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인생의 새 출발 지점에 다시 선 사람들

시작은 설렘을 주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안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인생의 새 출발 지점에 다시 선 사람들을 만났다.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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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도달하기 위한 여정  
양정웅 감독

인간의 행위 대부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무언가를 얻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성취를 쥐고 있는 자가 새로운 것을 취하고자 하면 손을 비워야 한다. 그래서 양정웅 감독의 새로운 도전 소식을 들었을 때 조금 놀랐다. 그는 극단 ‘여행자’를 이끌며 연극 <페르퀸트>, <한여름 밤의 꿈> 등 걸출한 작품을 선보였고, 연극계에서는 이미 반열에 오른 연출가다. 그뿐만 아니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막식을 연출하며 그 이상의 단계에 올라섰다. 이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쌓고 맺은 성과를 온전히 누리는 데 집중할 법도 한 시기다. 그런데 그는 커리어의 중요한 방점을 찍은 평창 올림픽 연출을 계기로 두 손 가득 쥐고 있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새로운 도전인 영화 연출에 뛰어들었다. “연극은 형식의 특성상 감상할 수 있는 관객의 수가 한정되잖아요. 그러나 평창 올림픽 개막식은 공연장에 있던 3만5000명의 관객을 물론 더 많게는 전 세계 몇십억 인구가 지켜봤어요. 내가 생각한 주제와 메시지를 엄청난 수의 대중에게 전하는 자리였죠. 그 경험을 하며 작품의 영역을 조금 더 넓혀 나의 생각을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연출은 그의 어린 시절 꿈이기도 했다.


영화 <더 박스>는 양정웅 감독이 영화 연출계에 처음 새긴 족적이다. <더 박스>는 무대 공포증으로 인해 박스를 써야만 노래할 수 있는 지훈(찬열)과 한때는 잘나갔지만 지금은 빚에 쫓기는 폼생폼사 프로듀서 민수(조달환)가 만나 전국의 10개 도시를 돌아다니며 공연을 펼치는 이야기다.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그만의 시선은 영화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더 박스>가 버스킹 로드무비라는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연극 연출할 때도 음악이 작품에 끼치는 힘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래서 음악극을 자주 연출했죠.” 첫 영화로 음악 영화를 선택한 것은 그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극단 여행자를 이끌며 공연을 위해 45개국 150여 도시를 돌아다니고 휴식이 주어졌을 때도 늘 어디론가 여행하는 그의 기질 역시 영화 속에 가감 없이 드러난다. 공연을 위해 10개 도시를 다니는 두 주인공을 좇는 카메라의 시선은 각 도시를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삼아 비춘다. 마치 관객과 함께 여행을 떠나듯 말이다. 연극 무대에 한국 고유의 것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는 그의 성향은 두 주인공을 경주 대릉원, 울산 함월루 등을 무대 삼아 공연하게끔 만들었다. 봉긋한 고분 앞과 아름다운 야경이 등 뒤로 펼쳐지는 누각 위에서의 공연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개성 있는 미장센을 만들어냈다. 

 

 

1, 2, 3 박스를 써야만 노래할 수 있는 지훈과 폼생폼사 프로듀서 민수의 로드 버스킹 무비 <더 박스>는 양정욱 감독만의 시선이 깃들어 있다. 

 

 

창작자에게 자신만의 독창성은 중요한 영역이다. 그러나 대중의 평가를 자양분 삼아 나아가는 대중문화에서 독창성에 집착해 공감의 여지를 상실한 창작물은 한계에 봉착하기 마련이다. 대중을 상대로 오랜 시간 연극 무대 위에 작품을 올린 양정욱 감독은 비록 플랫폼은 달라졌지만 영화계에서도 통용되는 이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매주 음악감독님, 출연 배우들과 함께 곡 선정을 두고 회의를 했어요. 영화를 보는 이들이 듣는 순간 공감할 수 있는 노래로 채우고 싶었죠. 동시에 출연 배우의 목소리와도 어울리는 곡이어야 하고요. 이런 이야기를 심도 있게 나눠 신중하게 선택했죠.” 빌리 아이리시의 ‘Bad Guy’ 부터 쳇 베이커의 ‘My Funny Valentine’, 추억의 가요 벅의 ‘맨발의 청춘’까지,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국적과 시대, 장르를 불문한 다채로운 음악은 관객을 자신도 모르는 새 흥얼거리게 만든다. 


