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미친 세상 속 빛나는 혜안

2000년부터 2016년 움베르토 에코가 타계하기 직전까지 세상에 선보인 칼럼을 그러모은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책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은 깐깐하지만 빛나는 혜안을 지닌 움베르토 에코가 우리에게 전하는 ‘미친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생존하는 방법이다.

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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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돌아가는 속도는 어마어마하고, 세대차는 실시간으로 벌어진다. 이 시대에 어른이 없다는 말은 그런 면에서 맞다. 누군가가 시대에 맞는 큰 어른이 될 시간은 부족하고 그저 오래 산 사람은 도태된다. 비관적인 얘기다. 정말 그럴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움베르토 에코가 있다. 괴팍하고 까탈스럽지만 끈기 있고 유머러스한 어른. 아쉽게도 2016년 암으로 돌아가셨지만, 그가 한 이야기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2000년에서 2016년까지 썼던 칼럼을 모은 이 책을 읽으며 그의 투덜거림에 귀 기울인다. 시대착오적인 깐깐한 노인네인가 싶으면 훌쩍 뛰어넘어 통찰을 보여주고, 근시안적으로 몰두한 우리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내어 큰 그림을 보게 한다. 


이 책에 실린 원고는 시사 잡지 <레스프레소>의 한 코너였던 ‘미네르바 성냥갑’에 연재되었던 것이다. 깊은 뜻이 있어 보이는 제목이지만 사실 별 의미는 없다. ‘미네르바’라는 이름의 회사에서 만든 접이식 성냥갑 안쪽에 간단하게 메모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단상을 글로 풀어냈다고나 할까.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잡다한 주제를 다루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하나로 모인다. 그건 바로 ‘유동 사회’에 대한 분석이다. 


‘유동 사회’란 이 책의 제목에 보이는 ‘미친 세상’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책의 원제는 <파페 사탄 알레페: 유동 사회의 연대기>이다. 유동 사회는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창안한 개념으로, 말 그대로 중심이나 기준점 없이 계속해서 유동하는 사회를 의미한다. 법도 공동체도 믿지 않고, 신념도 정체성도 가치도 흔들리는 사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의 눈에 띄는 것이 기준점 없는 개인의 유일한 해결책’이 된 사회. ‘욕망의 대상을 구매하자마자 바로 폐물로 만들어버리면서도 끝없이 배를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폭식증 환자처럼 걷잡을 수 없는 구매 충동에 사로잡혀 이 물건 저 물건을 계속 집어드는 것이 목표’인 무절제한 소비 행태가 특징인 사회다. 


그런 사회에 걸맞게, 그의 이야기도 이리저리 흔들리며 일어나는 현상을 하나씩 하나씩 붙들고 늘어진다. 어떤 글에서는 인터넷에 만연한 헛소리와 가짜 정보를 개탄하다가, 어떤 글에서는 음모론의 문제점을 콕 집어낸다. 대중 매체, 인종주의, 철학과 종교, 글을 쓴다는 것, ‘뻔뻔하고 멍청한 인간부터 황당하고 정신 나간 인간들까지’ 두루두루 섭렵한다. 노령화 사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죽여야 한다고 부추기다가 반대로 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을 죽여야 할 거라고 짐짓 충고한다. 인터넷에 넘치는 정보들을 어떻게 선별해서 받아들일지 궁리하면서 학교와 선생님과 대중 매체의 역할을 강조한다. 


휴대폰에 몰두한 채 걷는 사람을 만나면 일부러 부딪쳐 휴대폰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못된 노인네 짓을 하는 한편, 인터넷을 베껴서 낸 보고서도 정확하고 올바른 자료를 찾아내 잘 베낀 거라면 칭찬해줘야 한다는 너그러움을 보이기도 한다. 농담과 반어와 진지함이 마구 뒤섞인 가운데 혜안이 반짝인다. 


시대는 바뀌고 겨우 몇 년간을 주기로 세대도 바뀌고 있지만, 모든 조언과 충고가 무용지물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물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무엇을 잡아야 이 흙탕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말해줄 수 있는 이는 오래 산 이들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참을성을 가지고 들을 수 있다면 모든 노인의 말 속에는 보석이 있다!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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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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