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감각의 제국

세상은 오감을 통해 인지된다. 우리의 미각과 후각, 청각과 시각을 자극해 감각의 세계를 확장해주고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 이들을 만났다.

2021.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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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빈공간을채우는맛과향

바텐더&조향사 민경준

 

내게 바(Bar)에서의 기억은 대개 흐릿하다. 이미 한껏 취했지만 그냥 집에 들어가긴 어쩐지 아쉬운 마음에 비틀거리며 향했던 날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리단길의 프레그릿 2호점에서의 기억만큼은 생생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찰나의 감각이. 그건 민경준 바텐더가 나의 칵테일에 식향을 뿌려준 순간이다. 물론 그날도 취기는 이미 한계치까지 올라 있었다. 하지만 쌉싸래한 풀 내음이 코끝에 닿자 안개 속을 헤매듯 아득했던 감각이 일순간 선명해졌다. 영화 <마미> 속 스케이트를 타던 스티브가 양팔을 젖히자 1:1 비율의 화면이 1.85:1 비율로 확장되던 순간처럼.
민경준은 프레그릿 2호점의 바텐더이자 자신의 향수 브랜드 보이드(Void)를 이끄는 조향사다. 그의 첫 커리어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시작됐다. R&D 파트에서 음료 메뉴 개발을 담당했는데 일을 하면서 고객들 앞에서 직접 칵테일을 만들고 내주는 바텐딩에 점점 흥미가 생겼다. 현장감 있는 일의 방식과 고객과 바로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된 그는 정식으로 바텐더의 길에 들어섰다. 그러나 클래식 바에서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 고민이 생겼다. “바텐더로 일하다 보니 손님에게 서브하는 술의 향에 대해 설명하는 일이 잦았어요. 베리 향, 토피 향, 가죽 향 등. 그런데 설명을 하는 저에게조차 그 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와닿지 않더라고요. 거짓으로 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정식 조향 교육기관에 등록해 향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조향사 자격증을 취득했죠.” 그렇게 일을 하며 생긴 호기심으로 향이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던 중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일하던 바에 현재 프레그릿의 대표인 이원규 바텐더가 손님으로 왔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향을 콘셉트로 한 바를 구상 중임을 알게 됐죠.” 민경준 바텐더는 이원규 바텐더와 함께 프레그릿의 청사진을 그렸고, 오픈 멤버로 합류했다. 향을 바의 메인 콘셉트로 삼았지만 처음부터 식향을 입힌 칵테일을 선보인 건 아니다. 오픈 초창기, 해방촌의 프레그릿 1호점은 낮이면 그의 조향 클래스가 열리는 공방으로 이용됐다. 저녁에는 바로 운영되며 매일 바뀌는 공간의 향과 부가적인 재료를 이용한 향을 손님에게 전하는 데 그쳤다.

 

 

글렌피딕이 주최한 ‘월드 모스트 익스페리멘탈 바텐더 2017’ 대회에 참가한 것이 식향을 입힌 칵테일을 선보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어요.” 싱글 몰트위스키 브랜드 글렌피딕이 주최하는 이 대회는 실험과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바텐더가 주류 분야 외의 전문가와 협업해 메뉴를 제안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조향사로서 임병진 바텐더와 팀을 이뤄 참가했다. “바텐더가 아닌 조향사로 참여한 것은 아쉽지 않았어요. 조향의 재미에 푹 빠져 있던 때였거든요. 이 대회를 준비하며 일반 향수와는 다른 먹을 수 있는 식향을 처음 만들어보았어요. 심지어 물이나 종이 향을 만들어볼 만큼 정말 다양한 식향 제조를 시도하고 칵테일과 매치해보는 날의 연속이었죠.” 이러한 노력 끝에 그의 팀은 대회에서 결국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그의 칵테일 레시피에는 다른 바텐더들의 것과 다른 새로운 요소가 생겼다. 식향이 레시피 속 하나의 재료로 추가된 것. 
향을 맡는 행위와 맛을 음미하는 행위는 감각 기관을 자극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혀와 코라는 다른 감각 기관을 사용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조향과 주조를 모두 전문적으로 하는 그의 입장에서 바라본 비슷한 듯 다른 두 감각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공통점은 조향과 주조 모두 같은 레시피를 따르더라도 누가 만드냐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는 점이에요. 만드는 이의 감각은 다 다르니까요. 일명 손맛이죠. 차이점을 꼽는다면 우선 맛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바에서 처음 만났어도 칵테일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죠.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의 말에 내가 자주 하던 엉뚱한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인간이 음식을 섭취할 수 없게 된다면 취미를 공유하지 않는 모든 인간관계는 사라지지 않을까? 만남의 주요 매개체인 밥, 커피, 술을 먹을 수 없을 테니.’ 쓸모없는 망상이라 생각했는데 아주 허황된 건 아니구나 싶었다. “반면 향은 공간과의 연결 고리가 되어준다고 생각해요.” 그가 뒤이어 덧붙인 말에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향기는 공간에 대한 이미지와 기억을 상기시킨다. 공기를 매개체로 삼는 향기 입자는 공기가 있는 공간이라면 반드시 깃들어 있기에. 그것이 아주 미약할지라도 말이다. 그는 어떠한 공간에 들어설 때면 이곳엔 어떤 향이 어울릴까 상상한다고 했다. 그래서 2019년 론칭한 그의 향수 브랜드 이름도 공간을 알맞게 채우는 향을 선보이겠다는 의미를 담아 빈 공간이라는 의미의 프랑스어 ‘보이드’로 지었다. 이 단어는 브랜드뿐만 아니라 그와도 퍽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각과 후각 사이, 감각의 빈 공간을 날마다 채워주고 있으니.

