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LP레코드의 부활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CD와 MP3 그리고 최근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LP 레코드가 지금 가장 트렌디한 음반 매체로 부활했다.

20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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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증법적으로 변화한다. 날마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신제품이 출시됐다는 기사가 쏟아지지만, 한편에서는 복고풍 카페와 레스토랑에 열광한다. 정반합의 원리에 따라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할수록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아날로그로 회귀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이다. 시대의 부름에 따라 소환된 아날로그 감성은 4050세대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2030세대에게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으로 다가가며 이종교합해 ‘뉴트로(Newtro)’라는 트렌드를 탄생시켰다. 뉴트로는 요즘 우리의 생활 속 거의 모든 영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음반 시장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이젠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원을 소비하지만 한편에서는 한정판으로 출시된 LP 레코드 앨범을 구하기 위해 열을 올린다.


1분에 33과 1/3회 회전하는 검은 원형 판, LP 레코드는 1931년 미국 RCA사가 발명하고 1948년 미국 콜럼비아사가 바이닐 형태로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상용화되었다. 한 판의 저장 시간이 3~4분가량으로 1곡만 저장할 수 있던 기존의 레코드 방식인 SP와 달리 저장 시간은 22분 30초로 늘고 스테레오 녹음 기술이 상용화되면서 그 위상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그러다 1963년 베를린에서 열린 제23회 독일방송박람회에서 새로운 녹음 매체인 카세트테이프가 등장하며 견고했던 LP 레코드의 지위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1970년대까지는 건재했다. 그러나 1980년대 디지털 기술을 바탕으로 한 CD의 탄생으로 LP 레코드 시장은 급속도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후 등장한 MP3 음원 다운로드 시스템, 그리고 최근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LP 레코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해 보였다.

 


LP 레코드가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건 21세기에 들어서면서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에 따르면 전 세계 LP 판매량은 2008년 500만 장에서 2015년 3200만 장으로 6배 이상 성장했다. 그리고 2019년 닐스사운드스캔이 발표한 시장 동향 조사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지난 한 해 팔린 LP 레코드의 양은 1884만 장이다. 집계를 시작한 1991년 이래 최대치다. 우리나라 역시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LP를 취급하는 레코드점과 LP 바의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5년 현대카드는 1만 장의 바이닐(LP 레코드) 컬렉션과 음악에 대한 모든 것을 만나볼 수 있는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를 오픈했고, 2017년 파크 하얏트 서울의 더 팀버 하우스가 바이닐 뮤직 바로 리뉴얼 오픈하며 LP 레코드에 대한 인기가 비주류의 영역이 아님을 증명했다. 마장뮤직앤픽처스에서는 2017년 LP 공장을 설립하며 국내 LP 레코드 제작의 부활을 알렸다. 국내 마지막 LP 레코드 제작 회사였던 서라벌레코드가 2004년 문을 닫은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사실 LP 레코드 시장이 아무리 침체되었다 해도 꾸준한 수요는 있었다. 일명 ‘LP 레코드 덕후’는 늘 존재했고 그들의 소비가 있었기 때문. 그러나 마니아 대부분의 연령대가 LP 레코드를 경험해본 적 있는 4050세대였다면 오늘날 부흥의 중심에는 2030세대가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전문가들이 꼽은 LP 레코드 열풍의 가장 큰 요인은 역시나 앞서 말한 뉴트로 열풍이다. 2030세대에서는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요소로 LP 레코드를 소비한다는 것. 그래서 소비 양상도 기존 마니아층이 초판본을 찾아 중고 레코드 숍과 이베이 등을 전전하는 것과 달리 트렌드로서 LP 레코드를 소비하는 젊은 세대는 신상 MD 상품처럼 LP 레코드를 소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소비 트렌드에 부응해 관록 있는 가수부터 아이돌, 인디밴드, 그리고 음반사까지 일종의 굿즈처럼 LP 레코드를 발매하고 있다. 올 상반기만 해도 백예린 정규 1집 한정판 LP 레코드 <Every letter I sent you.>, 김완선 한정판 LP 레코드 <2020 김완선>, 신승훈 데뷔 30주년 한정판 LP 레코드 <페르소나>, 송가인 한정판 스페셜 LP 레코드 <佳人> 등 셀 수 없이 많은 LP 레코드 앨범이 발매됐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인 8월, 유니버설뮤직은 컬러드 바이닐 캠페인을 통해 전설적인 아티스트들의 한정판 컬러 LP 레코드 앨범 19종을 한 달간 한남동의 바이닐앤플라스틱에서 판매하고, 방탄소년단은 미국 MD 온라인 숍을 통해 8월 21일 발표한 새로운 싱글 <다이너마이트>의 LP 레코드와 카세트테이프 버전 판매를 개시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뉴트로 열풍으로 인한 인기라면 왜 CD는 부활하지 못한 것일까?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끈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수지가 이제훈에게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 흘러 나오는 이어폰 한쪽을 건네는 장면은 CD를 경험한 적 있는 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어린 세대들에겐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으로 다가가며 영화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CD 역시 30대까지는 아니더라도 1020세대가 뉴트로 열풍에 따라 소비하기에 충분한 매력을 지녔다. 이에 대해 더 팀버 하우스의 원정현 매니저와 DJ팀 소속의 DJ JINBO는 이렇게 의견을 밝혔다. “객관적으로 LP 레코드는 무손실 디지털 음원, 그리고 CD에 비해 음질은 떨어져요. 하지만 아름다움은 과학적인 스펙과 직결되지 않죠. LP 레코드로 연주되는 음악에는 ‘인간적 손길’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무손실 디지털 음원 및 CD와는 차별됩니다.” 버튼 하나로 플레이할 수 있는 CD와 달리 바늘을 맞춰 재생해야 하는 번거로움, 지지직거리는 잡음, 휴대하기 힘든 커다란 크기. 이 모든 것은 LP 레코드가 사양길을 걷게 만든 요소였다. 하지만 LP 레코드에서 발생하는 잡음은 이제 하나의 음악적 요소로 취급받고(의도적으로 음질을 낮추고 잡음과 백색 소음을 미학적 요소로 사용하는 음악 장르인 로파이(Lo-fi)가 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커다란 크기의 케이스는 공간을 장식하는 오브제 역할을 해낸다. 원하는 음악을 선택해서 재생할 수 없다는 우연성과 불완전성이 오히려 ‘아날로그의 매력’이라 칭해지며 LP 레코드를 부활할 수 있게 만든 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아날로그의 매력은 마니아층은 물론 트렌드로서 LP 레코드를 소비하는 2030세대에까지 유효하다.


