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이런 삶의 기록

사진작가 하시시박이 네 번째 개인전 <Casual Pieces>를 발표했다. 배우 봉태규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그리고 본업인 사진작가로 그 모든 역할을 껴안으며 채집한 장면들이다. 일상에서 수시로 카메라를 드는 그의 꾸밈없고 자연스러운 제스처로 쌓아온 이미지 기록과 박원지의 삶에 대하여.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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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과 팬츠는 르메르, 슈즈는 메종 마르지엘라.  

 

<캐주얼 피스>라는 전시 제목을 2013년 국내  첫 번째 개인전부터 써왔어요. 줄곧 같은 제목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 사진은 어떤 주제를 정한 후 작업한 것이 아니에요. 일상의 조각조각이 모여 하나의 덩어리가 된 느낌이 강해서, 그와 관련된 제목을 찾다가 클래식 음악에서 교향곡이나 협주곡과 달리 규모가 작은 곡을 소품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작업하는 방식과 잘 맞는 제목이라고 판단했어요. 


‘캐주얼’이라는 단어도 좋아할 듯해요. 영미권에서 나고 자란 친구에게 물어봤어요. ‘캐주얼 피스’라는 단어가 너에겐 어떤 느낌을 주냐고. 음악에서 쓰는 용어인 것은 알겠는데, “캐주얼한 옷 한 벌 정도?”라는 뜻이 더 강하게 느껴진대요. 내 일상 가까이에 붙어 있는 느낌을 준다고요. 그 말을 듣고 확신을 가졌죠. 

 

이번이 4번째 전시예요. 정해놓은 주제는 없어도 전시마다 색깔은 달라 보여요. 저는 전시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첫 번째 개인전은 갤러리 팩토리에서 열렸어요. 전시장이 크지 않아도 빛이 많이 들어왔죠. 두 번째는 층고가 굉장히 높고 빛은 전혀 들어오지 않는 가나아트의 창고였고. 세 번째는 롯데백화점 내의 갤러리였어요. 전시 공간이 결정되면, 평소 틈틈이 촬영해둔 사진을 펼쳐놓고 공간의 특성에 맞춰 작품을 선택해요. 사실 이번 라이카 스토어 청담점에서 진행한 개인전은 공간 특성상 딱히 큐레이팅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에요.   

 

셔터를 누를 때 특별한 감흥을 선사했던 사진. 시하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뭉클한 감정이 들었던 밤하늘 사진이다.  


그간 전시해온 작품에 변화가 있다면? 제 사진에서 보이는 미묘한 변화들은 저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인 듯해요. 이전과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피사체가 분명해졌다는 거예요. ‘가족’이라는. 개인전에 처음 등장한 피사체예요.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어떻게 촬영이 진행된 건가요?  개인적으로 가족 여행을 계획하던 차에 책을 구상했어요. 핀란드와 스웨덴에서 약 한 달간 여행하며 남편인 태규 씨가 글을 쓰고, 저는 사진을 찍기로 했죠. 남편이 어떤 글을 쓰고 제가 어떤 사진을 찍을지 서로 모르는 상태였어요. 그렇게 나온 결과물을 엮어 책 <Full Moon Aurora>를 냈고, 이번에 라이카 측으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아 네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된 거죠. 


화보 사이사이에 트레이싱지를 삽입해 글을 프린트한 책의 구성이 독특했어요. 글과 사진을 분리해서 보거나, 겹쳐서 볼 수 있는 방식이 마치 각자의 영역이 독립적으로 떨어졌다가 합쳐지는 듯한 느낌을 줬거든요. 보통의 여행 책처럼 한 페이지 안에 사진과 글이 함께하는 구성이 아니길 바랐어요. 결과적으로 아들 시하와의 대화와 제 사진이 장을 달리한 가족 동화가 되었어요.

 

작가가 여행 중에 포착한 일상의 모습은 평범하면서도 따뜻하다. 


