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건축사적 해석의 실수가 빚어낸 집

미술사 전공자와 패브릭 장인인 두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건축사적 해석의 실수가 빚어낸 집을 만났다. 고딕 양식을 되살리기 위한 흔적이 역력한 뮌헨 근교의 아파트가 절충주의 스타일로 재탄생한 이야기.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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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세대를 거쳐 취향의 역사가 축적되었다. 고전미를 중시한 집주인의 디자인 의도가 잘 표현된 거실. 그린 벨벳 암체어는 영국 빅토리언 양식의 앤티크, 그 사이에 놓인 서랍장은 19세기 독일 바이에른 스타일의 앤티크, 샹들리에와 골드 프레임의 커피 테이블은 1930년대 빈티지, 정면에 보이는 파티션은 중국 골동품이다. 벽면은 집주인이 존경하는 영국의 전설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데이비드 힉스가 주로 사용하던 파란색으로 칠했다. 

 

독일 뮌헨에서 하이엔드 클래식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독보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커플 얀 호이어(Jan Hoyer)와 톰 호이어 카스트(Tom Hoyer-Kast). 그들이 사는 집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예상치 못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유러피언 앤티크, 동양의 불상, 신비로운 컬러, 고전적인 플라워 패턴, 그리고 기하학적 형태의 모던 조명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국적을 불문한 모든 예술 양식이 뒤섞인 가운데 교차 늑골로 받친 아치 천장이 자아내는 성스러운 분위기는 전율마저 불러일으킨다. 

 

무어리시 스타일의 아치로 벽감을 내고 그 안에 거울을 매립한 거실 벽면. 거울 앞에 놓인 불상은 미얀마에서 구한 것이다. 


“1913년에 태어난 이 집은 당시 대유행이었던 ‘고딕 리바이벌’ 양식을 차용한 역사적인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이에른 고딕 부흥 스타일의 대표 건축물인 뮌헨 시청 건축에 참여한 건축가 한스 북(Hans Woock)이 짓고 소유한 건물로, 이 지역에선 꽤 알려진 집이죠.” 예술사와 역사를 전공한 얀의 설명을 따르면 이 공간은 고딕을 재해석해 만든 건물인 만큼 자유롭게 변형된 모습이 매력적이다. 무어, 고딕, 로마네스크 양식이 공존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좁은 복도에 아치 천장을 만들어 회랑 같은 느낌을 주고, 거실과 같은 큰 공간은 가장자리 부분만 아치 천장을 만들어 클래식함과 모던함이 조화를 이루게 했다. 

 

고딕 양식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복도 천장. 신비로운 느낌이 들도록 천장과 벽면에 칠한 녹색 페인트는 톰 딕슨 디자인의 골드 천장 조명 덕분에 존재감을 드러낸다. 

 

각 공간으로 향하는 복도는 집주인의 취향의 역사를 전시해놓은 갤러리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림과 가구, 소품 모두 두 사람이 어려서부터 모은 것을 취합한 것이다. 대리석 바닥은 1970년대 새롭게 시공한 것으로 추정되며, 집주인은 이를 가리기 위해 카펫을 깔았다고. 오른쪽 아치 입구는 주방과 연결된다.   

 

“거실에는 외부와 통하는 두 개의 문이 있는데, 이 둘은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심지어 문 하나는 매우 좁고 그 높이가 175cm에 불과합니다. 키가 크다면 머리를 부딪힐 수도 있죠. 그런데 이웃한 큰 방에는 완벽한 교차 늑골이 있는 높은 아치형 천장으로 설계했습니다. 어떠한 규칙도 발견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게 만든 공간은 좋게 표현하자면 독특하고,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너무 이상할 뿐이었죠!” 밖에서 보면 실내에 이런 천장이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 모습. 그러나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타나는 아치 천장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우’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천장 아래 펼쳐진 세계 골동품의 향연은 자칫 이 집을 박물관처럼 고루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이건만, 실제 이를 본 사람들은 ‘이처럼 자유로운 감성을 지닌 곳이 또 있을까’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처음에는 고딕 건축미에 놀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에 산재한 다양한 종류의 가구와 장식품을 둘러보며 각자 눈에 들어오는 ‘보물’을 찾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된답니다.” 호이어 커플은 이 집에 들어올 때 벽면 색감을 교체한 것 외에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고, 가구와 소품 역시 각자 오랜 시간 모아온 것을 배치했다.