영화 말미쯤 지훈은 민수에게 그의 빚이 자신의 박스와 비슷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인간은 늘 앞을 바라보고 나아가지만 가끔씩 시야를 가리는 저마다의 박스에 갇혀 주춤거리기 마련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저의 박스는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많은 박스가 있지만 하나를 꼽는다면 두려움인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을 비롯해 내가 처음 만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긴장, 불안 그런 것들요. 영화를 찍는 일도 그렇고 넓게 본다면 인간관계나 일상 속의 사소한 것들도 다 포함될 수 있겠죠.” 홀로 노래를 부르던 지훈이 대중 앞에 서기 위해 박스를 썼듯이 양정웅 감독은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기 위해 스스로 두려움이라는 박스 속으로 들어갔다. 언제쯤 이 박스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적어도 영화 10편은 만들어봐야 가능하지 않겠냐며 웃는다. 그가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낼지, 그리고 끝내 박스를 벗어 던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과정에서 그의 작품 세계는 더욱 넓어질 터다. 스피노자는 말했다.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고. 이미 정상의 궤도에 올라 더 이상 깊어질 곳이 없어 보이던 그의 작품 세계는 마치 심해처럼 우리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더 깊은 미지의 영역에 도달할지도 모르겠다.

 

 

 

 

 

더 큰 가치를 좇는 삶 
유기헌 교수

“정확히 2000년 7월 1일 새벽이었어요. 뇌졸중이었죠. 오른쪽 반신 마비가 왔어요. 다행히 골든타임 안에 응급실로 가 조치를 취해서 후유증은 없어요.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죠.” 한때는 광고 기획자였다가 반년 전까진 브레드랩의 오너 셰프였고 지금은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푸드스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유기헌 교수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그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건 광고 기획자로서였다. 커다란 이상이나 포부를 가지고 선택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이왕이면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어 선택한 것이 광고 기획이었다. 다행히 일은 꽤 잘 맞았고 두 곳의 회사를 거쳐 31살에 광고 기획사를 차렸다. 커리어의 정점을 향해 한창 달려가던 무렵 그의 가치관을 바꾼 그날의 일이 터졌다. “당시 33살이었어죠. 젊은 나이에 뇌졸중을 겪을 거라 생각도 못했어요. 큰일을 겪고 나니 삶의 방향성을 결정짓는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 내 몸에 대한 생각 등 모든 것이 달라지더라고요.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미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죠.” 이후 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일을 그만두는 것이었다. 커리어적인 성공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 그는 자는 동안에조차 콘티와 시나리오를 짜고 24시간 생각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일인 광고 기획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휴식기를 가진 그는 그래도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작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열었다. 쉬는 거보다는 낫겠지라는 생각으로 열었는데 웬걸, 생각보다 그에게 잘 맞았다. “큰 기대는 없었어요. 근데 할수록 재밌더라고요. 내가 만든 음료를 사람들이 돈을 주고 사 먹는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고 점점 단골도 생기고 하면서 재미가 붙었죠. 무엇보다 일이 즐거웠어요. 그동안 광고 일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카페를 운영하며 광고 기획이 아니더라도 내가 먹고살 수 있는 일이 세상에 있구나 싶더라고요.” 예기치 않은 사건은 오직 한 곳만 바라보고 질주하던 그를 잠시 멈춰 세우고 주변을 둘러보게끔 만들었다. 새로운 일에 흥미를 붙인 그는 조금씩 사업을 넓혀갔다. 그 과정에서 크게 실패를 맛보기도 했지만 새로운 일은 그에게 또 다른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 그러던 와중 친한 선배가 베트남에서 함께 사업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 보였다. 베트남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모든 준비가 끝났고 날짜도 정해졌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시장 조사차 베트남을 방문한 순간 결심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돈과 성공만 고려했다면 베트남에 가는 게 맞았어요. 그런데 베트남에서 살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제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그곳에는 없었거든요.성공이나 돈에 연연하기보다 내 행복을 찾는 게 훨씬 의미 있는 일이란 걸 크게 아프며 깨달았기에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어요.” 지도 전체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길을 잃더라도 금세 다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그는 고민의 여지 없이 다시 한번 인생의 방향을 돌렸다. 

