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간극의 예술

김태일 작가는 인물화가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은 양극단 사이 미지의 세계에 위치한다.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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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화가인 김태일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현실과 이상 사이 미지의 세계에 존재한다.

 

 

우리가 태어나 처음 눈떠 맞이하는 것은 빛이다. 어떠한 굴절과 분산도 겪지 않은 빛은 백색이다. 그러나 삶의 끝자락에 이르러 눈을 감으며 마주하게 되는 것은 영원한 암흑의 세계다. 삶은 흑과 백이라는 간극의 어딘가를 배회한다. 흑과 백의 사이를 부유하는 인간의 생애는 프리즘에 굴절돼 분산되는 빛처럼 저마다 여러 가지 색으로 변화하며 물든다. 1월 31일까지 P for Y 갤러리에서 개인전 <NUDE ART Exhibition>을 진행하는 김태일 작가는 이런 삶을 대변하듯 양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를 화폭에 옮긴다. 

 

 

P for Y 갤러리는 ‘Painting for You’라는 이름에 걸맞게 집에 부담 없이 두기 좋은 작품들을 전시 및 판매한다. 

 

 

김태일 작가는 우회로를 거쳐 파인 아트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타인의 요구에 응하는 그림을 주로 그렸어요. 그게 계속되다 보니 점점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가 고개를 들었죠.” 그는 마흔이 되던 해 유학길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의 아카데미 오브 아트 유니버시티에서 일러스트레이션&파인 아트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미국 초상화 협회(PSA, Portrait Society of America)의 정회원이기도 한 김태일 작가가 주로 그리는 대상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가 표현하는 인물은 실재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은 양극단 사이에 존재하는 어떠한 세계에 놓인다. “현실과 이상은 제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명제예요.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현실과 이상처럼 수많은 양극단의 대비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무한한 세계를 지닌 디지털도 사실은 1과 0으로 이루어져 있죠. 그렇다고 양극단의 차이만을 보여주는 그림은 아니에요. 현실과 이상 사이 미지의 세계를 제 나름대로 정립해서 캔버스에 옮기죠. 이 사이의 세계는 공간일 수도, 틈일 수도 있어요. 혹은 차원을 초월하는 개념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일까, 김태일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는 순간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구체적인 형상과 부드러운 붓 터치의 고전적인 유화 기법과 인상파 화가 같은 추상적이고 강렬한 터치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점이다. “모두 의도에 따라 그려진 것들이죠. 색온도도 의도적으로 대비시켜요. 예를 들어 인물이 웜 컬러로 표현됐으면 배경과 사물은 쿨 컬러로, 혹은 그 반대로 표현하기도 하고요. 이런 식으로 여러 가지 대비되는 요소를 하나의 캔버스 안에 담아내죠.” 작품의 이런 특징은 그의 대표작인 ‘Ideal & Reality’ 연작만 봐도 알 수 있다. 누드의 여성과 재봉틀이 함께 등장하는 이 연작은 김태일 작가가 앞서 말한 요소들뿐만 아니라 여체의 곡선과 재봉틀의 직선, 인간과 기계, 벌거벗은 몸과 이를 가려주는 옷 등 수많은 요소가 계속해서 대비되고 있다. 그러나 이 대비는 이질적이기보다는 묘하게 어우러진다. 보는 이는 무수한 대비 사이의 이야기를 무한히 상상하게 된다. 그렇게 변증법 논리처럼 반대되는 것들이 만나 이루는 화합, 그리고 관람객이 창조해낸 스토리는 새로운 세계를 완성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Castrato No.1125’. 거세돼 어떠한 성에도 속하지 못하는 가수 카스트라토의 잔향, 그리고 현실과 이상을 화폭에 옮겼다. 

 

 

김태일 작가는 인물화가이자 2018년 오픈한 P for Y 갤러리의 주인이기도 하다. “보통 미술 작품 하면 수억을 호가하는 대가의 그림을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런 작품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죠. 미술 작품에 대한 벽을 낮추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름도 ‘Art for You’가 아닌 ‘Painting for You’라는 뜻으로 지었죠. 작은 페인팅 액자일지라도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을 선보이고 합당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갤러리를 오픈하게 됐어요.” 작품을 단순히 관람하는 것과 소유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작품을 소유하는 것은 작품에 깃든 이미지와 개념의 향유는 물론이고 작품 완성을 위해 들인 작가의 노력과 시간까지 오롯이 갖는 것이다. 그래서 P for Y 갤러리는 속이 훤히 보이는 쇼윈도를 갖췄다.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해 갤러리 문턱을 낮추려는 그의 의도다. 문을 닫은 늦은 밤에도 갤러리 조명이 켜져 있는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그리고 꾸준히 전시를 진행하고 전시가 끝나면 합리적인 가격에 작품을 판매한다. 아트 클래스도 정기적으로 열어 많은 사람이 예술을 삶 속에서 향유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갤러리에 대한 소개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공간의 성향 또한 그의 작품 세계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술에 대해 문외한은 아니지만 소수의 컬렉터가 아닌, 극과 극 사이에 위치한 다수를 위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태일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 중 하나인 재봉틀은 인물과 대비되는 요소를 지닌 상징물이다. 

 

 

암흑이 걷히고 백색 빛이 찾아오는 일출의 순간, 하늘은 서서히 붉어지다 이내 정반대의 푸른색으로 변한다. 변화의 순간은 ‘물든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고 점진적이다. 그리고 묘하지만 아름답다. 기억에 남는 작품 평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김태일 작가는 평가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나만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길 위에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그의 작품과 공간을 바라보며 나는 해가 떠오르는 일출의 순간을 떠올렸다.    

 

 

 

 

 

 

 

 

더네이버, 피플, 김태일 작가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박재영(인물, 공간), 사진 제공 김태일(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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