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코로나 시대, 중년 배우의 삶

배우 김성령과 방은희는 친구 사이다. 20대 데뷔 때부터 조용히 서로 충고하고 북돋고 이끌어왔던 시간. 한없이 솔직해 전부 옮길 수 없었던 그들의 대화를 엿본다.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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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BIANA FILIPPI 울과 실크 소재를 혼방한 스팀 그레이 컬러 재킷. PIAGET 비대칭 러그가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18K 화이트 골드 소재의 라임라이트 갈라 워치 32mm.PUBLICKA X 클래식한 디자인의 그레이 재킷.
FRED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샹스 인피니 이어링과 다이아몬드 체인 액세서리, 화이트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포스텐 링, 화이트 골드에 다이아몬드를 파베 세팅한 시그너처 버클과 다이아몬드 라인의 포스텐 라지 모델 브레이슬릿.

 

 

 

(방은희) ALEXANDRE VAUTHIER from NET-A-PORTER 튜브톱 점프슈트. AVA MOLLI 울 혼방 소재 화이트 셔츠. PIAGET 18K 핑크 골드 포제션 링.
(김성령) PUBLICKA 브이넥 베스트, 소매에 볼륨감을 더한 셔츠, 와이드 핏 팬츠. FRED 화이트 골드와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진 샹스 인피니 더블 링. PORTS 1961 골드 색상으로 포인트를 준 스퀘어 토 부츠.

 

 

 

“어머! 나 배우 같아.”
촬영 컷을 들여다보던 배우 방은희가 던진 말에 모두가 웃는다. 사실 아까부터 중간중간 웃음을 주는 문장을 20여 명의 스태프가 모인 스튜디오에 주저없이 던지던 그다. 김성령은 친구의 농담이 이제는 익숙할 만큼 오래된 사이인데 마치 처음 듣는 사람처럼 활짝 웃는다. “성령아, 너 아기처럼 나왔어.” 방은희는 사진 속에서 자신에게 기대 서 있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애정 어린 의견도 더했다. 배우 김성령과 방은희 두 사람은 50대 한복판을 걷고 있는, 그야말로 중년 배우다.


신기했다. 어리거나 젊은 스타들을 헤어 메이크업 룸에서 만났을 때의 느낌과 달랐다. 처음 본 두 사람인데 어딘가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렇다고 긴장감이 없진 않다. 아마도 시간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경륜에서 비롯된 여유일 것이다. 자주 연락하고 지낸 사이인데도 두 사람은 서로 나눌 얘기가 많은지 메이크업 룸이 한순간도 조용한 틈이 없었다. 새 옷을 입으면 입는 대로, 뭔가를 꺼내 먹으면 먹는 대로 또 쉴 새 없이 일상에 대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래, 그들은 친구이다. 언제 보아도 이상할 것이 없고, 꼭 이유가 있어야 만나는 사이가 아닌 친구인 거다.


“성령이를 1988년에 처음 봤어요. TV에서.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된 그 장면을 보고 있었죠. 와, 저 사람 누구지? 진짜 하늘이 내렸나봐, 하며 놀랐어요. 내 눈에도 성령이가 제일 예뻤고 멋있었어.” 김성령은 1988년 제32회 미스코리아 진에 당선됐다. 알려졌다시피 명동의 모 미용실 원장의 제안으로 참가한 대회였다. 진에 당선된 이후 그는 당시 미스코리아들의 활동 패턴대로 <연예가중계>의 MC로 커리어를 시작하고 강우석 감독의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에 캐스팅돼 배우로 데뷔한다. 이 영화를 통해 김성령은 영화제 신인 배우상을 휩쓴다. 방은희는 1989년에 영화 <장군의 아들>(1990) 오디션을 통과하고 스타가 된다. 당시 오디션 심사위원이었던 배우 강수연이 다른 의견을 만류하고 “배우가 될 얼굴”이라며 방은희를 알아본 덕에 길고 긴 배우 인생 길로 들어선다. 당시 오디션 경쟁률은 2000 대 1이었다. 영화는 이듬해 개봉해 흥행에 성공한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활동을 시작한 동갑내기 스타들은 서로 멀리서 관심을 두고 있다가 2005년 KBS에서 방영된 아침 드라마 <걱정하지 마>에 함께 출연하면서 친구가 된다.


