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시간을 달리는 컬렉터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아트 디렉터인 임상봉 작가는 소문난 빈티지 컬렉터다. 국내에 빈티지란 개념조차 생소했던 1995년부터 시작된 그의 수집벽은 빈티지 열풍이 불고 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한다

20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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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동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의 임상봉 작가. 그의 작업실에는 다양한 시대의 가구와 소품들이 혼재되어 있지만 이질감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스튜디오 입구에 자리 잡은 노르멘드 사의 스펙트라 후투라 트랜지스터 라디오. 레이먼드 로위가 디자인했으며 1960년대에 생산됐다.

 

창고 8개, 독일의 창고 2개 그리고 마장동 스튜디오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25년이면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남는 세월이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하는 스타일도 변해요. 초장기엔 바우하우스의 미니멀한 디자인만 추구했는데 점점 화려한 디자인을 찾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제 컬렉션도 보다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게 되었죠. 취향은 계속해서 변하니 오랜 세월 모았지만 계속해서 갖고 싶은 제품들이 생겨요.” 그의 스튜디오에 있는 제품들이 디자인된 시대는 1919년도부터 197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이었지만 그럼에도 모든 제품들이 처음부터 하나의 세트로 제작된 마냥 어울렸다. “바우하우스, 모던 클래식, 스페이스 에이지의 디자인 사조는 구분되지만 확실한 연결고리가 있어요. 바로 실용성과 편리성이죠. 생산된 시대는 달라도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에 한자리에 모아두어도 서로 잘 어울리죠.” 그렇지만 생산 시대에 따라 각각의 매력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시대별로 어떤 다른 매력이 있는지 궁금하다면 재료를 유심히 살펴보세요. 바우하우스 시대를 대표하는 미스 반데어로에, 마르셀 브로이어의 제품들은 대부분 철과 나무 그리고 가죽으로 제작됐어요.

 

 

 

임상봉 작가의 컬렉션은 의자, 테이블, 조명은 물론 주방용품, 시계, 촛대, 화병 등 작은 소품들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스튜디오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임상봉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은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신소재가 급속도로 개발됐고 이런 사회적 변화는 바우하우스 이후 미드 센츄리 모던 시대의 디자인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어요. 파이버 글라스를 이용해 만든 임스 체어가 대표적인 예죠. 반면 북유럽 쪽에서는 지역 특성에 따라 목재를 이용한 디자인이 강세를 이루고요. 이후 우주 여행에 대한 열망이 팽배했던 스페이스 에이지 시대에는 이전보다 더 다양한 신소재가 탄생하고 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재료를 혼합해 사용하는 경향을 보여요. 조에 콜롬보, 베르너 판톤의 제품만 봐도 알 수 있듯, 마치 우주선처럼 유선형의 미래지향적인 디자인도 두드러지고요. 각 제품에는 시대적 배경이 녹아 있죠” 그가 덧붙인 말을 듣고 본래 준비했던 질문인 빈티지 제품들의 매력은 무엇인지라는 질문은 삼켰다. 그의 수집 행위가 단순히 아름다운 형태만을 좇는 게 아니라는 건 구태여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모은 수집품 하나하나에는 제품이 탄생하기까지 쌓여온 역사, 당대 디자이너의 철학은 물론 그 제품을 소유하기 위해 그가 들인 노력과 스토리까지 오롯이 담겨 있었다. 임상봉 작가가 차곡차곡 모아온 건 이 모든 것이다.

 

 

 

작업을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등 개인적인 시간을 위해 조성한 스튜디오 한편의 작업 공간.

