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여름 영감

작가의 작품에서 여름은 어떤 의미와 심상의 계절일까. 여름이라는 계절이 있어 표현 가능했던 작품들. 여름의 표면적인 모습 아래 내포된 의미를 새겨본다.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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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 the Naturalist, Digital C-print 2007, 100×125cm

 

그들의 여행
김옥선

바다를 향해 나신으로 해변에 앉은 남자가 있는 풍경은 그가 누구인지 알기 전까지는 보통의 휴양지 모습으로 보인다.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을 찾아 제주에 머무는 사람들. ‘보통’에서 벗어난 ‘다름’을 유달리 경계하는 사회에서 ‘우리’의 눈에 그들은 이방인이다. 역사적 사회적인 이유로 주류에서 벗어난 삶과 존재를 작업의 대상으로 다뤄온 김옥선 작가는 제주에 머무는 이방인을 포착한다. 과거 조선 땅에 표류한 하멜의 삶에 그들의 존재를 투영해 <함일의 배 Hamel’s Boat> 연작을 완성했다. 사실 그들은 14년간 조선에서 억류된 삶을 산 과거의 이방인과는 다르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이국에서 삶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론 다른 세계로의 탈출을 꿈꾼다. 이 땅에서는 이방인이지만 그들에게는 자유로움과 희망이 있다. 작가는 이후 제주의 야자수들을 촬영한 연작 <The Shining Things>(2014)을 발표한다. 그로서 <함일의 배> 시리즈에 중첩된 의미를 더욱 확장했다. 

 

 

Mendrami, 2018, Oil on Linen, 130×162cm

 

끝나지 않은 여름꽃
김지원

제법 두툼한 두께, 결코 약하지 않은 골격 여기에 벨벳처럼 부드러움과 까슬함이 공존하는 질감. 엄지와 검지로 누르면 사이사이 작은 씨들이 후두둑 떨어지는 기이한 경험. 맨드라미와 마주한 어느 여름 한낮의 기억이다. 일상의 풍경과 사물을 그려온 김지원 작가에게 맨드라미는 가장 긴 호흡으로 다루고 있는 대상이다. 7~8월 빨갛고 푸른 보색 대비가 분명해지며 만개하는 모습부터 색과 수분이 빠지고 앙상한 골격을 드러내는 초겨울의 모습까지 작가는 맨드라미를 수없이 그리며 다양한 빛깔의 컬러와 페인팅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맨드라미는 보통 여름의 화려함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작업실 옆 텃밭을 채운 맨드라미와 오랜 시간을 함께 견디며 붓을 든 작가는 여름이 지나고 서리 맞은 맨드라미의 모습에 애착을 둔다. 그의 맨드라미 연작을 보면 맨드라미가 이토록 많은 표현과 사유를 이끌어내는 존재인가 싶어 다시 보게 된다. 끝나도 끝나지 않는 꽃이다.  

 

 

Le Banquet, 1978, Fresson Print, 60×60cm

 

여름방학이라는 노스탤지어
베르나르 포콩

‘향연’은 1978년 사진 작가 베르나르 포콩이 발표한 연작 <여름방학 Les Grandes Vacances> 중 하나다. 이 작품은 작가가 어린 시절  방학을 맞아 친구들과 파티를 여는 장면을 회상하며 고향인 프랑스 프로방스 일대에서 진행한 연출 사진이다. 이 작품이 탄생한 것은 작가가 우연히 낡은 마네킹을 마주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프랑스 전역에서 수집한 마네킹으로 기억에 남아 있는 유년의 여름을 소환한 것이다. 이 연작은 마네킹이 등장했다는 것과 미장센 포토의 개념을 사진 역사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순을 넘긴 작가의 필모그래피에는 한동안 카메라를 들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이후 1997년부터 2005년까지 25개국을 돌며 세계 각국의 아이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주고 사진을 찍게 한 프로젝트 ‘내 청춘의 가장 아름다운 날’을 진행한 바 있다. 유년의 경험과 기억은 작가에겐 인생을 관통하는 힘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Fishing with Grandpa, 2018 

 

낚시 고요
에릭 요한슨

머릿속 상상을 현실로 재현하는 사진작가 에릭 요한슨. 르네 마그리트와 에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작가의 사진은 초현실적인 기묘함으로 가득 차 있다. 철저한 기획 아래 촬영과 후반 작업으로 탄생하는 사진은 작품의 모티프와 내러티브도 재미있지만, 무엇보다 리터칭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된 장면이 실제 같다고 믿게 되는 지점이 흥미롭다. ‘Fishing with Grandpa’는 최근 그가 발표한 작품 중 그나마 현실에서 한 번쯤 봄직한 장면으로 연출된 사진이다. 해가 져 어슴푸레한 호수에서 할아버지와 손자가 낚시한 고기를 불에 굽고 있는 장면은 여름 저녁 나절의 동화를 건넨다. 실제 낚시 후 배 안에서 모닥불을 피우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어떤가. 불가능한 것이 없는 그의 사진을 통해 가능하다고 믿고 싶을 만큼 낭만적이지 않은가.  