방은희 “드라마가 첫 만남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첫 번째 결혼했을 때 나는 성령이에게 청첩장도 안 줬어요. 그런데 축의금을 놓고 갔더라고(웃음).”
김성령 “당시엔 동갑내기가 같은 작품을 할 기회도 드물던 때였어요. 드라마를 함께하면서 그때부터 직접 연락하고 지냈어요.”
방은희 “성령이가 늘 연기에 목말라했어. 이 친구는 사실 모든 것에 갈증을 느껴요. 그런 모습이 내 눈엔 예뻤다고.”
김성령 “왜냐하면 나는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니까.”
방은희 “넌 정말 엄살쟁이라니깐.”
김성령 “나는 처음부터 그냥 편했는데, 은희가.”
방은희 “처음부터 네가 보였어. 미스코리아 중에서 제일 예뻤고, 솔직히 그때 이후로 (미인이) 없어. 그런데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이 더 예뻤지. 이렇게 멋진 사람이 내 친구라는 게 늘 자랑스러웠어.”
김성령 “우리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가식이 없어서야.”
방은희 “(웃음) 너무 없어서 문제지.”
김성령 “뭔가를 재고, 계산하고 뒤로 딴생각하는 사람들은 못 만나겠더라. 은희도 가식 없는 스타일이고, 나도 그렇고. 올해로 16년째 이어가는 사이인데, 은희가 제일 잘 맞는 것 같고 그래요.”

 

 

 

 

JAYBAEK COUTURE 은은한 광택이 도는 화이트 실크 위빙 더블 히든 버튼 드레스.
FRED 렘니스케이트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한 화이트 골드와 다이아몬드 세팅의 샹스 인피니 네크리스.

 

 

 

여자, 그리고 배우의 삶

 

방은희와 김성령은 보수적인 여성상이 강조되던 시절을 오롯이 겪으며 성장했다. 1990년대 방은희라는 배우의 존재는 파격적이었다. 잘 알려진 사례로 곽경택 감독의 데뷔작 <억수탕>(1997)을 그가 받아들였다. 모든 배우가 하지 않겠다고 거절한 시나리오다. 목욕탕이 주요 배경인데 등장하는 캐릭터가 옷을 갖춰 입을 수 없지 않은가. 그녀는 엄격하고 보수적인 아버지 아래에서 자라다 보니 오히려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을 꿈꾸며 굴레로부터 달아나려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나는 스무 살 무렵에 억압된 여성상이 싫었어요. 그 틀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했죠. ‘여성 상위 시대’라는 것이 밥상 위에 여자 밥그릇 올리는 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프랑스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성 해방을 논했을 때 저는 그의 글을 읽으며 그런 세상을 꿈꿨어요. 그래서 튀었지. 지금은 그런 것이 너무 당연한 시대인데 이제는 오히려 나 자신이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 들어요. 보수적인 사람이 됐다고 해야 할까?”


김성령도 그와 동시대를 걸었다. 누가 봐도 미인인 김성령에게 미스코리아 참가 제안이 온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에겐 뜬금없는 일이었다. 보수적인 정서가 지배적인 1980~1990년대만 해도 미인 대회나 연예계는 아예 다른 차원의 세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현재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과거에 비해 많은 부분 퇴색했지만, 당시는 ‘여성의 성 상품화’라는 시각으로 비난만 받는 대회는 아니었다. 미스코리아는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었고 그에 대한 대중의 공감도 컸다. 운명처럼 주어진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은 김성령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부심도 컸고, 책임감도 강했어요. 해외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활동을 했으니까. 여자로서, 미스코리아로서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했어요.” 여자의 몸이라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데 하나의 상업적인 사업이 되어버린 것이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배우 생활에 있어서도 예의 바르고 반듯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품고 살았어요. 물론 그 때문에 좀 갇혀 있었다고 해야 하나.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방은희가 연기를 통해 자유를 표출하는 동안 김성령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행보를 걷는다. “나는 지금도 은희가 멋있어요. 난 머리로 하는 게 많은데, 이 친구는 동물적 감각으로 해요. 내게는 소위 말해 ‘끼’라는 게 없는데, 은희에겐 끼가 있어요. 그래 저런 게 끼야, 저런 사람이 배우지, 하죠.”