 


그래서 궁금했다. 빈티지 제품들에 대한 인기가 날로 높아지며 아이러니하게도 당대의 제품을 트렌디한 신제품처럼 소비하는 요즘 흐름이 그에게는 어떻게 보일까. “바우하우스와 모던 클래식 시대에 생산된 제품들, 소위 말하는 빈티지가 국내에서 처음 관심을 받은 2000년대 중반만 해도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는 용도로 소비했어요. 그러나 최근 들어 빈티지 제품에 대한 인기가 증가하고 빈티지 전문 편집숍이 늘며 많은 사람들이 빈티지 제품을 쉽게 접하고 구입할 수 있게 되었죠. 꼭 부유하지 않더라도 빈티지 제품을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효과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인기 있는 특정 제품들만 한정적으로 취급되어 대중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다는 것은 안타까워요. 국내에 잘 알려지진 않았어도 우리에게 익숙한 제품들 못지않게 훌륭한 제품들이 세상에 무궁무진하게 존재하는데 소개되지 못하는 게 아쉽죠.” 물론 지금 국내는 소수의 사람들을 넘어 대중이 빈티지 제품을 본격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하는 과도기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 말했다. 그러나 특정 스타일만 소비되는 형태로 고착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염려를 표했다. 그는 덧붙여 빈티지 제품의 진정한 가치를 누리고 소비하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것은 기본이고 일단 제품을 구입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므로 딱 하나의 제품을 추천할 수 없어요. 대부분 처음엔 의자를 구입하기 마련인데 그조차도 소파, 라운지 체어, 바 체어 등 선호하는 스타일과 디자인 취향이 다르죠. 일단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구입해보세요. 직접 사용해보고 소유했을 때의 기쁨은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거든요.”

 

 

 

왼쪽 선반 한켠에는 임상봉 작가가 20세기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참고한 책들이 꽂혀 있었다.  오른쪽 <1000 chairs>는 그가 20세기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처음 읽었던 책이다.

 

왼쪽 버려진 가구를 살피다 발견한 임스 부부의 타임 라이프 로비 체어. 오른쪽 1970년대 생산된 니겔 시스템 2000 플로어 램프와 1950년대 생산된 WMF의 커피포트 등이 스튜디오 한켠을 장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수집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행해지지만, 그는 홀로 즐거움을 향유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태껏 모아온 수집품들을 주제에 따라 구성해 꾸준히 전시를 진행하며 대중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전의 전시에서 선보인 제품과 새로운 전시에서 선보이는 제품을 절대 겹치지 않게 구성하는 것만 보아도 전시의 목적이 자기만족보다는 누군가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작년에도 바우하우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경기도 양주 조명 박물관에서 전시를 진행했고, 향후 1~2년 이내에 새로운 전시를 선보이려 계획 중이다. “보통 3년을 주기로 전시회를 열어요. 사실 함께 전시하자고 연락하는 갤러리들은 많아요. 하지만 자주 전시를 하기에는 준비가 만만치 않아요. 빈티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겐 제가 선보이는 전시가 기준점이 될 수도 있어요. 정확한 정보와 각 작품이 지닌 고유의 가치를 올바르게 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커서 허투루 준비할 수 없어요.”

 

현재는 한시적인 전시를 개최하고 있지만 먼 훗날엔 누구나 언제든지 20세기 디자인을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자신의 소장품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을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전시품은 그의 이전 전시들과 앞으로 진행될 전시에서처럼 직접 만지고 앉아볼 수 있게 준비할 것이다. “가구는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 탄생했어요. 유리 케이스를 씌워 눈으로만 감상하게 한다는 건 본질에 어긋나는 일이죠. 대중이 제 수집품이 지닌 가치를 오롯이 누릴 수 있길 바라요.” 20세기의 시대상을 담고 있는 그의 수집품들은 물론 아무도 빈티지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부터 올곧게 지켜온 그의 수집벽은 세월을 견뎌내며 누군가에게 새로운 영감을 주고 있다. 일전에 어느 오래된 여행기에서 ‘시간을 견뎌낸 모든 것은 갈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언젠가 이 문장을 복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것 같아 메모해두었는데, 임상봉 작가와 인터뷰를 마친 지금이 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네이버, 피플, 아트디렉터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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