 

다이닝룸 겸 라이브러리 공간 역시 얀과 톰의 안목으로 엄선한 앤티크 조명과 가구의 조합으로 완성되었다. 파리 아르누보 양식의 샹들리에 아래는 바이에른 앤티크 테이블이 놓여 있고, 테이블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의자는 비엔나 비더마이어 양식 앤티크다. 

 

다이닝룸 겸 라이브러리 공간 한쪽에 편히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마련한 데이베드. 집주인은 계절마다 쿠션과 시트 커버 패브릭을 바꿔가며 분위기를 새롭게 연출한다.  

 

“요즘 시대는 가구나 소품이 너무 쉽게 폐기 처분돼요. 버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면 얼마든지 새롭게 연출해 쓸 수 있는데 말이죠.” 스코틀랜드 에버딘 대학교에서 예술사와 역사를 전공한 얀은 글래스고 크리스티 옥션에서 근무하다 전통 영국 클래식 인테리어 디자인을 배워 디자이너로 변신했고, 앤티크 딜러인 아버지를 둔 톰은 어려서부터 고가구 복원을 도우며 손재주를 키우다 직물 및 벽지 제작 분야 전문가가 되었다. 둘 다 고전 디자인에 깊은 애정을 지닌 만큼 각자 모아온 앤티크도 다양하고 상당한 데다 그 가치도 남달라 집을 꾸미는 데 크게 예산이 들 일이 없었다. 소파와 조명 몇 가지는 그나마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것이란 아름다운 직물로 소파와 조명 전등갓 커버를 바꿔준다는 뜻.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우리 둘은 어느새 ‘가구 보호자’가 된 자신을 발견하곤 해요. 예쁜 안락의자가 거실 어딘가에 있다가 대형 쓰레기장에 버려진다고 생각하면 절로 죄책감이 드니 말입니다.” 

 

고급스럽고 신비로운 느낌을 선사하는 파란색을 모티프로 연출한 거실. 테마 컬러에 맞게 파란색으로 커버한 빈티지 암체어와 앤티크 램프가 골드 패브릭의 커튼을 배경으로 한층 돋보인다.    


얀과 톰은 지난 2013년부터 자신들의 이름을 딴 ‘호이어&카스트(Hoyer & Kast)’ 인테리어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전통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클래식 스타일을 선보이는 그들은 수공예를 기반으로 한 럭셔리 텍스타일, 핸드 프린트 벽지를 사용해 섬세하고 감도 높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손재주가 좋은 톰은 전통 손바느질로 커튼, 베개, 쿠션 등 액세서리를 만드는 장인으로, 취리히에서 활동하는 영국 인테리어 장식가로부터 커튼 헤드를 손바느질로 일일이 감아 만들어 풍성한 입체 주름을 생성해내는 고전 커튼 제작법을 사사했다. 고전 예술사에 대한 지식과 안목이 높은 얀은 골동품과 예술품, 액세서리 컬렉션을 선별하는 작업을 비롯해 프로젝트의 콘셉트를 책임지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저희 역할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어요. 제가 디자인 계획을 이론적으로 풀어낸다면 톰은 이를 기술적으로 풀어내 현실화하죠. 톰은 제가 묘사하는 콘셉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구현하는 파트너고, 그 결과 완벽주의에 가까운 결과물을 도출해냅니다. 제가 붓과 스케치북을 들 때면 톰은 긴장 상태가 되곤 하죠.”

 

복도 한쪽에는 빅토리언 시대에 제작된 화려한 조각 장식의 앤티크 난로를 설치했다. 실제 사용하는 난로로 겨울철 복도를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데 한몫을 한다. 

