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현재와 맞닿아 있는 미래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중단편 SF 소설 중 옥석만을 추려 실은 <SFnal>이 발간되었다. SF계의 권위 있는 상을 두루 섭렵하거나 최종 후보에 오른 작품이 가득 실린 이 책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축조된 다양한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우리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닌 현재일 것이다.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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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상상만 가능한 미래 과학기술을 펼쳐놓는 모험담 정도로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훌륭한 SF 소설이 많이 출간되고 읽히는 지금 우리는 SF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하려고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안다. 탁월한 SF 작가인 테드 창은 “SF는 변화하는 세계를 담는 그릇이다”라고 말한다. SF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물론 상당히 인상적이긴 하지만) 새로운 과학기술만이 아니고, 시대적 한계를 떨쳐낸 뒤 분명하게 드러나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통찰이다. 


SF를 쓰는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기도 하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머릿속에서만 가능하던 참신한 아이디어가 현실화되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이다. 이 책 <SFnal>은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 한 해 동안 발표된 중단편소설 가운데 훌륭한 작품을 노련한 편집자가 골라 한 권으로 펴내는 <올해의 SF 걸작선(The Year's Best Science Fiction)>이 한국에 번역되며 <SFnal>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SF’와 ‘-nal(-적인)’의 합성어로, SF적인, 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선집’이 갖는 장점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눈 밝은 편집자가 골라낸 작품은 기성 작가, 신인 작가 할 것 없이 나름의 개성과 매력을 보여준다. 1, 2권에 나눠 수록된 27편의 작품 안에는 SF계의 권위 있는 상인 휴고상, 네뷸러상, 로커스상 수상작과 최종후보작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만큼 독자 입장에서는 문학상 수상과는 관계없이 자신의 흥미에 맞는 소설을 찾아내기 쉬운, 잘 차려진 뷔페 한 상이 될 것이다. ‘뷔페’라는 가벼운 표현을 쓰기 미안할 정도로 무거운 주제가 적지 않지만. 


‘참신하고 새롭다’는 표현을 쓰기에는, 사실 이 작품들이 다루는 문제는 대단히 묵직하고 근본적이다. S.L황은 ‘내 마지막 기억 삼아’에서 시기도 장소도 알 수 없는 한 나라의 상황을 보여준다. 과거 강력한 무기로 인해 인명이 대규모로 살상되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앞으로 같은 일이 발생할 경우 선택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다짐하며 비장한 절차를 만든다. 대통령이 그 무기를 사용하려면 암호를 입력해야 하는데, 그 암호는 한 소녀의 심장에 심어져 있다. 직접 칼로 아이를 죽여야만 암호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 무기가 죽일 수많은 아이들을 떠올리게 하기 위한 장치다.


켄 리우는 ‘추모와 기도’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딸을 잃은 한 가족의 비극을 보여준다. 그들은 총기 규제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죽은 딸의 자료를 모두 넘긴다.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지금도 살아 있다면 자신의 꿈을 활짝 펼쳤을 소녀의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총기 소지가 어떤 문제를 야기하는지 절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소녀의 자료와 영상은 악성 인터넷 분탕꾼들에 의해 왜곡되고 조작된다. 음모론이 만들어지고, 딥페이크 영상 기술로 소녀의 얼굴을 포르노와 합성한 영상이 퍼지고, 심지어 피투성이로 죽은 소녀와 신나는 배경음악을 합성한 뮤직비디오가 배포된다.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기에 너무나 실감 나는 악몽이다.


미래는 허공에 쌓일 탑이 아니다. 바로 현재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재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미래에도 여전히 남는다. 거기에 과학기술이 합세한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오지 않은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의 삶이다. ‘SF적’이라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음을 가리키는 손가락 아닐까.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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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양혜연PHOTO : 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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