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먹으로 그린 봄

먹만으로도 새 계절을 느낀다. 한평생 수묵화를 그려온 목정 방의걸 작가의 근작들. 가히 봄이다.

202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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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이야기 

한지에 수묵담채 110.2×53.0cm

수묵화에서 여백은 작가의 의지로설정된 가장 적극적인 의미의 표현체로 읽는다. 응축된 힘으로 과감하게 뻗은 산의 자태가 넓은 화폭을 가르고, 화폭의 반절 이상 비워둔 여백에 온갖 상상이 모여든다. 빛을 받은 바위들과 옅은 초록을 드러낸 평지가 상상에 감정을 실어준다. 
저 멀리 있는 산은 운무에 가려진 듯 아스라하다. 

 

 

 

 

생의 놀이

한지에 수묵담채 38×34.5cm

방의걸 작가는 새, 물고기와 같은 생명체에도 큰 애착을 두고 화폭에 옮겨왔다. ‘생의 놀이’는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새끼 물고기의 빠른 움직임을 조형화한 작품이다. 여리디여린 몸짓으로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에서 갓 태어난 생명체의 약동이 느껴진다. 
대지의 만물이 움트고 다시 생명이 시작되는 계절, 봄처럼 말이다.

 

 

 

 

침묵

한지에 수묵담채 69.5×64cm

수묵화에서 먹의 농도는 곧 색이다. 서양 회화에서 익숙한 빨갛고 노란, 그런 색의 표현이 아니다. 
감정의 깊이는 채도의 엷음과 묵직함으로 표현된다. 정방형 한지에 빽빽하게 들어찬 먹의 다채로운 농도는 감상하는 사람의 감정을 먹먹하게 한다. 
한참을 바라보다 내린 시선은 나무 기둥 사이사이에 머문다. 그곳에서 마음이 쉰다. 

 

 

 

 

해맞이

한지에 수묵담채 54.5×45.0cm 

긴 시간 쌓아온 필력에서 출발한 다양한 표현 기법은 작가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강렬한 먹과 여백의 콘트라스트가 강조된 ‘해맞이’는 작가의 개성과 함께 현대성마저 두드러진 작품이다. 짧게 끊어 치고, 붓 끝으로 거칠게 흔적을 냈다. 강하고 약한 선의 흐름으로 표현된 물결들은 떠오르는 해와 하루의 출발에 힘찬 기운을 전한다. 

 

 

 


 

한지에 수묵담채 137×32.5cm 

새들이 재잘거리며 앉아 있는 그림에서 따스한 계절이 느껴진다. 수묵화는 그 자체로 휴식과 사색을 유도한다. 문인화의 정신 세계를 표현하려고 노력해온 작가는 생략과 함축,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런 노력은 감상자의 시선을 부드럽게 이끌어 머물게 한다. 작품 앞에 서는 것이 ‘쉼’이 된다.    

 

 

목정 방의걸의 예술 세계에 다가서다

수묵화를 제대로 본 적이 언제였을까.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전시장에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설치 작품과 필름 사이 수묵화가 설 자리는 드물었다. 강남 도산대로에 있는 메종 바카라 서울에서 방의걸 작가의 작품을 만난 것은 여러모로 낯선 경험이다. 눈부시게 투명하고 유려하게 깎아낸 크리스털 곁에 수묵화가 놓여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묘하게 어우러지는 것에서 한 번 더 놀란다. 메종 바카라에서 3월 3일부터 한 달간 열린 목정 방의걸의 특별전 <블랭크>에는 작가의 핵심 연작이 걸렸다. 1938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한평생 그림을 그려온 방의걸 작가의 작품은 관념적으로만 생각해온 산수화에서 벗어나 있었다. 한지 위 붓질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남긴 여백, 이와 반대로 먹으로 꽉 들어차게 구성한 화폭에서 두 눈은 먹의 농담 사이를 비집고 한참을 유영한다. 듣자 하니, 목정의 수묵화가 새롭게 조명받는 데엔 구상과 추상의 절묘한 공존과 좀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하기에 용이한 현대성을 이유로 든다. 멀리서 보면 추상화 같은데 한 걸음 다가서면 작가가 그리려 한 대상이 보인다. 또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그린 산의 자태는 현대적인 추상회화처럼 보인다. 작가 노트에 남긴 한 줄을 읽으면 정작 작가는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조명받는 것에 대해 큰 뜻을 품지 않은 듯하다. “서양화의 구상주의나 추상, 한국화의 실경 산수나 관념 산수라는 개념의 틀이 내게는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복잡한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나의 고지식한 작업은 계속될 것이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는 그저 수묵화를 그리는 그림쟁이일 뿐이다”라고 적었다. 


방의걸 작가는 그림은 사진이 아님을 강조한다. 사진이 아닌 그림은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작가의 경험과 상상력 속에서 재구성된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반인이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몫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보고 그리는 그림이 아닌 작가의 상상과 치밀한 계획 아래 완성된 그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작가의 세계를 또렷하게 드러낸다.작가는 그림을 대학에서 배웠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려웠던 시절을 겪으며 홍익대 미술대학에서 청전 이상범(1897~1972)과 운보 김기창(1913~2001) 선생에게 한국화를 사사받는다. 두 분 모두 국내 수묵화의 대가로 여겨지는 인물이고, 실제 작가가 한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넘고 싶은 산이기도 했다. 학창 시절 청전 이상범 선생으로부터 “먹 색깔은 강경 새우젓처럼 푹 곰삭아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방의걸 작가는 나이 예순 살이 되어서야 먹 색깔의 깊은 맛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이후 23년 동안 그린 그림은 이전과는 다른 것이지 않았을까? 


여든셋을 맞은 화백의 삶을 사계절에 빗대자면 보통은 네 번째 계절인 겨울이라고 말할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물리적인 시간이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게 안겨주는 나이지만, 육신의 내면은 사람마다 다른 계절을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세상의 모든 틀로부터 벗어나 한평생 그림을 그리며 건져 올린 깨달음으로 자신과 마주한 그림 안에서 온전히 자유를 느꼈을 테니 말이다. 붓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면서도 결국 60년이라는 긴 시간 예술을 놓지 않은 화백의 두 번째 봄을 기록해본다.    

 

Courtesy of Artist 
자료 제공 방의걸문화예술연구소, 바카라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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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더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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