 

 

유기헌 셰프가 오랜 시간 자신의 철학에 따라 운영한 빵집인 브레드랩에 대한 추억이 깃든 머그컵과 일본 유학 시절 읽던 요리 관련 서적들.  2 최근 구입한 주명한 작가의 도마와 플레이트, 그리고 아끼는 베이킹 도구들. 

 

 

유기헌 교수는 38살에 제과제빵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직업 학교를 모두 찾아보고 자신의 성향과 가치관을 고려해 앞으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선택했다. 곧 마흔을 앞둔 나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 업으로 삼는다는 건 사업에 뛰어드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삶 전체를 아우르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었다. 르 꼬르동 블루-숙명아카데미에서 제과제빵을 공부하고 동경제과학교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남들보다 시작이 늦었기에 시간의 격차를 압축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임했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 후 자신의 가게인 브레드랩을 오픈했다. 정직하게 만든 빵을 당일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운영한 브레드랩은 수많은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유기헌 대표는 10년 가까이 브레드랩을 자신의 철칙에 따라 운영했고 작년 9월 운영을 마무리했다. “많은 분들이 코로나19로 문을 닫은 게 아닐까 추측하지만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어요. 목디스크와 팔저림이 심해졌고 홀로 계신 어머니께서 점점 노쇠해지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나 자신과 가족을 위해 좀 더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의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단호히 그만둘 수 있었던 것 또한 삶의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유기헌 교수는 올해 초부터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푸드스쿨에서 푸드 프로젝트란 과목을 가르친다. 광고 기획자로 일한 경력과 브레드랩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브랜드의 콘셉트를 설정하는 방법부터 마케팅, 운영 등에 대해 학생들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은 가르치는 게 아닌 경험을 나누는 것이라 말한다. 많은 길을 거쳐 교수라는 새로운 길 위에 선 그에게 이 길을 함께 걷고 있는 학생들과 어떠한 것들을 나누고 싶은지 물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걱정이 너무 많아요. 특히 취직과 관련해서요. 저는 늘 아이들에게 말해요. 걱정하지 말라고. 정 안 되면 내가 너희들이 일할 수 있는 빵집을 만들기라도 할 테니 그냥 즐겁고 재미있게 공부하라고. 대신 본인이 어떤 것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찾으라고 말해요.” 그가 나누고자 하는 경험은 일을 하며 체득한 테크닉적 영역만이 아니다. 그 이전에 자신이 돌고 돌아 깨달은 삶의 중요한 가치를 전하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많이 여행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충분히 시간을 보내는 것. 제가 앞으로의 인생에 채워 나가고 싶은 것은 그 두 가지가 다예요. 뻔하지만 건강하게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나누고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싶어요.” 대부분의 사람이 한 번쯤 가져봤을 단순한 목표다. 그러나 수치나 결과물로 성취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이루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 원론적 가치를 추구하는 목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가장 먼저 손에서 놓아버리곤 한다. 하지만 여태까지 유기헌 교수가 지나온 길을 되짚어봤을 때, 그라면 충분히 이뤄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서 하는 일
최회영 대표