 

 

Watermelon, 2013, Archival Pigment Print, 129×86cm 

 

어둠의 수박 서리
조습

수박 서리는 밤에 이뤄진다. 아이들의 귀여운 장난쯤으로 여겨지는 한여름 밤의 해프닝이다. 그런데 작가는 산 자가 아닌 죽은 자들을 깨워 빨갛게 잘 익은 수박 앞으로 불러모은다. 그들은 육신은 사라졌어도 결코 죽지 않고 여전히 현재를 사는 사람을 지배하는 과거의 혼령들이다. 수박은 한국 근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의 장면을 재해석하거나 비판적인 시각으로 비틀고 해학적으로 연출 사진을 발표해온 조습 작가가 2013년 <일식> 전시에서 공개한 작품이다. 남과 북의 이념이 상충하는 비무장 지대에서 만난 혼령들의 이야기는 작가의 상상으로 해석해 재구성된 판타지 작품이다. 지금은 여러모로 가능하지 않아 점점 잊혀져가는 수박 서리. 작가와 친구들이 직접 유령처럼 배회하며 떠도는 인물로 등장한 장면은 정겨우면서도 오싹하다. 작가가 바라본 지금의 현실처럼. 

 

 

Gracious Sea, 2020, C-Print, 100×150cm  

 

내게, 바다
김태균

바다의 푸른빛이 어찌 한 가지일까. 바다는 매일 다르고 하루 한시도 같은 적이 없다. 2004년부터 줄곧 바다를 촬영해온 김태균 작가의 말이다. 그는 늘 강원도 고성군 대진 앞바다만 바라보고 찍는다. 이순을 넘긴 작가는 여행자의 흔적이 없는 새벽녘 동해 바다와 마주한 채 그 모습을 수없이 찍고 프레임에 담는다. 기상 상태에 따라 때로는 거친 모습도 보여주지만 소란하게 요동을 친다 해도 다시 번잡하지 않고 담담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다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한곳에 살았다는 작가의 개인사와 성향을 들여다보면, 젊은 시절 광고 사진을 업으로 삼은 그가 종국에 바다라는 피사체에 안착하고 20년 가까이 오직 대진 앞바다만 고집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찾을 때마다 바다는 늘 달랐지만, 결국 블루 안에 머무는 바다는 그를 닮았다. 그의 신작은 오는 6월 12일 J&S 아트 프로젝트에서 만날 수 있다.   

 

 

Pian 2011_001, 2017, Print on Matte Paper, 120×70cm 

 

피안의 세계
김용호

“형식은 본질의 표면이나 진실은 보이는 것 너머에 있다”고 말하는 김용호 사진작가는 오랫동안사진가로 활동하면서 사물을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보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같은 사물이라고 해도 관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것이 된다. 무더운 여름에 줄기가 굵게 뻗어 자라고 둥근 잎 또한 넓게 퍼지는 연잎들의 모습을 작가는 물속에서 바라본다. 햇빛을 위에서 받은 투명한 연잎은 작가를 전혀 다른 세계로 초대한다. 작가는 스킨스쿠버 장비를 갖추고 물속에 들어가 낯설면서도 익숙한 연잎 아래의 세상을 담는다. 그 모습은 복잡했던 내면의 본질이 그대로 표현된 것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 여름 한철 보통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짧은 휴가. 이 작품은 가만히 누워 피안(彼岸)을 꿈꾸는 다른 세상의 나를 만나는 힐링의 시간을 선사한다.   

 


Pool and the Sea, 2017, Lambda Print with Wood Frame, (left) 101.6×179.7cm (right) 101.6×69.2cm

 

People-Singapore, 2011. lambda print/diasec, 52.07 x 190.5(top), 44.45 x 190.5cm (bottom)

 

극대화된 여름 판타지
임상빈

인공의 푸른 수영장은 여름이라는 계절을 앞둔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진행하는 임상빈 작가의 작품에는 우리가 실제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각 정보를 담고 있다. 대상이나 풍경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고 이를 평면으로 옮긴 디지털 콜라주 방식은 눈으로 보이는 풍경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실제보다 과장되고 왜곡된 이미지다. 실제와 허구 사이에 선 작가의 고민은 싱가포르의 멋진 수영장을 과감히 가로 프레임으로 나누고, 많은 사람들이 휴양을 즐기는 바다와 접한 수영장 풍경을 서로 다른 크기와 규격의 패널로 나눠 구성한 작품으로 완성한다. 덕분에 감상하는 이들은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장면과 장면 사이의 공백에서 서성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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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 한지희PHOTO : 더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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