얼마 전 사무실로 한 통의 엽서 봉투가 도착했다. 신입 에디터 시절 존재한 애독자 엽서가 없어진 이후 사무실로 처음 배송된 모르는 이의 엽서였다. 안에는 보낸 이가 직접 찍어 인화한 사진 12장이 들어 있었고, 봉투 귀퉁이에는 기사를 잘 읽고 있다는 짧은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이 엽서를 보낸 이는 분명 내게 메일을 쓸 수도 있었다. 번거롭게 사진을 인화해 봉투에 넣는 것보다 버튼 한 번으로 파일을 첨부하고, 펜을 꾹꾹 눌러가며 글을 적는 것보다 타이핑하는 것이 훨씬 덜 수고로웠을 것이다.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기 힘든 우편보다 수신 확인 기능이 있는 메일로 보내는 편이 마음도 편했으리라. 그러나 전달되는 감정은 분명 다르다. 아마 메일이었다면 이런 메일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이미 까마득하게 잊었을 것이다. LP 레코드를 소비하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터치 한 번으로 음악이 재생되는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는 음악을 듣는 것만이 감상의 행위 안에 포함된다. 그러나 다양한 LP 레코드 앨범들 사이에서 원하는 앨범을 골라내고, 어떠한 곡이 재생될지 모른 채 바늘을 LP 레코드 판 위에 올리는 행위는 그 과정 자체가 감상의 영역에 포함된다. 우연성과 불완전성이 만들어내는 미학을 받아들이는 것, 과정의 수고스러움까지 온전히 즐기는 것. 디지털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아날로그의 매력과 감동은 그런 거다.    

Advice 원정현, DJ JINBO(더 팀버 하우스)
참고도서 <레코드의 비밀> (곽영호), <음반의 역사> (헤르베르트 하프너), <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드 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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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Shutter 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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