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에 깃든 추억

최병준 셰프에게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는 수많은 종류의 치즈 중 그저 하나가 아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추억과 그의 정체성을 품은 존재다.

202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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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유영하는 모든 것은 변한다. 물리적인 변화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을 살아내며 쌓인 경험 속에서 취향과 가치관도 변해 우리를 둘러싼 대상을 새롭게 판단하게끔 한다. 오스테리아 세콘디를 비롯해 콘메, 쎄떼를 이끄는 최병준 셰프에게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는 각별한 애정을 지닌 식재료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특유의 고릿한 향과 진한 맛이 처음 접했을 때는 조금 부담스러웠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요리를 배운 그는 군대에서 미래를 고민하며 이탤리언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우기로 결심했다. 사회로 나오기 전 이탤리언 요리의 이론부터 조금씩 공부했는데, 이탤리언 요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치즈 종류도 두루 익히며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도 알게 되었다. 이 치즈는 겉보기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젖으로 만든 파르메산 레지아노 치즈나 그라나 파다노 치즈와 닮았다. 그러나 양젖으로 만드는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는 요리에 조금만 넣어도 다른 식재료의 맛과 향을 덮을 정도로 풍미가 진하고 독특하다. 강한 개성만큼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린다. 


처음엔 호감보다는 비호감 쪽에 가까웠던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의 면면을 최병준 셰프가 다시 들여다보게 된 건 10여 년 전 전역한 후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절이다. 주말이면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고는 했는데 작은 휠로 팔던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그곳에서 다시 마주하게 됐다. 국내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가격이 저렴해 ‘대체 왜 이렇게 싸지?’라는 의아함에 홀린 듯 구입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맛본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는 그에게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처음에 거부감을 갖게 한 진한 맛과 향은 되레 장점으로 느껴졌다. 별다른 부재료를 준비하지 않아도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파스타 등 요리에 넣으면 풍부한 맛과 향을 낼 수 있었다. 유학 생활을 하는지라 금전적인 이유나 보관의 문제로 다양한 식재료를 구비하기 힘든 그에게 이만한 식재료가 없었다. 다른 치즈보다 더욱 짭조름한 맛은 아주 얇게 슬라이스해 와인 안주로 먹기에 그만이라 친구들과 와인 파티라도 하는 날이면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꼭 챙겨 갔다. “당시 직접 해 먹던 요리의 절반 이상은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활용한 요리였어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방법인 파스타의 재료로 활용함은 물론 샐러드에 넣어 먹거나, 비록 실패한 도전이지만 녹여서 빵에 발라 먹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자주 먹으면서 입 안에 남은 특유의 단맛이란 새로운 매력도 발견하게 됐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 김치를 먹던 것처럼 늘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곁에 두고 먹었죠.”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김치에 비유한 그는 여러 종류의 김치 중 하나에 빗댄다면 갓김치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특유의 맛과 향이 많은 이들에게 호불호가 갈리지만 일단 좋아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점이 꼭 닮았다.


지금은 국내에서 세 곳의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운영하지만 사실 최병준 셰프가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을 때는 그곳에서 정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개인 사정으로 귀국하게 되었고, 그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서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의 의미도 변했다. 이젠 일상의 영역보다는 이탈리아에서 삶을 추억하게 하는 식재료가 되었다. 비록 국내에서는 브랜드 선택의 폭도 좁고 가격대도 다양하지만, 최병준 셰프는 자신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를 활용한 메뉴를 첫 번째 레스토랑 오픈 초기부터 선보이고 있다. “초창기엔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가 가미된 요리를 손님들이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 3~4개월간 메뉴에서 뺀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대중적으로 선호하는 맛은 아닐지라도 많은 분이 이 맛을 아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선보이고 있죠. 카치오에 페페 등 제가 현지에서 맛있게 먹던 요리 위주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조금씩 변형하고 있어요.” 그는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는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식재료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이 치즈는 수많은 치즈 중 하나가 아닌, 이탤리언 요리의 상징이자 추억의 매개체이고, 이탤리언 셰프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존재이기 때문에.    

 

Stylist 홍서우, 엄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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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이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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