 

집주인 톰은 주방을 비교적 가까운 과거 무드로 변신시켰다. 80년대 스타일의 주방 가구를 아이스크림 톤으로 리폼하고 50년대를 연상시키는 포마이카 상판 테이블과 스툴을 조합해 레트로 감성으로 연출한 것. 주방 가구 사이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는 원래 이 집에 있던 그대로 보존했다.  

 

호이어 커플이 처음 이 아파트를 보러 왔을 때, 공간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기발한 건축적 특징에 매료되었고 그 고유한 느낌을 지속 가능하게 되살리는 것이 자신들의 책무라 생각했다. 그들의 목표는 여러 세대를 거쳐 보물을 축적한 집을 만드는 것이었고, 갖고 있던 살림을 공간에 자연스럽게 편입시키는 작업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쉽게도 거실 바닥도 전 주인이 새로 깔았고 복도 대리석 바닥 역시 1970년대 개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대리석 바닥은 갈라지고 칙칙해진 것이 아름다운 녹색을 띠기 시작한 시점이라 오히려 그 고풍스러움을 유지하기로 했죠.” 복도와 거실은 각각 짙은 녹색과 블루로 칠했는데, 이는 앤티크 가구가 밝은 벽보다는 어두운 배경에 더 잘 어울린다는 판단에서였다. 톰이 부모님께 물려받은 서랍장, 얀이 에든버러 쓰레기장에서 찾아 복원한 테이블, 그리고 중국 벤치와 병풍은 예상대로 어두운 배경을 통해 빛을 발했다. “향을 피우면 그 연기가 안개처럼 보이고 신비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도 다 배경색 덕분이죠.” 

 

대리석 타일과 블루 페인트 마감으로 단장한 욕실. 넓은 창문의 채광을 살려 푸른 식물을 놓는 것만으로 욕실 인테리어를 세련되게 완성했다. 

 

1980년대 무색무취의 심플한 수납장이 있는 주방은 이 집에서 유일한 ‘최신 스타일’로 변모했다. “솔직히 주방은 저희 심미안에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죠. 하지만 기능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수납장을 버리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라 재미있게 변신시켜보기로 했습니다.” 톰은 수납장을 파스텔 톤 컬러 블록으로 리폼하고 그 옆 벽면에는 바닐라색 타일을 붙였다. 그리고 포마이카 상판의 빈티지 테이블과 스툴을 선택해 주방을 1950년대 미국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복고풍으로 연출했다. “우리는 과거 시대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과거의 개성을 요즘 생활에 적용 가능하게 해석해내는 게 가치 있다 생각합니다.” 

 

늑골이 교차하는 형식의 둥근 천장이 돋보이는 부분에 침대를 배치해 아늑함을 강조한 침실. 천장과 벽면은 본차이나 블루와 화이트로 칠했다.  

 

집주인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얀 호이어(Jan Hoyer)와 톰 호이어 카스트(Tom Hoyer-Kast). 예술사와 역사를 전공한 얀 호이어와 앤티크 딜러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고가구 복원을 했던 톰 호이어 카스트는 고전 텍스타일과 골동품을 활용한 인테리어 디자인에 전문성과 열정이 남다르다. 


톰과 얀은 벽지, 패브릭 또는 신선한 컬러를 잘 활용한다면 누구나 기존 공간을 색다르게 변신시킬 수 있다 생각한다. 특히 패브릭을 잘 다루는 톰은 쿠션이야말로 쉽고 빠르게 분위기를 전환시키는 요소라 말한다. “소파와 의자, 침대 등 원하는 곳에 자유자재로 컬러와 패턴의 변화를 선사하는 매개체가 쿠션이죠 저는 틈날 때마다 자투리 천을 꿰매서 언젠가 유용하게 쓸 쿠션을 만들곤 합니다.” 둘이 사는 공간, 그것도 거실에만 15개가 넘는 쿠션이 있다는 게 예사롭지 않았다. 호이어 커플이 궁극적으로 그리는 이상적인 인테리어는 온전히 패브릭만으로 방 하나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우리는 거의 1년에 한 번 이사를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여기에 땀 흘리고 정성을 쏟는 게 더 나은 투자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WRITER LEE JUNG 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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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Daniel Schafer(Photof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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