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프란체스카 오르시의 신비로운 공간 속으로

유구한 역사를 품은 고택의 옛 모습을 복원하고 그 안에 몽환적인 이미지를 더하니 신성함마저 느껴진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오르시의 신비로운 공간 속으로.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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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느낌을 선사하는 두 여인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는 2층 거실. 초상화는 사진가 모니아 메를로(Monia Merlo)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화가 에바 제르마니(Eva Germani)가 그렸다. 그림 앞에 놓인 분홍색 회전의자는 1970년대 빈티지로, 데코텍스 벨벳으로 리커버링했고 벽면에 놓인 재단사 테이블은 아비뇽에서 구한 19세기 빈티지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 지방 레조에밀리아(Reggio Emilia)주에 자리한 도시 구아스탈라(Guastalla). 인테리어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오르시(Francesca Orsi)는 이 도시 중심부에 있는 17세기 저택을 구입해 보금자리를 마련한, 행복한 삶의 주인공이다. 7세기경 건설됐다 전해지는 구아스탈라 도시는 빼어난 경관과 교통 입지를 갖춘 포(Po)강 유역에 자리해 예로부터 많은 군주들에 의해 점령당했던 곳이다. 1800년대 초에는 나폴레옹 1세가 이곳을 차지한 후 누이동생에게 주었고, 1859년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어 1861년 이탈리아 통일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대 로마 시대부터 교통의 요지로 무역이 번성한 인근의 파르마(Parma)와 같이 19만 명이 사는 도시에 비하면 그 규모가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1만5000명 남짓한 인구가 살아가는 고색창연한 도시지만, 구아스탈라는 사실 알고 보면 우리에게 꽤 익숙한 존재이기도 하다.

 

 

녹슨 철제 도어를 살린 고풍스러운 현관. 자칫 어둡고 답답해 보일 수 있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높은 천장 조건을 살려 길게 늘어지는 샹들리에 한 쌍을 달아 밝고 화려한 느낌을 더했다. 샹들리에는 프랑스 남부 운하 도시 베지에 (Bziers)에서 구한 앤티크다.  

 

 

에나멜을 사용해 복고풍 가전을 만들기로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 스메그(SMEG)가 탄생한 곳으로, 스메그라는 이름은 에나멜을 뜻하는 스말테리에(Smalterie), 연금술을 뜻하는 메탈루르지케(Metallurgiche) 그리고 연고지인 에밀리아네 구아스탈라(Emiliane Guastalla) 지명의 이니셜을 조합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는 이탈리아인이라고 해서 모두 알고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구아스탈라에 정착한 프란체스카 또한 이 도시를 처음부터 알고 있거나 이곳에 살아야겠다 마음먹을 만큼 유명한 지역은 아니다. “제가 이곳에서 살게 된 건 직업적인 선택이었죠. 파르마에 있는 오랑제리 인테리어 스튜디오와 협력하기 위해 근처로 사무실을 옮겨야 했습니다. 그러다 결혼하고 7년 후 헤어지면서 독립해 살 집을 찾게 되었습니다.” 프란체스카와 남편은 떨어져 살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서로 가까운 곳에 있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프란체스카는 파르마와 이웃한 도시 구아스탈라에서 매력적인 집 한 채를 발견하게 된다. 중개사의 도움을 받아 만난 저택은 1600년대 지어져 귀족이 살았으나 마지막 소유자가 사망한 후 수년간 방치되어 있었고, 내부는 성한 곳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열악한 상태였다. “그게 벌써 12년 전이네요.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무의식적으로 끌리는 매력이 있었어요. 비록 보기에는 폐허 같았지만 이를 거둬내면 숨겨진 아름다움이 드러날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안전과 직결된 구조적 노화와 결함이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오르시가 자신이 프랑스 남부에서 구해온 빈티지 소파에 앉아 있다. 

