 현재 판매가는 높으니 아이러니하다. 막연히 비쌀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캐비닛 주인이 부른 가격은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들켜버린 나는 아무 힘도 없는 협상 약자일 뿐이었다. 

 


디테일이 뛰어난 빈티지 가구 중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피스가 있다면? 네덜란드 인더스트리얼의 표본을 제시한 티에르크 레이옌가의 필라스트로 플라이우드 체어 8000을 들 수 있다. 레이옌가는 잔드보르트에서 대장장이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금속을 다루는 디자이너를 꿈꿨다. 1962년 디자인된 모델 8000은 그가 철을 다루는 데 얼마나 능숙한지 보여준다. 의자의 스틸 프레임을 보면 앞다리는 쭉 뻗어 있는 반면 뒷다리는 사선으로 내려오다 마지막에 한 번 방향을 꺾어 체중을 지탱하도록 설계되었다. 등받이는 허리를 받쳐주는 기본 각도에 곡선을 더해 약간의 긴장감을 줬다. 가장 단순해 보이는 라인에서 깊다 못해 심오했을 그의 고민이 엿보인다. 

 


컬렉션 여행 중에 아찔한 기억도 있을 것 같다.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리는 빈티지 페어에 참가하기 위해 아우토반을 달리고 있을 때였다. 뭔가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경고등이 들어왔는데, 하루밖에 열리지 않는 페어를 못 보게 될까봐 무시했다. 잠시 후 차가 한쪽으로 쏠리더니 연기와 함께 차선을 이탈했다. 타이어가 터진 것이다. 다행히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독일의 겨울에 어둠이 내리자 불안이 엄습했다. 렌터카 회사가 다른 차를 가져와 바꿔주었고, 우리는 간신히 페어를 볼 수 있었다. 시간상 많은 아이템을 볼 순 없었으나, 눈을 사로잡은 책상 하나가 힘든 여정을 단번에 보상해주었다. 마르셀 가스쿠앵의 개성적인 책상은 그날 우리 컬렉션에 들어왔다. 1950년대에 제작된 티크와 오크 소재의 이 라이팅 데스크는 매우 희귀한 아이템으로 컬렉터들의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북엔드가 책상 앞에 붙어 있어 책이 공중에 붕 뜬 느낌을 주며, 독특한 형태로 공간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은?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한 여행은 예기치 않은 장소나 특별한 전문가에게로 이끌 때가 많다.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딜러들, 타고난 감각과 취향으로 컬렉션을 이어가는 컬렉터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파생된 새로운 인연까지. 그중에서도 오늘은 프라하에서 만난 복원 전문가 오타 얘기를 하고 싶다.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는 좋은 소재로 공들여 만든 만큼 내구성이 강하다. 그러나 패브릭이나 가죽은 어쩔 수 없이 시간의 영향을 받는다. 당연히 오리지널 상태 그대로 최고의 상태를 유지하는 물건은 1%도 안 된다. 특히 의자는 리폼한 아이템이 꽤 많은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리폼했느냐다. 오타를 만난 건 체코의 산업 디자이너인 인드리히 할라발라의 스트림라인 라운지 체어 H-269를 만났을 때다. 처음에는 그가 제시한 가격이 만만치 않아 사지 않았다. 이후 다른 곳에서 만난 할라발라 체어는 그의 것과 같지 않았다. 오타는 예전 방식 그대로 복원하는 데 의미를 두고 수고로운 과정을 온전히 감수한다. 스프링을 하나씩 묶고 아프리칸 그라스와 말 털을 사용해 속을 채우는 과정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마무리해 복원하는 것이다. 그는 내가 구입한 체어의 복원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주었는데, 오히려 그에게 지불한 가격이 저렴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복잡하고 정성스러웠다. 

 

인터넷도 있고, 일을 해줄 현지 딜러도 많은데 굳이 컬렉션 여행을 계속하는 이유는? 예전에는 봄에 석 달, 가을에 석 달 유럽에 머물며 바잉을 하고 컨테이너 작업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석 달을 돌아다녀도 컨테이너의 반을 못 채운다. 그만큼 오리지널이 많지 않다. 코로나19 이전에는 1년에 다섯 번씩 나갔다. 우리의 취향을 아는 딜러들이 정보를 보내주면 그때그때 가서 직접 보고 창고로 옮겨놓는 것이다. 눈으로 확인하는 건 새로운 아이템을 만났을 때 더 중요하다. 모르는 물건을 사진만 보고 살 수는 없다. 그런데 안목을 높이려면 계속해서 새로운 걸 보고 경험해야만 한다. 우리가 10년 동안 컬렉팅을 했지만 유럽의 수많은 디자인 중에서 1%도 경험하지 못했다. 미지의 것이 많으니 계속 눈으로 익힐 수밖에. 그들이 그걸 어떻게 놓고 무엇과 매치하고 어떻게 사용하는지까지 직접 경험해보려는 것이다. 나는 한 번 컬렉션한 아이템은 다시 구매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 고객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유통보다는 컬렉션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국면이 진정되면, 다시 컬렉션을 시작할 텐데 앞으로의 컬렉션 방향은? 이젠 유명 디자이너의 제품이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리프로덕트가 생산되고 시중에도 많다. 서유럽의 유명 디자이너 빈티지 시장도 이제 끝이 보인다. 지금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언노운(Unknown) 아이템이다. 그리고 아름답지만 생산성이 떨어져 리프로덕트도 안 나오는 것들. 보통 디자이너나 제작사가 확실해야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컬렉션을 하면서 안목이 높아지면 출처는 그저 참고 사항일 뿐이다. 이제부터는 정말 자신의 안목을 믿고 가는 거다. 새로운 10년은 좀 더 예술에 가까운 빈티지 컬렉션을 모으려고 한다. 다시 대중과는 멀어지겠지만, 소수라도 안목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거로 됐다. 시간이 지나면, 혹시 아는가, 또 다른 문화가 될지.    

 

<마이 디어 빈티지>

10년간, 100,000km를 달려 400개의 숍에서 찾은 오리지널 빈티지 컬렉션의 기록. 빈티지의 시대별 나라별 특징 같은 기본적인 것부터 안목과 취향의 문제까지 폭넓은 내용을 담았다. 권용식 저, 몽스북 간, 33000원.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AHN NA RIANPHOTO : 김욱(인터뷰 사진), 권용식(가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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