 

 

 

 

 

 

 

 

 

당위성에 질문을 던지는 음악

사운드-미디어 아티스트 조태복 & 정진희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하다.’ 이는 ‘당연하다’의 사전적 정의다. 우리는 감각 기관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리고 뇌를 통해 해석된 정보가 우리의 예상과 부합할 때 ‘당연하다’고 판단한다. 그룹으로 활동하는 사운드-미디어 아티스트 조태복, 정진희 작가는 세상 속 ‘당연한 것’들의 당위성을 전복시키는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면 ‘당연히 시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정보인 색’을 청각을 통해 받아들인다면? ‘당연히 넘을 수 없는 빛의 절대 속도’ 너머의 소리를 감지한다면? 같은 것들. 이런 가정과 그들만의 방식으로 찾아낸 답들은 2018년 세계적 권위의 전자음악상인 ‘기가-헤르츠어워드’에서 한국인 최초로 작품상을 수상하며 세상의 인정을 받았다. 그들이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세종문화회관에서 곧 진행될 전시 <DATA COMPOSITION>의 막바지 작업에 한창이던 두 작가를 만났다. 
독립적인 아티스트였던 조태복, 정진희 작가가 함께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와 대학원 선후배 사이였어요. 당시 저는 졸업 후 개인적으로 몇 가지 작업을 선보이는 중이었고, 정진희 작가는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한 상태였는데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작가로 선정되며 작업실을 함께 사용하게 됐어요. 서로의 작품에 대한 조언을 종종 공유하다 함께할 때 시너지 효과가 더 크다는 걸 알게 되면서 협업을 시작하게 됐죠.” 그들은 <#Include red>를 시작으로 곧 선보일 <DATA COMPOSITION>까지 총 여섯 번의 전시를 함께 준비해왔다. 그러나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자는 의미에서 팀의 이름은 따로 짓지 않았다. 그만큼 각자의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은 독립적이다. 그런 두 존재가 협업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이는 저희 작품을 관통하는 중요한 명제이기도 하고요.” 정진희 작가가 말했다. 뒤이어 조태복 작가가 첨언했다. “음악은 보이지 않는, 시간의 예술이라고 하잖아요.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어요. 하지만 이성이 아닌 감각으로 음악이 비가시적이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라는 걸 체득한 것은 첫 번째 협업 전시 <#include red>를 준비하면서부터였어요.” 그리고 이를 증명하는 건 ‘시간’이라고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사실 무언가를 듣는다는 건 음이 발생하는 순간 이뤄지는 게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소리가 발생한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가 다른 청각적 경험을 하고, 이것을 인지할 때 비로소 무언가를 들었다라고 표현한다. 즉 음악은 흐르는 시간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이는 역으로 존재의 증거가 된다. 그래서 그들은 여태껏 선보였고, 또 앞으로 선보일 전시를 ‘시간’이란 거시적인 테마로 아우른다. 

 

 

 

고백하건대 그들의 작품을 처음 들었을 때 일종의 백색 소음이나 SF 영화의 효과음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을 소리가 아닌 음악이라 칭할 수 있을까’란 의문도 들었다. 이 질문에 조태복 작가가 답했다. “사실 처음 전자 음악을 시작하고 몇 년간은 저 역시 이것을 과연 음악이라 부를 수 있는지 자주 되물었어요. 하지만 이것 또한 음악이라 규정지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음악이란 원래 시간 안에 질서를 만드는 작업이거든요. 물론 저희의 음악이 갖는 질서는 일반적인 음악과는 조금 달라요. 하지만 저희가 만들어낸 시스템에 따른 분명한 질서를 가지고 있어요.” 
학문적으로 이론화된 질서가 아닌 그들만의 규칙에 따라 만들어지는 그들의 음악은 스스로의 질서와 존재의 당위성에 의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치며 완성된다. “테크닉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시간보다 개념을 정립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요. 우리가 무엇을 말할 것이며, 왜 이러한 소리를 만들고 내야 하는지 같은 거요.” 그래서 그들의 전시장에는 음악과 함께 작품을 시각적 기호로 기록한 미디어 아트 작품과 그들이 손으로 그린 악보 등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그들의 작품은 완성된 음악뿐만 아니라 이 음악을 만들기 위해 거친 모든 과정이 합쳐졌을 때 비로소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심리학에는 언캐니(Uncanny)란 용어가 있다. 친숙하면서도 어쩐지 낯선 존재를 마주했을 때 느끼는 두려운 감정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인간과 닮았지만 어딘가 다른 로봇, 유령, 도플갱어에게 느끼는 불쾌감을 언캐니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익숙한 듯 어딘가 낯선 것에 보통 불편함과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미묘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예전에 인천에서 전시를 진행할 때 꼬마 아이들이 전시를 보러 온 적이 있어요. 처음엔 귀신의 집 같다면서 무서워하더라고요.” 하지만 익숙한 듯한 낯섦은 경험이 축적되며 이내 완전한 익숙함이 될 수 있다. 다음 날 전시를 또 찾아온 아이들이 전시장을 마음껏 뛰논 것처럼. 조태복 작가와 정진희 작가는 자신의 작품들을 우선은 편견 없이 받아들여보라 말한다. “처음엔 낯설어서 거부감을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러한 사운드-미디어 아트 작품들도 여러 번 감상하다 보면 차차 익숙해져요. 이 과정에서 자신의 사운드 취향을 알아갈 수도 있죠. 또 일상과는 조금 동떨어진 경험을 통해서 나의 실재를 한 번 더 돌아볼 수도 있고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들에게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지 물었다. 조태복 작가는 느껴지는 것,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내게 말했다. 인터뷰의 말미쯤, 그 의미가 어렴풋이 이해됐다.     

 

 

 

 

 

 

 

 

 

더네이버, 피플, 조향사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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