브리야 사바랭은 말했다.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때론 부분이 전체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너무 익숙해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일상의 조각은 우리의 삶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망원동의 식물&빈티지 스토어 나이스어스플랜츠(NICE EARTH PLANTS)의 최회영 대표 역시 일상의 조각에서 보다 명확하게 자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일본으로 대학을 진학해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자동자 디자이너로 7년간 일하다 그만뒀어요. 퇴사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제가 생각보다 자동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건 뭘까 고민해보니 열심히 일해 번 돈을 식물을 들이거나 음반 사는 데 쓰고 있더라고요.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이런 것들이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문명의 상징인 자동차 업계에서 일한 그가 식물을 사고 가꾸며 마음의 위안을 찾는 게 어딘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다. 그가 식물에 빠지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회사에 입사하고 1~2년 차쯤이었을 거예요. 다이칸야마에 갈 일이 있었는데 무척 근사하게 느껴졌어요. 물론 멋진 건물이 즐비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곳의 식물들이 독특하고 멋있었어요. 식물이 이렇게 장소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식물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어요.” 

 

 

1, 3 디자인을 전공한 최회영 대표의 감각이 돋보이는 브랜드 로고와 소품 배치. 최회영 대표만의 온실이자 작업 공간인 나이스어스플랜츠는 그가 직접 고른 다양한 식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일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귀국한 최회영 대표가 처음 나들이를 간 곳도 양주의 식물 농장이었다. 휴식이 필요한 시기였고 반짝이는 햇빛이 잎사귀에 걸리는 걸 보고 있노라면 행복했다. 인생의 시간을 내가 행복을 느끼는 데 할애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즈음이었다. 약간의 휴식기를 보내고 최회영 대표는 자신이 좋아하는 식물들을 모아 선보이는 공간을 오픈하기로 마음먹었다. 틈이 나면 양주, 파주 등에 위치한 농장에서 식물을 조금씩 사들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식물을 돌보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유튜브로 이론 공부를 하기도 하고 직접 이런저런 시도를 하며 경험으로 체득하기도 했다. 나이스어스플랜츠를 정식 오픈하기 전 마치 제품을 상업화하기 직전 프로토타입을 제작해보는 것처럼 여러 번의 팝업 스토어를 열며 준비 기간을 거쳤다. 그리고 지난 4월 5일, 식목일에 맞춰 나이스어스플랜츠를 정식 오픈했다. 


나이스어스플랜츠를 굳이 정의한다면 식물&빈티지 스토어지만 공간에서 상업적인 의도는 거의 묻어나지 않는다. “나이스어스플랜츠는 저만의 온실이자 작업 공간이에요. 동시에 제 마음에 쏙 든 식물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소개하고 나누는 공간이고요.” 그래서 나이스어스플랜츠에 들이는 식물을 선정하는 기준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한국에 돌아와 한동안 빛이 잘 안 드는 곳에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고사릿과 식물같이 빛 없이도 잘 자라는 식물 위주로 키웠죠. 그 영향으로 지금 나이스어스플랜츠에도 고사릿과 식물이 많아요. 그리고 농장에 들렀을 때 딱 봐서 예쁜 애들 위주로 데려와요. 요즘은 난초류 식물에 빠져 그쪽으로도 많이 들이고요.”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란 말이 있듯 보통 사람의 호오(好惡)는 대부분 크게 다르지 않다. “되게 신기한 게 농장에서 보는 순간 마음에 쏙 들어 가져온 식물은 바로 다음 날 누군가 사 가요.”


으레 그래왔듯 최회영 대표와의 인터뷰를 마무리 지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마지막 질문으로 던졌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며 어떠한 공간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다 이내 골똘히 생각하다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음 좋겠다고 조심스레 덧붙였다. 그 대답을 듣고 그는 ‘진짜’구나 싶었다. 원래 좋아하는 걸 할 때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 법이다. 순간을 누리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에.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태구, 사진 제공 머리꽃(<더 박스> 포스터,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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