둘째 본비까지 함께한 여행이 쉽지 않았겠죠. 여행과 육아에 촬영까지 병행하는 스케줄이 어떻게 가능했나요? 사실 아이들이 잘 버텨주다가 여행 말미에 시하가 먼저 극심한 감기를 앓았어요. 스웨덴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못 보고 숙소와 놀이터를 오갔죠. 보통 낮엔 육아를 하고 밤에 애들을 재운 후 촬영하러 나갔어요.  


그런 엄마의 고군분투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진이 무척 예쁘고 고요해요. 오로라도 담겼고. 아이가 있으면 계획이 무의미하잖아요. 아이들이 잠든 밤에 오로라 투어 예약을 한 것 말고는 사실 계획한 촬영 일정이 없어요. 오로라 투어 또한 비용이 드는 문제라서 여러 날 나서기가 부담되었죠. 딱 하루 투어를 예약한 저에게 남편이 하루 더 예약하라고 권하더라고요. 기상 상황이 어떨지 모르니까. 만약 첫날 운 좋게 오로라를 촬영하면, 둘째 날엔 자기가 보러 가도 되니 괜찮다고. 아니나 다를까, 첫날엔 눈이 많이 내렸어요. 눈 오는 새까만 밤에는 포커스를 잡을 수도 없어서 인공적으로 빛을 쏘며 촬영했는데, 그 빛이 새어 들어간 사진이 남았죠. 두 번째 투어에서는 다행히 오로라를 제대로 만나 촬영할 수 있었어요.  


전시장에 작품을 걸고 난 후의 소회를 들려주세요. 무척 떨렸지만, 한편으로 부끄러웠죠. 남편 앞에서 자신 없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어요. 그런 저를 보고 그가 정색하며 독려했어요. 네가 그럴 때가 아니라고. 사명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 어떻게 작업을 할지 생각하라고요(웃음).   

 

니트 베스트는 8 by Yooks. 


전시를 하는 작가에게 아쉬움은 늘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보다 배우의 아내 위치에서 느끼는 조심스러운 감정은 없나요? 딱히 그렇진 않아요. 남편은 본래 제가 가진 생각이나 언행을 자기를 위해 거를 필요는 없다, 절대로 그러지 말라고 결혼 초기부터 당부했어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제 의사를 표현 못한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이젠 좀 더 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해요.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요. 


어떤 부분에서요? 작가로, 여성으로, 워킹맘으로 요구되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연예인의 아내에게 요구되는 부분도 있고. 그런데 저는 크게 개의치 않아요. 만약 제가 의식했더라면 소셜 미디어로 제 일상을 공개하거나 이렇게 카메라 앞에 서는 일도 어려웠을 거예요. 본래 제 모습과 생각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어요. 


대중에게 공개된 배우와의 러브 스토리가 보통은 아니었죠. 남편과 단 두 번째 만남에서 프러포즈를 받았고 얼마 되지 않아 엄마가 되었어요. 사실 무척 짧은 기간에 이뤄진 운명 같은 변화가 벅찼을 듯한데요? 사실 과거의 저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아이를 갖는다는 것도 상상하지 못했죠. 모든 것에 회의적이던 시기에 남편을 만났어요. 처음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도 “이제 어디로 가서 살까 고민하면서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얘기를 했으니까. 

 

