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해외에서 먼저 더 주목받은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더 주목받으며 세계를 무대 삼아 작업을 펼치는 아티스트들을 만났다. 그들의 성취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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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히 변이하고 진화하는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

“제가 디자인을 업으로 선택하고 계속해서 할 수 있음에 늘 감사해요. 열심히 앞을 향해 전진하는 건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패기와 열정으로 똘똘 뭉친 갓 서른 살의 디자이너가 이런 원숙한 말을 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젊은 나이에 얻은 큰 성취에 취할 법도 한데 말이다. 당황했다. 그러나 인터뷰 말미에 이르렀을 무렵, 그여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에 대한 이야기다.
 

지금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지만 문승지는 제주에서 나고 성인이 될 때까지 그 섬에서 자랐다. 소년 시절, 프로 선수를 꿈꾸며 권투를 했지만 혈소판감소증을 진단받고 큰 수술을 받으며 꿈을 포기해야 했다. 그렇다고 바로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다. 스무 살, 제주를 벗어나고 싶었던 그는 우연히 계원예대에서 100% 면접 전형으로 신입생을 뽑는다는 전단지를 보았다. 태생적으로 역마살을 타고난 문승지에게 제주는 어쩌면 너무 작은 섬이었으리라. 디자이너로서의 삶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졸업 작품이자 해외에서 처음 주목받은 작품 중 하나인 캣 터널 소파.

 

지금은 서울을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문승지. 그의 작품 중 해외에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건 졸업 작품이기도 한 캣 터널 소파(Cat Tunnel Sofa)다. 소파 등받이와 팔걸이 부분에 긴 터널을 설치해 사람이 쉬는 동안 고양이가 자유롭게 드나들며 놀 수 있는 작품이다. “단순히 졸업 작품일 뿐이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나는 세상에 이런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다’란 마음으로 만들었죠.” 탄생하자마자 바로 해외의 주목을 받은 건 아니다. 하지만 당시 학생의 신분을 막 벗어난 그에게 캣 터널 소파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그는 캣 터널 소파를 선보인 경험을 바탕으로 반려동물 가구 브랜드 엠펍(M.pup)을 론칭했다. 브랜드를 운영하는 와중에 자신의 작업을 알리기 위해 밤마다 해외 디자인 매체에 수백 통의 이메일을 보냈다. 얼마 뒤 로이터통신을 비롯해 영국 데일리 메일, 미국 NBC, 일본 마이니치 신문 등에 캣 터널 소파를 포함한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신인 디자이너로서 굉장히 순조로운 출발이었지만 브랜드는 1년 6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원하는 디자인을 마음껏 하기 위해브랜드를 론칭한 건데 미팅, 회계, 운영 등 디자인 외적으로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았어요. 어느 순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지? 지금 이걸 팔아서 돈 벌고 싶은 거야?’라는 의문이 들었고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다르지만 당시엔 사업가와 디자이너를 분리해 생각했고, 사업가가 아닌 디자이너로서 제가 원하는 걸 하고 싶어서 회사를 접었어요.” 큰 빚을 진 채 회사를 정리한 그는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하며 반지하 자취방에서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웠다.

 

코스와 협업해 선보인 포 브라더스 컬렉션. 한 장의 합판으로 버리는 나무조각 없이 제작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해외 매체에 소개된 그의 작품을 본 스웨덴의 패션 브랜드 코스(COS)로부터 협업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단 한 장의 합판으로 낭비되는 나무조각 없이 제작되는 포 브라더스 컬렉션(Four Brothers Collection)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이후 문승지는 서울시, 간송문화재단, 코오롱 래;코드, 데보라립만, 삼성전자 등 국내외 유수 브랜드와 협업하는 스타 디자이너로 차근차근 성장해갔다. 그사이 2017년에는 아티스트 레이블 팀 바이럴스(TeamVirals)도 꾸렸다. “개인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한계를 느꼈어요. 모든 업무를 혼자 처리하다 보니 창작에 필요한 사유할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게 가장 힘들었죠.” 팀 바이럴스는 가구 디자이너인 문승지를 비롯해 건축가, 설치미술가, 포토그래퍼, 플로리스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아티스트들이 소속된 매니지먼트적인 성격의 레이블이다. 소속 매니저들이 아티스트의 창작 외적인 것을 관할해 불필요하게 소모하는 에너지를 최소화하고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있으면 함께 창작물을 만들기도 한다. “팀 바이럴스 안에서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몰라요. 그래서 이름도 어떻게 변이되고 퍼져 나갈지 모르는 바이러스에 착안해 지었죠.” 팀 바이럴스의 탄생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회사를 접은 지난날의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갓 학교를 졸업한 신인 디자이너였던 문승지는 디자인과 사업을 분리해 생각했지만 오늘의 그는 그 둘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다. 디자인의 태생 배경에는 자본주의가 있고, 사업적인 부분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하고 싶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밑받침이 되는 뫼비우스띠 같은 관계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젠 디자인과 사업의 공생하는 관계를 받아들이되 아티스트 레이블이라는 새로운 개념 아래 디자이너가 창작에 몰두할 시간을 확보하는 방법을 찾은 셈이다. 물론 팀 바이럴스의 미래를 쉽사리 예측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런 생각과 방식이 지금 기준에서 유효한 것이지 고정적인 답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문승지는 인터뷰 중 자주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정말 모른다기보단, 지금의 생각을 쉽사리 정의하거나 단언하지 않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은 계속해서 변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체득했기에.