 

 

 

(김성령) YCH 울 혼방으로 보온성을 높인 블랙 재킷.
(방은희) YCH 허리 부분에 과감한 컷아웃 디테일이 들어간 레더 재킷.

 

 

(김성령) YCH 허리 라인을 강조한 블랙 재킷, 와이드한 핏의 블랙 팬츠.
(방은희) YCH 강렬한 인상을 전하는 레더 재킷과 팬츠. JIMMY CHOO 독특한 뒷굽이 특징인 앵클부츠.

 

 

 

 

김성령에 대한 방은희의 칭찬도 함께 있는 내내 마르지 않았다. “성령이는 굉장히 노력하는 타입이에요. 외모를 가꾸는 것뿐만 아니라 10년 뒤의 자기 모습과 생각을 염두에 두면서 행동하니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옳아요. 또 내가 감성이나 감정에 좀 더 기대 있다면, 성령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면이 있어요. 변화에도 잘 적응하고 겉모습은 여성스럽지만 카리스마도 있고. 요즘 이런저런 프로그램에서 진짜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보고 말했죠. ‘이제 너 형님으로 가자’고.”(웃음)


두 사람은 20대 시절, 자신들이 50대가 되어도 연기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0대에 50대를 바라보면 무척 까마득한 것이 사실이다. 데뷔한 지 30년이 넘었고 크고 작은 역할로 참여한 작품은 영화, 드라마, 연극 등 장르 가릴 것 없이 각자 총 70여 편이 넘는다. 두 사람이 참여한 작품을 합치면 아마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 역사를 읊을 수 있을 정도다. 방은희는 “직장인들처럼 9 to 6인 루틴으로 살아온 것도 아니고 매번 다른 작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과거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보수적인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는 자유롭게 자신을 표출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과거에 비하면 많은 기회가 여자에게 주어지는 시대다. 하지만 여자 배우들은 여전히 목마르다. “내가 좇아가려고 해도 그럴 수 없을 정도로 분명히 많은 변화가 있었죠. 여자들의 힘이 세졌기 때문에 제작자들은 여성 관객을 공략할 수밖에 없고. 여전히 남자 배우들에게 더 기회가 주어지는 이유죠.” 김성령이 말한다. 변화의 시대를 관통하며 살고 있는 50대 배우들은 적잖이 혼란스러울 때도 있음을 토로했다. 정답 없는 연기가 여전히 어렵고 자신의 연기가 흡족하지 않아 또 다른 시각으로 곱씹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도 고백한다.


김성령 “과거엔 어른들의 이런저런 얘기를 들었을 때도 내 생각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 20대 때는 정말 그랬거든, 내 의견을 말하고, 당돌하게.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세상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게 되면서 더 혼란스러워지는 거야.”
방은희 “맞아. 아니다, 라고 확실하게 말해야 하는데 그 또한 맞는지 아닌지, 나를 알아가는데 내가 나인지를 모르겠어. 내 주장을 펼칠 수도 없고.”

김성령 “사람이 변하는 게 아니라 상황이 변한다잖아. 나라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변할지를 생각하곤 해.”

방은희 “나는 너무 묻혔어, 요즘은 내가 없어졌어. 며칠 전 영화 촬영 현장에서 내가 나를 느끼기를, 연기를 정말 못하는 거야. 나 자신에게 무척 실망했지. 박탈감까지 느꼈다니까.”
김성령 “나도 지금 사실은 좀 그래. 세상과 내가 소통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 소통하려고 노력하려는 거지, 어떤 때는 턱턱 부딪칠 때가 있어.” 방은희 “다른 것 다 떠나서 젊을 때는 여성해방운동이라든지, 뭔가에 대한 절실한 갈구와 열정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열정이, 아니 단어를 거꾸로 말해 정열마저 사라진 것 같아.”
김성령 “어느 해였나? 내가 ‘너 내년엔 뭐 할 거니?’라고 물었는데, ‘나는 멋있는 배우가 될 거야’라고 말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아. 나도 저런 꿈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다 했지. 과거엔 연기에 대한 열정이 그다지 없었거든.”
방은희 “네가?”
김성령 “황인뢰 감독님이 드라마 하자고 연락을 주셨는데, ‘저는 영화만 할 거예요’라고 대답했지. 철이 없었어(웃음). 그러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깨달았지. 내가 지금까지 뭘 한 거지? 어차피 이 길에 들어섰는데 제대로 한번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뒤늦게 깨달은 거야.”
방은희 “그래 기억나. 그때 너 진짜 절실해 보였어. 아기 낳고서.”
김성령 “그런데 연기가 너무 어려운 거야. 잘 안 되고. 연기에 대한 갈망이 결국 내 자존심이었던 것 같기도 해.”
방은희 “나는 한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거야. 30대, 40대를 돌아봐도 크게 기억 남는 시간이 없다고 해야 하나. 나 스스로를 많이 가둬놓기도 했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몰랐어. 이제 나를 사랑하려고.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해, 그런 마음이 들어.”
김성령 “그래, 앞으로 더 잘될 거야.”