그런 생각이었다면, 여러 가지 역할을 해내야 하는 결혼 생활을 너무 일찍 시작한 건 아닐까요? 음… 그 반대예요.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제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저는 더 깊은 늪에 빠졌을 거예요(웃음). 남편은 저의 굉장한 서포터예요. 정신적, 물리적, 현실적으로 제가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줬어요. 첫째를 출산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순간이 저에게도 찾아왔어요. 결혼 발표 후 일이 뚝 끊겼고 아기까지 낳고 나니 이전에 제가 일궈놓은 것들을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죠. 제 사진을 다른 포토그래퍼의 사진과 비교하기도 하고… 잡지는 들추지도 못하겠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었어요. 그때 남편이 저에게 얘기했죠. “네가 지금 이렇게 쌓는 시간이 너를 특별하게 해줄 거야. 아이 둘을 낳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바라보는 너의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어.” 그 생활을 경험해보지 않은 비슷한 나이대의 사진가들과는 분명 다를 거라는 말이 큰 힘이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의 엄마는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만으로도 무척 바빠요. 일을 병행하면서 예민해지는 순간이 자주 찾아오지 않나요? 집 2층에 작업 공간이 있지만, 1층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 “엄마~” 하고 울면서 다다다다 계단을 오르는 소리 등 모든 상황을 귀로 들어요. 제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예민한 상황이 펼쳐지는데,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모니터를 봐야죠. 아이도 보고(웃음). 예전엔 남편에게 예민하게 굴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냥 물어봐요. 서로 말을 하면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나오니까. 그 편이 좋아요. 


포토그래퍼가 된 결정적 계기가 있나요? 영화를 연습할 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혼자 영화를 찍어본다는 것이 쉽지 않으니까. 제가 생각한 영상을 재현해보고 싶어서 35mm 필름 카메라로 영화 이미지를 찍었죠. 영화 작업을 그만뒀는데, 당시 제 블로그에 올린 사진을 영국 잡지사에서 보고 연락이 왔어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래서 보통의 사진들과 느낌이 달랐군요. 출발이 달랐으니. 무엇이 달랐을까,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있어요. 결정적으로 프레임 차이도 있었어요. 영화는 가로 프레임이잖아요. 세로가 없어요. 가로가 아닌 세로 프레임 촬영이 어색해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활동 초기에 많이 했던 아이돌 앨범 커버 작업도 정사각형이라 괜찮았는데, 잡지 촬영은 세로잖아요. 가로에서 세로 프레임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저에게는 큰 일이었죠. 

 

재킷과 셔츠는 문 초이. 


전공이었던 영화를 포기한 이유가 있어요? 석사 과정으로 영화연출 전공을 택해 유학을 갔는데, 솔직히 반신반의했어요. 과연 내가 영화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장편 영화를 만들 수 없다는 판단이 섰고, 학교를 그만뒀죠. 제 성격 때문이에요. 저는 의사 결정이 빠르고 결과물을 도출한 후 바로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는 스타일인 데 반해 영화는 호흡이 너무 길죠. 또 제가 일일이 컨트롤할 수 없는 제작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심했어요. 반신반의한 이유는 자신감이 없던 것인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결국 핑계였더라고요. 내 자신이 절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과거엔 예술에 대한 동경이 있었겠죠? 갈망해온 창작의 세계가 변화를 겪진 않았나요? 변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원한 대로 온 느낌이에요. 사실 원하는 건 딱 하나였어요. “사진으로 먹고살았으면 좋겠다”고. 그게 다였어요. 아주 오래전 타 매체에서 인터뷰한 동영상에서도 말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순수 예술 쪽에 더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요? 아니죠. 영화는 지극히 커머셜 범주 안에 있는 거니까. 그런데 당시 제가 제작한 영화를 극장이 아닌 갤러리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영상 설치 작업에도 관심이 있었고. 지금 돌이켜보면 모호한 경계에 서 있었던 듯해요. 


습작처럼 만든 단편 영화가 있어요? 어떤 느낌이에요? 제 사진들과 대체로 비슷해요.


현실에서처럼 로맨틱한 스토리는 없었나요? 전혀 아니었어요. 판타지가 있었고, 사회적 메시지도 짙은. 

 

시하가 감기를 앓았던 스웨덴에서 포착한 아침 풍경. 의자에 앉아 있는 남편과 시하에게 딸 본비가 다가온 장면이다. 

