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동화 속 같은 세상을 완성한 나탈리 레테

예술가에게 은신처는 영감의 원천이자 작품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시골집에 그림을 그려 넣어 동화 속 같은 세상을 완성한 나탈리 레테의 이야기.

2021.04.14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벽과 쿠션에 알록달록 만발한 꽃들이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거실. 1800년대 지어진 석조 주택 내부는 나탈리가 디자인한 타일로 마감한 바닥과 벽난로와 벽화로 단장한 덕분에 어둡고 비좁던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정원 같은 거실에 앉아 있으면 창 너머로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파 위에 놓인 쿠션은 모두 나탈리 그림으로 제작되었다. 

 

나탈리가 그린 바닷속 풍경을 태피스트리로 제작해 벽면에 그림처럼 걸어놓은 다이닝룸. 벽 양쪽에 놓인 앤티크 의자와 수납장은 벽면과 천장과 같이 모두 화이트로 색칠해 스케치북 상태로 만들어놓았다. 나탈리는 여기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 고민 중이다.

 

 

동화의 단골 소재인 ‘숲속의 동물’을 떠올렸을 때 나도 모르게 눈앞에 펼쳐지는 이미지. 아마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긴 힘들어도 당신 눈앞에는 강렬한 색감과 붓 터치로 사랑스러우면서도 시크하게 의인화된 토끼와 사슴, 고양이, 부엉이 그림이 나타날지 모른다. 30년간 자연과 동물을 그려온 나탈리 레테(Nathalie Lété)는 프랑스의 유명 아티스트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동화 속 그림은 물론 구찌와 같은 럭셔리 패션부터 H&M, 생활 예술 도자기 아스티에 드 빌라트, 일본 메디콤토이의 베어브릭, 그리고 국내 양말 브랜드인 삭스어필, 파리바게뜨 등 전 세계 50여 개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대중과 친밀한 관계를 쌓아왔다. 한국에서 2차례 개인전을 열었던 나탈리는 2016년 첫 전시 때 한국의 아이들과 함께 그림 그리는 시간을 마련하며 동심을 사로잡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전시에 열광하는 관람객은 정작 아이들보다는 ‘동심’을 동경하는 어른들이라는 사실. 나탈리 작품 속 동물은 귀엽고 익살맞기도 하지만 때론 심술궂거나 심각하고, 깊은 비밀을 간직한 듯 오묘함마저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이들을 유심히 바라보면 ‘유년 시절 내가 알던 동화 속 주인공들도 마냥 순진무구하지만은 않았을지 모른다’는 깨달음이 밀려옴과 동시에 그림에 빠져들고 만다. 그렇다고 나탈리의 그림에 대해 오해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의 작품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 그리고 푸른 하늘은 우리를 행복한 세상으로 초대하니까. 

 

 

핑크 톤으로 따스한 느낌이 감도는 주방. 수납장 옆에 걸린 고기와 소시지 모형은 나탈리가 그린 ‘푸줏간’ 시리즈 그림을 응용해 만든 것으로 실제 전시회 때 선보인 작품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나탈리 레테. 이 집에 그려진 꽃 그림 중 일부는 오리엔탈적인 플라워 패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패션에서도 동양적인 무드가 엿보인다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나탈리는 3년 전, 기차로 1시간 떨어진 시골 마을에 집 한 채를 마련했다. 자연을 테마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 도심을 벗어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예술적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물색하던 차, 파리에서 남동쪽으로 57km 떨어진 퐁텐블로(Fontainebleau) 숲과 루앙강과 인접해 있는 1830년대 지어진 석조 주택을 발견했다. 마치 나탈리 작품에 등장할 법한 오두막처럼 생긴 집에는 103세 할머니가 홀로 살고 있었고, 때마침 노인은 집을 매물로 내놓았던 터. “할머니가 딱 제 나이에 이 집을 사서 들어와 50년 넘게 살았다고 했죠.” 그 운명 같은 만남 후, 이 집은 나탈리의 별장이 되었고 전 소유주인 할머니의 이름을 따라 ‘메종 수잔’(Maison Suzanne)으로 불린다.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과 벽면은 이 집의 현관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공간. 바닥을 화려한 패턴 시멘트 타일로 마감하고 계단과 벽면 그리고 침실에 꽃 그림을 그려 넣었다.  