 

거대한 양귀비꽃 벽화 덕분에 고즈넉한 화사함이 돋보이는 주방&다이닝룸. 벽화는 아티스트 에바 제르마니가 벽지 회사 월앤데코(Wall & Deco)에서 출시할 벽지의 프로토타입을 그려 넣은 것이다. 테이블과 의자는 스웨덴 빈티지, 주방 가구는 모듈노바(Modulnova) 제품이다.

 

 

건축가의 도움이 필요할 만큼 심각한 상태라면 예산과 시간, 모든 면에서 부담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당시 저는 집을 고를 때 부동산적인 가치를 포함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꼼꼼히 따지기보다는 그저 느낌이 더 중요했어요. 운명처럼 느껴지는 집에서 내 꿈을 펼치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거든요.” 이후 다른 집을 더 보러 다녔지만 그럴수록 프란체스카의 마음을 이끈 건 묘하게도 처음 만났던 저택이었다. 삼면이 담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중세 시대 비밀의 정원은 자연과 교감하며 기분을 전환할 수 있는 휴식처로, 지붕 아래 다락은 아이들이 놀기 좋은 아지트로 보수하면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프란체스카는 이 집과 함께 인생의 모험을 떠나기로 결심했고, 안전 진단 결과 걱정했던 것보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개조에 드는 시간은 상당할 거란 의견을 들었다. 역설적이게도 이는 프란체스카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 직업과 그에 대한 열정이 심각하게 훼손된 공간에 새로운 생명과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샘솟았습니다.” 건축가의 도움 없이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진행한 인테리어 개조 작업은 무려 3년 이상 지속되었고, 그 과정에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난관이 뒤따랐다. 하지만 취향과 아이디어가 명확하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했던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세운 목표에 집중했다. 큰 틀에서 보면 이 집은 개조한 게 맞지만, 그 실현 방법은 ‘복원’이었다. 프란체스카는 공간의 오리지널 느낌을 되살리기 위해 프레스코화, 벽면 석고 장식, 바닥 등을 복원하되, 이를 대체해야 할 경우 최대한 유사한 것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곳곳의 앤티크 숍을 돌아다녔다. 일례로 아이들을 위한 아지트로 구상한 다락방은 오리지널 나무 바닥을 일일이 뜯어내고 마루재를 하나하나 복원해 다시 조립해 깔았고, 습기로 인해 썩은 나무 문과 창틀은 철제 앤티크로 대치해 고전적인 정취를 살린 동시에 견고함을 더했다. “철제 창틀은 이 집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어요. 담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실내와 통합하고 싶었는데 앤티크 철제 창틀 덕분에 널찍한 유리창을 이질감 없이 설치할 수 있었으니까요. 시간이 흐르면 이 새 유리창도 창틀과 같이 매혹적인 푸른 녹색으로 물들어갈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로비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부. 레진과 철로 만든 옷걸이, 브라스 벨벳 스툴은 에바 제르마니와 다니엘레 코르벨리(Daniele Corbelli)가 제작했다.  

 

메자닌 층 거실 한쪽 벽면은 ‘지하철 타일’로 마감하고 그 앞에 볼로냐 앤티크 딜러에게서 구입한 철제 캐비닛을 놓아 프란체스카가 수집한 다양한 시대의 모자걸이를 전시했다. 

 

 

고택이 지닌 시간의 감각 유지를 필수 조건으로 내세운 리노베이션은 구조 변경도 거의 하지 않을 만큼 원형을 되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그 안의 라디에이터 같은 설비부터 가구, 소품 등은 모두 역사적 시대와 시간의 정서를 품은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인 데커레이션 작업을 앞두고 프란체스카는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이 집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놀라운 공간(Wunder Kammer)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란체스카는 오랜 시간 함께 일한 재능 있는 아티스트이자 데커레이터 에바 제르마니(Eva Germani)에게 ‘정원처럼 연출한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망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눴고, 프란체스카가 양귀비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챈 에바가 이를 벽화로 표현해볼 것을 제안했다. 시선을 잡아끌기 충분한 벽화를 위해 최적의 장소를 물색한 결과 주방이 낙점되었고 화려하고 거대한 양귀비꽃 그림을 돋보이기 위해 주방 가구는 초미니멀 디자인으로 선택했다.