 

사람들은 앨범 재킷 작업이나 개인 사진에서 하시시박의 스타일이 있다고 말하죠. 과거엔 이중노출 기법을 자주 사용했는데, 요즘은 어때요? 음. 요즘은 그런 기법을 쓰지 않아요. 과거에는 제가 경험하는 것들이 계획이나 동선 안에 있지 않았어요. 20~30대 때는 무작위로 충돌하는 것과 이미지가 겹치는 것이 재미있었죠. 지금은 굉장히 정형화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레이어가 겹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원하는 이미지가 명확해졌다는 거네요? 그렇죠. 


이제까지 촬영한 사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작업이 있나요? 음. 지금까지는 이번에 전시한 사진 중에 나무 꼭대기가 담긴 밤하늘 사진이에요. 하얀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향해 셔터를 누를 때 어떤 감정이 확 몰려왔어요. 그런 경우가 흔치 않거든요. 셔터를 누를 때 이 사진은 시하에게 물려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던 것 같아요. 과장해서 이야기하자면, 당시 숙소에서 자고 있는 시하의 꿈속 장면이라고 해야 할까. 설명할 수 없는 이끌림이 있었어요. 뭉클하고 감동적인. 그런데 작품전을 보러 온 분들이 유독 그 사진을 비슷한 느낌으로 좋다고 해서 제 개인 감정이 사진으로 전달되는구나 느꼈죠. 신기했어요.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빛 가득 먹은 흑백 사진도 기억에 남아요. 지난 여행 중 또 다른 미션이 있었는데 남편 에세이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의 커버 사진을 촬영해야 했어요. 아이디어대로 촬영하고 보니 생각만큼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시하가 내내 아팠던 스웨덴에서의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편이 둘째를 안은 모습이 책 커버가 되었죠. 전시장에 걸린 사진에는 본비가 아빠에게 기어와 안아달라고 팔을 벌린 모습이 담겨 있어요. 

 

본래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 느낌이 좋아 디지털카메라와 병행해오다가 최근 라이카 SL을 사용하고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완벽한 도구라고 작가는 말한다. 


앞으로도 뭘 찍고 싶으세요? 사실 없어요. 구체적으로 뭔가가 있지 않아요. 


자신의 사진에 관해 기억에 남는 누군가의 표현이 있나요?  최근 있었어요. 모 기업과 일하다가 관계자가 제 사진을 “참 친근하면서도 이국적이다”라고 표현해주셨어요. 그 말이 칭찬처럼 들렸어요. 지금 전시를 비주얼 아티스트들에게 보여준 적도 있는데 “선이 동양적이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좋아요. 


거창하게 계획해서 사는 분은 아니라고 해도 한 10년 뒤 본인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나요?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운동을 지금보다 많이 해서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 다른 하나는 더 먼 미래에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아이들 있는 곳으로 카메라를 들고 가는 거예요. “엄마 나 어디에 있는데 여기로 올래?”라는 전화를 받고. 여행지에서 만나는 것이 로망이에요. 


말은 쉽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죠? 네. 일단 아이들이 독립적이어야 하죠.  


17세 때 혼자 간 인도 여행은 여전히 회자되고 있어요. ‘하시시’라는 이름이 그곳 아이들로부터 나왔으니까. 궁금했어요.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했는지. 우선 아빠는 반대가 심했고, 엄마는 저에게 “나는 우리 첫째 딸을 믿어”라고 하셨죠. 그때도 인도는 위험하긴 했거든요. 이제 와 생각하면 두 분 모두 불교 철학에 관심을 두고 오래 공부하신 것이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지금 드는 걱정 중 하나는 아이들이 저처럼 17세에 혼자 인도에 간다고 하면 어쩌나 싶어요. 시하는 조심성이 많은 스타일이라 그러지 않을 듯한데 딸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거든요. 


보내실 거예요? 아니요. 절대 못 보낼 거 같아요. (웃음).    

류경윤 Stylist 임진 Hair&Makeup 이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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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류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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