 

청와대는 덴마크 왕세자와 세자비의 한국 방문 때 이코노미컬 체어를 선물로 증정하기도 했다. 

 

팀 바이럴스를 꾸린 뒤 문승지는 생각하고 고민하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그렇다면 요즘의 가장 주된 고민은 무엇일까. “제가 하는 디자인이 좀 더 대중에게 스밀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실 디자인사에서 마스터피스라 평가받는 작품은 모두 대중의 삶 속에 녹아들었거든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보다 쉽게 나의 디자인을 접할 수 있게 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늘 고민해요. 이전에는 개념과 스토리를 알리는 데 집중했다면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은 이런 거예요.” 문승지의 디자인은 좋은 이야기를 디자인에 담아낸다는 뜻의 스토리즘이란 단어로 대변된다. 다양한 키워드가 모여 하나의 문장을 만들 듯 그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채집한 영감을 모아 만든 이야기를 바탕으로 디자인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담은 그의 디자인은 사용자를 만나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문승지는 어떠한 대상에 호기심이 생기면 반드시 그에 대한 한 문장의 답을 찾기 위해 헤맨다. 답을 찾지 못하면 왜 답을 찾지 못했는지 알아야 할 정도로 집요하게 생각을 거미줄처럼 확장시킨다. 최근엔 개념과 스토리를 알리는 것보다 대중에게 친밀하게 다가가는 법을 알아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지만, 그의 디자인 근간을 이루는 스토리즘이 사라진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문승지의 스토리즘 세계는 한층 더 깊고 넓어질 것이란 신호다. 그가 제주도를 벗어나 서울이란 도시에 발을 딛고, 세계라는 더 큰 규모의 무대로 도약했듯이. 

 


디자인을 배우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약 10년 동안 문승지는 많은 변화의 과정을 겪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어떤 것이 있다. “디자인은 사람의 삶과 함께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나오는 디자인은 이 세상에 이로운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이로운 디자인을 하기 위해 더 공부하고 많이 노력할 거고요.” 동물과 공생하는 캣 터널 소파, 재료를 낭비하지 않고 제작되는 포 브라더스 컬렉션, 사용자 편의를 극대화하고 제품의 양산과 유통을 용이하게 만든 이코노미컬 체어(Economical Chair), 버려진 테이크아웃 컵과 이면지를 이용해 만든 화분인 페이퍼 팟(Paper Pot) 등 그의 디자인은 여태까지 여러 방면에서 세상을 이롭게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들은 평생 할까 말까 한 다양하고 스펙터클한 경험을 짧은 시간 안에 해서일까, 그의 답변은 성숙하고 무르익었었다. 하지만 그의 초연함은 경험보다도 그가 디자이너로서 지향하는 방향에서 비롯되었음을 인터뷰의 마지막 답변이 말해주었다. “팀 바이럴스를 만들고 함께 일하며 어느 순간부터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디자이너는 축적이 중요한 직업이에요. 관심이 아닌 진정한 존경은 60~70세는 되어야 받을 수 있죠. 훗날 한국 디자인사를 말할 때 지금 이 시대의 중심에 문승지란 이름이 있었음 좋겠어요. 그래서 당장 유명해지는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나만의 디자인을 진정성 있게 쌓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눈에 보이진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그것이 산을 이루겠죠. 한때는 꾀도 많이 부렸는데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한 후로 꾀 부릴 시간에 차라리 나를 채우는 시간을 보내려 노력해요.”


그와 인터뷰를 마친 순간부터 기사를 쓰기까지 틈날 때마다 하나의 질문이 머릿속에 피어났다. 호기심에 대한 한 문장의 답을 찾기 위해 그가 늘 고군분투했듯 문승지라는 사람에 대한 하나의 답을 찾아본다면 무엇일까. 수많은 문장을 머릿속에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다 보니 결국 하나가 남았다. ‘바이러스처럼 변이하고 진화하는 문승지는 무한하기에 하나의 문장에 가둘 수 없다.’ 물론 이 문장이 그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인지는 나 역시 ‘아직 모르겠다’. 

 

 

 

 

더네이버, 인터뷰,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태구(인물), 팀 바이럴스(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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