 

 

메자닌 층에 자리한 벽난로가 있는 거실. 조개 모양의 벨벳 빈티지 소파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파르마, 철제 테이블은 프랑스 남부에서 구입한 빈티지로 원형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고풍스러운 바닥은 쪽모이 세공을 한 앤티크 마루로 이탈리아 북동부 도시 베네토에서 구입했다.   

 

마치 편집 의류숍 매장 같은 드레스룸. 집주인 프란체스카는 밀라노 앤티크 딜러를 통해 실제 구두 컬렉터가 사용했던 브라스 쇼케이스를 구입, 그 안에 가방과 구두를 정리했다. 옷을 걸어둔 우드 프레임의 유리 장은 프란체스카가 디자인했다. 모던한 구형 알루미늄 샹들리에는 만자로티(Mangiarotti), 노란색 소파는 1960년대 빈티지로 데코텍스 울 패브릭으로 새롭게 커버링했다.  

 

드레스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프란체스카가 모은 그림과 소품, 책이 자리한다. 낡은 우드 테이블은 프랑스에서 구한 것이고 유리 볼 브라스 샹들리에는 베네토에서 구한 빈티지.   

 

 

“집 안에 들인 모든 가구와 소품이 빈티지와 앤티크 컬렉션인데 주방 가구만 유일하게 모던 미니멀 디자인이자 새 제품이에요.” 벽화는 프란체스카가 자신이 세운 원칙을 어기며 선택할 만큼 심혈을 기울인 장식 요소였고, 아티스트 에바에게는 한 벽지 회사와의 제품 개발을 위한 프로토타입이 되었다. “벽화는 제 백일몽과 에바의 예술적 감각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것이라 자부해요.” 벽화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도취된 프란체스카는 에바에게 다른 공간에 들어갈 그림은 물론 세부 장식도 함께해줄 것을 요청했다.

 

 

침실은 바이올렛 포인트가 들어간 침구와 의자로 우아하게 연출했다. 벨벳과 실크를 조합해 만든 침구는 에바 제르마니가 제작했다. 침대 벽면에 걸린 철제 월계관은 파리 여행에서 구입한 것.

 

 

본인이 살 집이니 마음 가는 대로 꾸미겠다 장담했지만 균형을 잡아줄 심미안이 힘을 보태면서 데커레이션 작업은 가속이 붙었다. 공간을 복원한 후 집 안에 들인 앤티크, 빈티지 가구 중 일부는 17세기 프레스코 장식과 건축 양식 사이에 교집합을 이루지 못하는 것도 감지되었고, 공간과 공간이 중복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의견도 오갔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간과 공간 사이에 텅 빈 캔버스 같은 여백을 마련해놓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시대 양식을 교차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간결한 형태의 1940년대 북유럽 빈티지 가구를 화려한 바로크 시대 공간에 매치하고, 수도원같이 담백한 침실에는 벨벳과 실크를 조합해 만든 광택 있는 침구와 월계관 장식 등 색감과 장식을 더해 로맨틱하게 꾸몄다. 아이러니하지만 이 집은 복원 작업에 걸린 시간보다 데커레이션에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콘솔 위 4개의 거울 속으로 맞은편 주방의 양귀비꽃 벽화가 반사되면서 마치 그림을 건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앤티크 및 빈티지 가구와 소품을 구하기 위해 전문 숍은 기본,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 유럽의 벼룩시장을 두루 돌아다녔고, 여기서 모은 수많은 전리품 중 일부는 최종 선택이 아닌 공간 디자인의 모티프가 되어 공간을 새롭게 꾸미는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물론 3년간에 걸친 리노베이션은 일단락되었지만 아직 이곳은 미완성입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제 꿈과 비전을 라이프스타일로 엮어가는 한 이 집은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는 스케치북과 같으니까요.”         

 

Text and styling Francesca Davoli Wall Decorations Eva Ger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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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이정민PHOTO : Fabrizio Cicco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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