 

박공지붕 아래 자리한 서재 문의 사각형 테두리는 벚꽃 패턴으로 장식했다. 

 

 

시골집을 마련한 후 나탈리는 1년 넘게 리노베이션에 공을 들였다. 낡은 고택이었던 만큼 보수, 재건할 부분이 많았고, 무엇보다 어둡고 비좁은 실내 구조는 꼭 개선하고 싶었다. 그는 건축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벽을 허물고 커다란 창문을 만들어 밝은 햇살과 자연 풍경을 집 안에 끌어들였고 마스터 베드룸에 개방형 욕실을 마련하는 등 대대적인 변화를 주었다. 석조 주택답게 돌로 되어 있던 바닥은 형형색색의 패턴 타일로 교체되었다. 나탈리가 벨기에 타일 브랜드 ‘에머리 에 시에’(Emery et Cie)와 함께 만든 시멘트 타일이 1층의 거실과 주방, 다이닝룸에 깔리면서 이 집은 새로운 주인의 DNA가 선명하게 새겨졌다. “벽과 천장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흰색으로 비워두기로 했습니다.” 원래 나무 바닥으로 된 2층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든 공간을 흰색 페인트로 마감했다. 심지어 일부 가구까지 흰색으로 칠해 집은 거대한 캔버스가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이런 분위기로 살아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지내보니 무언가 조치를 취하지 않고서는 제가 견딜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별장을 전적으로 자신의 세상으로 만들기로 결심한 나탈리는 흰색 벽면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려 넣었고, 바닥에는 리빙 브랜드와 협업해 만든 러그를 깔았다. 이 외에 ‘완벽한’ 나탈리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소파 위에 쿠션과 블랭킷, 창가의 커튼, 천장의 조명, 주방의 그릇 등을 모두 자신과 협업한 브랜드에서 생산한 것으로 채워갔다. 개인 전시회 때 선보인 토끼, 버섯 등의 대형 조형물도 집 안에 들여놓았고, 도예가인 딸의 도움으로 만든 나무와 새 등의 세라믹 부조 장식은 각 방의 문틀 위에 붙여놓았다. 그렇게 집을 꾸미기 시작한 지 2년여, 지금 별장은 나탈리의 그림 속 세상이 현실로 튀어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환상적인 동화 속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거대한 고양이 인형이 서 있는 2층 침실. 나탈리가 그린 캐릭터 그림과 인형, 카펫으로 꾸민 침실은 그 자체로 동화 속 같다. 

 

자신의 그림을 응용해 만든 옷과 가방이 걸려 있는 침실 창가. 그냥 옷과 가방을 걸어놓는 것 자체가 장식이 된다. 

 

 

“저와 남편은 이 집에서 주말을 보냈어요. 각 공간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실제로 생활하면서 천천히 디테일을 추가해 나갔습니다.” 부부의 이런 생활 패턴은 작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파리가 봉쇄됐을 때, 나탈리 부부는 파리의 집을 떠나 별장에서 장기간 머물 것을 계획했다. 화가인 남편 토마스(Thomas Fougerirol)와 함께 그림 작업에 몰두하며 외부의 절망적인 상황을 잊어볼 요량이었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나탈리의 화폭은 집 안 곳곳으로 번져 나갔다. 나탈리의 손길이 지나간 계단, 창틀, 문 그리고 가구 표면에는 풀이 자라고 꽃이 만발하고 새가 날아다녔고 집 전체는 밝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거듭났다. 

 

 

 어린아이를 위해 벽화로 단장한 침실 같지만 실제는 20대 도예가인 딸이 방문할 때 사용하는 게스트룸.

