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물결 너머의 질문들

에이스트릭트는 현재 아트 신의 화제다. 이력과 실체, 작품 모두. 신진 미디어 아티스트 유닛의 모체인 디스트릭트의 이성호 대표와 이상진 부사장을 만났다.

202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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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RICT <Starry Beach> 2020. 

 

어둠이 드리워진 국제갤러리 K3 전시장은 푸른 파도 물결로 차 있다. 에이스트릭트의 작품 ’스태리 비치(Starry Beach)’다. 6m 높이의 벽을 타고 불꽃처럼 퍼지는 파도의 물결, 이와 반대로 벽과 바닥이 맞닿은 면에서 시작해 관람자의 발밑을 파고드는 물결이 어우러진 모습은 가히 초현실적이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세찬 파도 소리는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관객을 낯설고 새로운 공감각으로 이끈다. 파도와 반대쪽 벽면에 세팅된 거울은 이러한 감각을 더욱 확장한다. ‘스태리 비치’는 회화에서 말하는 극사실주의적인 표현처럼 파도의 특징을 극명하게 부각하고 확대해 재구성한다. 이 작품은 3D MAX라는 소프트웨어로 제작되었다. 간단히 ‘컴퓨터로 파도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지만 창작 과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번 프로젝트를 총괄한 디스트릭트의 이상진 부사장이 그 과정을 설명했다. “이곳을 ‘심해’라고 가정하고 파도가 치는 가상의 환경을 조성했어요. 100m 길이의 해안선 저 멀리 50m 지점부터 파도가 밀려오는데, 해안의 지형, 바람의 세기, 물의 양 등을 가상 공간에 세팅하죠. 그곳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거예요. 그럼 파도가 치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파도의 양을 더 늘리거나 줄이고, 지형의 높낮이 등을 결정해요. 그러고 나서 입자가 다른 거품을 넣어볼까, 모래를 좀 더 넣을까 하며 에이스트릭트가 원하는 파도를 가상으로 만들어요. 이러한 과정을 ‘환경을 시뮬레이션한다’고 해요. 시뮬레이션을 통해 도출된 파도는 파도라는 물성 자체만 띠죠. 여기에 물결의 색을 입히고 빛을 줘서 반사 값을 높이는 등 후반 작업을 거쳐 원하는 그래픽을 만든 거예요.” 

 

디스트릭트 이성호 대표(오른쪽)와 이상진 부사장(왼쪽). 


에이스트릭트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디스트릭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에이스트릭트는 디스트릭트 내 오픈 유닛이기 때문이다. 이성호 대표와 이상진 부사장을 필두로 한 디스트릭트는 70여 명의 구성원으로 조직된 아트테크 팩토리로 다양한 디지털 미디어 기술을 활용해 감각적인 융복합 콘텐츠를 기획해왔다. 실로 국내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 디스트릭트의 존재는 독보적이다. 창업자 고 최은석 대표는 국내 웹 1세대로 눈에 띄는 행보를 이어오다가 이준한 이사와 함께 2004년 디스트릭트 홀딩스를 공동 설립하고 뉴 미디어 디스플레이, 인터페이스와 디지털 콘텐츠를 접목해 새로운 디지털 경험을 이끌어왔다. 주업무인 광고 콘텐츠 외에도 2010년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함께 국내 최초 4D 무대 예술을 선보인 디지로그 사물놀이 ‘죽은 나무 꽃 피우기’를 공개했고, 2011년에는 디스트릭트의 모든 역량과 자본을 투입해 도심형 하이테크 테마파크 ‘4D 라이브 파크’를 오픈했다. 창의적인 비전과 선구적인 행보, 특히 생전에 그가 끊임없이 강조한 ‘수준 높은 결과물에 대한 엄격한 기준’ 등은 현재까지도 디스트릭트의 정신이 되고 있다. “디스트릭트와 비슷한 일을 하는 회사들이 존재해요. 그들과 가장 차별되는 부분은 사내 문화 또는 철학이라고 생각해요. 디스트릭트의 이름이 내포한 의미처럼 엄격한 디자인, 즉 우리가 제작하는 결과물의 수준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것이 그 밑바탕이에요. 이는 최 대표님이 생전에 늘 강조했던 부분이에요. 이러한 레거시가 구성원에게 DNA처럼 존재해요. 커머셜에서 제일 경제적인 것은 받은 예산만큼 제작하고 고객사가 만족하면 끝내는 거겠죠. 하지만 우리는 마음에 들 때까지 작업을 진행해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작업과 그를 위한 숱한 실험이 몸에 배어 있어요. 그게 브랜드의 차이를 만들고 회사의 문화와 철학으로 자리 잡는다고 생각해요.” 

 

퍼블릭 미디어 아트로 선보인 ‘웨이브(WAVE)’.

 