 

 

 

 

BOSS WOMEN 레더 소재 롱 코트.
PIAGET 8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포제션 링.
BVLGARI 18K 로즈 골드에 블랙 세라믹을 세팅한 비제로원 브레이슬릿

 

 

(방은희) MISS GEE COLLECTION 롱 코트, 화이트 셔츠, 여유로운 핏의 팬츠, 골드 버클로 포인트를 준 블랙 벨트.
PIAGET 강렬한 태양에서 전해지는 광채와 환희의 순간을 표현한 반원형의 선라이트 이어링. ALLSAINTS 두터운 플랫폼을 장착한 블랙 앵클부츠.
(김성령) MISS GEE COLLECTION 소매 부분에 벨벳으로 소재 대비를 준 브이넥 롱 드레스, 볼드한 디자인의 벨트.
JIMMY CHOO 스트라이프 패턴의 미디 부츠.

 

 

 

 

멈춘 일상, 생각의 시간들

코로나19로 영화관 운영이 힘들어지는 시기가 길어지니 예정되어 있던 영화 촬영도 줄줄이 취소됐다. 지금은 전 세계 어느 누구에게나 그렇듯 배우들에게도 힘든 시기다. 두 사람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고 했다. “요즘 사춘기 같다”는 김성령의 말에 방은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굉장히 혼란스러워. 그래서 40대인 친구들에게 정말 아무것도 계산하지 말고 뭐든지 다 하라고 말해. 40대까지는 몸의 변화가 없잖아. 50세가 넘으면 호르몬 변화가 오고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어. 21세기가 되어 많은 기술이 발달해도 몸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지. 겉모습은 젊어 보이지만, 50대, 60대가 되면 몸속은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여. 몸이 병에 걸렸을 때 고칠 수 있는 의학이 발달한 거지, 노화를 거부할 수 없어. 몸도 변하고, 또 뇌도 늙어.” 며칠 전 김성령은 케빈 코스트너와 다이안 레인이 나오는 영화 <렛 힘 고>를 본 감흥이 적지 않다고 했다. 60세가 넘은 두 사람은 영화 속에서 열 살 차이 부부로 나오는데, “여전히 섹시하고 멋있”단다. 다이안 레인을 보면서 다시 긴 헤어스타일을 해볼까 생각했을 정도였다고. “어찌 됐든 마음만은 여전히 노후를 준비하기보다 계속 진행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50대 되면 은퇴하겠다고 입에 달고 살았는데, 아니야. 다 내려놓는 것은 60대로 미루자고 마음먹었어요.”