 

 

나탈리는 벽화 작업을 할 때 특별히 무엇을 그릴지 계획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영감에 따라, 본능에 충실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을 뿐이다. “다만 ‘정원이 집 안에 들어온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 기분을 공간에 불어넣고 싶다는 목표는 확실했어요.” 집 안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핑크와 그린 컬러 또한 의도치 않게 탄생한 색상이다. 나탈리는 그림을 그리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림 위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버리고 또 다른 그림을 그렸다. 한 번에 마음에 드는 그림이 완성될 때도 있었지만 실상은 흰색 페인트로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고, 그렇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이 집에 새겨진 그림과 색상은 우리 가족에게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었어요.” 

 

 

그림 속 꽃과 주인공이 현실로 튀어나온 듯 평면화와 입체 작품을 반짝이는 금색 벽면을 배경으로 전시한 침실.

 

 

중국인 아버지와 체코 출신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탈리는 어린 시절 방학 때마다 독일에 있는 외할머니 집에서 지내곤 했다. 당시 자신을 동화 주인공 ‘빨간 모자’ 소녀라 상상하며 숲에서 노는 걸 즐겼단다. 덕분에 그림은 동심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동물, 꽃, 오래된 장난감은 제게 중요한 테마입니다. 특히 제각기 모습도 성격도 다른 동물은 늘 제 호기심을 자극하죠.” 

 

 

나탈리가 심혈을 기울여 개조한 마스터 베드룸. 침실 내 개방적인 욕실을 마련해 한 공간에서 편히 휴식을 즐길 수 있게 꾸몄다. 욕실과 침실 사이에 문이 없는 대신 각 영역에 벽화를 달리 그려 시각적으로 공간을 구분했다.

 

 

나탈리는 10대 때부터 그림과 오브제로 가득 찬 아트 하우스를 만드는 꿈을 품었다. 회화와 장식 미술을 결합해 예술을 실생활에 끌어들인 영국 화가 바네사 벨(Vanessa Bell)이 살던 블룸즈버리 찰스턴 하우스(Charleston House), 캐나다 민속 아티스트 모드 루이스(Maud Lewis)가 그림을 그려 장식한 집, 민속적인 꽃 패턴 그림으로 화려하게 단장한 폴란드 자필리에(Zapilie) 마을은 ‘나탈리 월드’를 실현하는 데 깊은 영감을 주었다.  

 

 

지붕 경사면에 창을 내 자연광이 쏟아져 내리는 욕실. 타일 표면과 벽면에 직접 그림을 그려 장식했다. 

 

문틀을 감싸는 나무 덩굴과 침대 헤드보드는 모두 나탈리가 직접 그린 벽화다. 숲속에서 자는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마스터 베드룸은 나탈리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 문틀 상단의 나무와 새는 입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도자기로 제작했다.    

 

 

“돌이켜보면 세상과 단절된 상황은 인테리어에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했습니다. 작가로서 해온 작업과, 외부 프로젝트를 멈추고 제 모든 에너지를 온전히 이 집에 쏟아부을 수 있었으니까요.” 나탈리가 이 집에서 높게 평가하는 공간은 침실과 주방이다. 은은한 빛이 감도는 로맨틱한 침실은 중국 앤티크 등을 달아 이국적인 매력이 풍기는 욕실까지 포함하고 있어 마치 럭셔리 부티크 호텔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이 만든 오브제와 그릇으로 가득 찬 주방은 요리할 때마다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작가로서 해온 작업이 실생활에서 생명력을 발휘할 때 느끼는 뿌듯함이란! 그가 이곳에서 눈을 뜨는 아침은 그야말로 자신이 동화 속 주인공임을 실감하는 때다. 꽃 그림으로 장식된 큰 창문을 여는 순간 펼쳐지는 자연 풍광과 강물 흐르는 소리는 마치 나탈리의 그림 속 공간이 실사 애니메이션으로 변환된 듯 환상적인 착각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파리를 떠나기 싫어하는 도시형 남편 때문에 ‘절충안’으로 선택한 별장이었는데 이제는 남편이 더 머물고 싶어 하는 곳이 되었지요.” 이제 막 개장한 나탈리의 원더랜드는 인근에 작업 스튜디오와 전시장을 갖추고 점차 확장될 예정이다.    

 

 

 

 

 

 

 

더네이버, 라이프스타일, 공간 

CREDIT

EDITOR : 이정민PHOTO : Benedicte Drummond(Photofoyer)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