에이스트릭트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이성호 대표다. 본래 회계사였던 그는 군복무를 계기로 2007년 디스트릭트에 합류했고, 이후에도 그곳에 남아 2016년 대표직을 맡는다. 고 최은석 대표가 세상을 떠난 후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고군분투하던 시절을 모두 겪었다. 돈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그것만 하면 크리에이터들을 지킬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저는 크리에이터가 아니에요. 하지만 누구보다 창작자의 감수성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해요. 회사 내 크리에이터들 사이의 요구나 갈등을 조율하고, 비즈니스 관련 문제를 해결할 때는 저처럼 배경이 다른 사람의 역할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한국과 중국에 지사를 둔 디스트릭트는 기업이 의뢰하는 광고 미디어 제작물을 진행하면서 그들의 뜻과 다른 방향으로 결과물이 도출되는 것을 지속적으로 경험해왔다. “고객사가 원하는 대로 예산에 맞춰 진행한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 때가 있어요. 고객사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하죠. 우리 회사에는 커머셜 제작물만 진행하게 하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실력이 좋은 이들이 있어요. 당연히 창작에 대한 갈증도 컸죠. 그렇게 ‘웨이브(WAVE)’가 탄생한 거예요.” 지난 4월 삼성동 코엑스에 등장한 1620㎡ 초대형 파도 작품인 ‘웨이브’는 그들의 기획으로 진행한 공공 미디어 아트다. 도심 한복판에 바다를 끌어들인 순수한 창작 열의는 통했다. 사람들은 착시 현상을 이용해 입체감 있게 구현한 애너모픽 일루전이 만든 초현실적인 세계에 매료됐다. 국제갤러리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예술적 가능성을 엿본다. 새로운 시대에 반응하고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는 아티스트를 찾고 있던 갤러리 측은 4개월 전 그들을 만나 이번 에이스트릭트의 전시를 추진했다. 

 

 광명 동굴의 LED 타워. 

 

에이스트릭트는 작품에 따라 투입되는 인원이 달라지는 오픈 방식으로 운영된다. ‘웨이브’의 경우 모션 디자인 전문가를 주축으로 작업했고 이번 국제갤러리의 작품은 인스톨레이션 아트와 인터랙티브 작업을 하는 멤버들로 구성해 진행했다. 디스트릭트 초기에 합류해 역사를 함께해온 이상진 부사장은 이번 전시 작업에서 크리에이티브 리더로 활약했다. “디스트릭트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찾아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종의 아트 플랫폼이에요. 미디어 파사드를 처음 진행하면 그것이 시초가 되는 것처럼요. 아이폰과 같은 새 디바이스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도 있어요. 퍼스널 디바이스가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갑자기 아이패드가 등장하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건네고 기존에 없던 문화를 창조해가고 싶어요. 그것이 아트 아닐까 생각해요.”   

 

넥센 타이어 R&D 센터 내 설치된 ‘THE INFINITY WALL’(2019).

 

고정된 실체는 없지만 에이스트릭트의 모태인 디스트릭트가 콘텐츠를 제작하는 진정성이나 지향점에 관해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갤러리의 문턱을 넘은 에이스트릭트의 앞으로 행보겠다. 이성호 대표가 말한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부분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을 수용하는 세대의 정신도 달라졌고요. 전통적인 아트 신에서 바라봤을 때는 저희가 선보인 작품이 굉장히 경박하고 싸구려 같다고 생각할 수 있죠. 휴대폰으로 작품을 촬영하지 못하던 시절도 이제는 지나간 듯 보이고요. 대중이 갤러리에서 감상한 것을 소셜 미디어에 업로드해 소통하려고 하죠. 갤러리 본연의 역할이 미디어에 의해 더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코로나19로 미디어 아트의 역할은 더 커질 거예요. 타인과 공유하고 싶을 만큼 큰 감흥을 얻었다면? 직관적으로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마음에 위안을 받은 작품을 선호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저희끼리 예술의 정의를 두고 여전히 갑론을박을 벌인답니다.” 


에이스트릭트가 국제갤러리에서 ‘스태리 비치’를 공개하고 난 후 역시나 아트 신으로부터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순수한 의도에서 출발한 결과물이 공공장소에 설치되었을 때와 갤러리에 전시되었을 때는 큰 차이를 보였다. 단순히 이런 반응이 뒤틀린 시각으로 보이진 않는다. 작가나 미술 관계자들이 질문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고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지금 막 출발한 신진 아트 유닛인 에이스트릭트는 예술이 무엇인지 완벽한 정의를 내리지 못한다. 평생 작업을 하며 예술의 본질에 이르려는 많은 작가가 존재하지 않는가. 첫 개인전에서 이를 언급하는 건 어쩌면 무모하거나 무용한 일일 것이다.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앞으로 만들어가야 할 예술적인 맥락 또한 에이스트릭트의 몫이다. 

 

지난해 성수동 카페 봇을 통해 로봇 회사와 협업해 선보인 영상(2020). 

 

‘웨이브’와 ‘스태리 비치’는 작업에 사용한 기본 툴은 다르지만, 파도라는 유동적인 물성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다. 국내 최고 실력자들의 작업이기에 미디어 디자인에서 이러한 표현이 제일 난도가 높은 것이 아닐까 유추할 수 있다. 실제보다 더욱 생생한 움직임에 따르는 세밀한 표현은 실제로 누가 얼마나 어떻게 공들여 작업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이다. 이상진 부사장으로부터 작업의 양과 소요 시간을 들었다. 파도 영상 1초를 만들기 위해 30장의 이미지를 합치는 렌더링 과정을 개인이 PC로 진행하면 1장당 24시간이 걸린다. 1초에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과 비용 모두를 고려할 때 개인이 진행하기엔 분명 무리가 있어 보인다. 미디어 작업 특성상 수준 높은 기술력과 자본력이 총동원되어야 비로소 원하는 작업을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 미디어 아트의 현실이다.   


이성호 대표는 ‘영원한 자연(Eternal Nature)’을 주제로 1500평 규모의 ‘아르떼 뮤지엄’을 9월 말 제주에 개관한다는 소식을 들려준다. “이터널이라는 단어도 디지털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촬영한 사진은 시간에 따라 빛이 바래지만,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결과물은 재생 도구만 있다면 언제나 영속할 수 있거든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연을 디지털 시각으로 해석해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아, 아르떼 뮤지엄은 에이스트릭트가 아닌 디스트릭트의 결과물이에요.”      

자료 사진(디스트릭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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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양해성(인물) 작품(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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