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팬데믹 시대 속 연대

조난 상황에서 혼자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생존 확률은 높아진다. 질병의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오로민경 작가의 작품에서 발견했다.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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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의 편지’, 전시장 입구의 서신, 2019, 사진: 김경만 

 

AI와 자율주행, ‘4차 산업혁명’의 시대. ‘혁명’이라는 말이 동원될 만큼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술이 도래한 모양이다. 하지만 첨단 기술이 무색하게 우리는 어떤 현대 의학으로도 손쓰지 못하는 감염병 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병에 걸린다는 것이 ‘정상적 건강함’과 멀리 떨어진 비정상적 상태가 아니라, 갑자기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체득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병을 ‘몸 상태’로 보는 데 멈추지 않는다. 환자를 구분하고 이상한 소문을 나르며 불안을 더한다. 그것은 공포가 되고 어떤 집단에는 낙인이 된다. SF 영화 같은 미래적 환경도, 조선인이 우물에 맹독을 풀었다는 괴소문도 모두 오늘의 풍경이다. 사회와 거리를 두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문다. ‘생태계는 어떤 주파수로 경고를 보내고 있었을까’ 같은 엉뚱한 상상이 계속되다가 ‘영인의 생명을 살리는 시선 연구’가 실패하지 않았다면 도움이 되었을까에 이르렀다. ‘영인’이 작품 속 가상 인물임을 알면서도, 그것이 떠오를 만큼 감염병 앞에서 우리는 해결책을 몰라 무력하게 서 있다.


작년 가을 열린 오로민경의 개인전 <영인과 나비: 끝의 입자 연구소에서 온 편지>(팩토리2, 서울, 2019)는 ‘영인’이라는 가상의 과학자 연구실로 우리를 초대한다. 연구실로 꾸민 전시장에는 영인이 질병으로 연구를 중단해 미완이 되어버린 자료, 고민의 흔적 그리고 실험 결과물이 꼼꼼히 펼쳐져 있었고, 영인은 이 연구를 지속해달라는 편지를 남겼다. 연구 결과물로 묘사된 다양한 설치 작품은 미세한 오감을 깨웠다. 작품 일부는 프리즘이 되어 공간에 무지갯빛으로 어른거렸고, 삼각 플라스크 등 실험 도구 사이에서는 기분 좋은 향이 났다. 작품 재료는 연약하고 또 손으로 만질 수 없어 금방 사라질 듯한 빛, 그림자, 소리, 향기로 가득한데 불안하지 않고 평온했다. ‘생명을 살리는 시선 연구’ 관측상자 설치를 열심히 들여다보았지만 관측은 잘 되지 않았다. 실패라 생각하고 다른 자료로 시선을 옮겼는데 문득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이 공간의 안정감은 어떤 감각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다른 감각을 깨워주는 작품 감상의 ‘연결감’에서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끝의 입자 기화현상’, 마른 나뭇가지, 복합매체, 2019, 사진: 황예지

 

나중에 알았지만, 관객이 관측상자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멈춰 있던 설치물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관측상자 안을 보는 관객은 상자 밖 움직임을 파악할 수 없다. 오롯이 혼자서는 모든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개입으로 기능이 확장되며 또 다른 이와 연결되었을 때 이야기가 증폭된다.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누구도 한눈에 파악할 수는 없다. 관측상자를 관찰하는 누군가의 노력을 통해 이 세계는 아름답게 돌아가고 우리는 그 덕분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이치이자 공동체의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연구실은 또 다른 ‘영인들’의 경험을 듣는 장(혹은 무대)으로 변모하며 다양한 관객을 초대했다. 질병이 극복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통과하는 상태로서 함께 그 경험을 나누고, 걷는 법을 궁리했다. 혼자 부르기 어려운 노래를 여럿이 함께 이어 부르다 자연스럽게 화음을 이루는 장소가 되었다. 작가의 주요 작업 제목처럼 ‘거북이 걸음의 노래’가 된다. 


오늘의 사태가 박쥐를 먹는 타 문화권의 야만 때문이라고 구분하기 전에 야생동물을 학대하는 우리 문화를 돌아보는 ‘관측상자’가 되기를 바란다. 특정 대상을 비난한다고 나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조난 상황에서 혼자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다면 생존 확률은 높아진다. 서로의 체온은 생의 시간을 늘리기 유리한 조건이기도 하지만, ‘영인’의 연구실에서 느낀 것처럼 함께한다는 안정감은 생각지도 못한 기적을 만들기도 한다. 빛이 없는 캄캄한 곳에서는 익숙한 길도 헤매지만, 평소 보이지 않던 별은 더 뚜렷하게 보이는 법이니. 
사진 제공 오로민경

 

 

Balanced Vol.2
작년부터 비트리 갤러리에서 매해 개최하는 그룹전이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는 노준 작가, 책 속 시간의 궤적을 조형적으로 표현하는 정두화 작가, 다양한 풍경을 조형 언어로 보여주는 
하지운 작가의 진면목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일시 6월 11일~7월 10일
장소 비트리 갤러리
문의 02-6951-0008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목마름을 해갈해줄 엄효용 작가의 사진전. 자신이 단지 세계의 일부이며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한 작가는 자신의 눈으로 포착한 세계의 모습을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회화적 질감으로 표현했다. 
일시 6월 2일까지
장소 희수갤러리
문의 02-737-8869

 

 

 

더네이버, 전시, 오로민경 작가

CREDIT

EDITOR : <더네이버>편집부PHOTO : 더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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