그 어느 때보다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은 시기이다. 작품 공백이 생기면 그랬듯이 이것저것 배우며 일상을 보냈다. 방은희는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말할 정도로 서로 무언가 많은 것을 하고 있죠”라고 말을 이었다. “요리도 배우고 춤도 배우고, 우리 왜 이러고 사냐, 할 정도로 많은 것을 하고 있어요. 요즘 성령이는 책을 보고 독후감을 써요. 감상문을 쓰는 것 같고, 나는 요즘 요리를 정식으로 배우다가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보려고. 이제 필기시험 막 합격했어요.” 그는 난생처음 온갖 종류의 김치를 만들어봤다면서, 어제는 알이 굵고 좋은 통마늘을 50쪽 사서 직접 껍질을 깠고, 여전히 손에서 마늘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를 김성령에게 전하며 자신의 내면에 목가적인 면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방은희 “파, 양파, 마늘 이런 재료가 너무 소중하다는 걸 알았어. 사실 그게 기본이거든.”
김성령 “그래, 우리 그동안 너무 쉽게 먹었지.”
방은희 “이제는 된장을 담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나중에 장독대 놓고 살려면 시골에 터전을 잡아야겠네. 나 농사지을까?”
김성령 “그만해(웃음). 하긴 네가 시골에서 농사짓고 살면 나야 좋지. 가서 김치도 얻어먹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긴 한데,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췄잖아요. 너무 편하게만 살아왔던 결과를 인식하고 자기 성찰을 하고 반성하는 시기가 됐으면 해요. 바쁘게 사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생각하는 시간이라고. 어떻게 보면 시련이 축복이 되고, 좀 더 좋은 세상이 되기 위해 이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서 세상이 너무 급변한다고도 얘기했다. “우리 엄마들은 전쟁을 겪은 세대예요. 우리는 상상만 해도 끔찍한 그 전쟁을. 2020년을 그냥 보낸 것 같지만 생각해봐, 엄마들은 전쟁을 겪었어. 그 여파가 1년이 아니었다고. 전쟁 때문에 인생에서 긴 시간을 그냥 보낸 거잖아. 지금 1년 멈춘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김성령 “나보다 앞서 사신 선배님들이 50대였을 땐 후배에게 좋은 조언도 해주시고 참 멋져 보였어. 나도 멋지게 나이가 들면서 내 주름을 사랑해야지, 나의 나이를 사랑하고 세상 사람을 이해해야지, 이럴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방은희 “그분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겉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후배들이 너를 보면 너도 어른이야. 우리는 입을 조금 다물면 돼(웃음).”
김성령 “이게 코로나 시기를 겪고 있어서 그런 것일 수 있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방은희 “언제부터인가 시쳇말로 ‘존버, 존버’ 하잖아. 그런데 ‘존버’도 희망이 있어야 하거든. 그런데 그 희망이 누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 희망조차 내가 꿈을 꿔야 하는 거고, 희망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 그러니까 희망을 ‘잊지’ 말자고.”

 

 

지난해 방은희는 김성령의 소속 회사로 적을 옮겼다. 친구인 김성령이 제안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소속사 대표와 친구 사이에 자신이 개입하면 서로 불편해질 수 있어서 아무런 의견을 던지지 않았다고 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김성령이 서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본 방은희는 방송 후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성령아, 나는 그 눈빛이 썩 좋지는 않았어”라고. 솔직한 의견을 들은 김성령은 집으로 돌아가 한참을 생각했다고 했다. 친구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고. 서로 솔직한 성격과 함께 공과 사를 구별하는 모습은 그들이 16년간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비결이다.


스튜디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을지언정, 타인의 눈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곱고 아름다웠다. 김성령은 배우로서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배가 고프다며 스낵을 찾는 김성령은 젊을 때 1시간 하던 운동을 3시간 늘려야 지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다.먹고 또 운동하는 자신을 “피곤하게 산다”고 웃으며 말한다. 둘 다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의 현실적인 노력이다. 호리호리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 방은희는 얼굴에 인위적인 시술을 하지 않고 늙고 주름진 모습을 자연스럽게 둔다고 말했다. 

50대 중반을 걷고 있으니 머지않아 ‘엄마’라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어서다. 젊은 시절 센 모습이 강했지만 이제는 조금 내려놓았다고. 그렇게 있는 그대로 가꿔온 그의 모습은 보면 볼수록 고왔다. 그들은 50대가 되어도 여전히 혼란스럽고 후배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김성령과 한 번이라도 함께 일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좋은 분이라고 했고 방은희를 아는 스태프들은 그의 유머러스한 입담과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하루 이틀 된 이야기는 아니다. 암울한 시기에 서로 의지하는 친구라는 관계, 그리고 묵묵히 때를 기다리는 중년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다. 역시나 그들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멋졌다.

 

 

Stylist 마연희 Hair & Makeup 홍지선, 이경은(김성령), 이담비(방은희) Assistant 표선아

 

 

 

 

 

더네이버, 피플, 여배우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KIM YEONG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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