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삶을 채우는 행복의 순간들

수많은 유명 일본 작가의 이야기를 옮긴 권남희 번역가가 산문집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를 펴냈다. 그녀가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소소하지만 찬란한 일상 속 행복.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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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라는 작업은 미묘한 뉘앙스와의 씨름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하루키의 말대로 왼쪽 손의 동전을 오른쪽 손으로 옮기는 단순한 일은 아니리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책을 고를 때 누가 옮겼는지도 주의를 기울여 살펴본다. 그리고 만족스럽고 흔쾌하게 뽑아 든다. 아, 이 사람이 한 번역이라면 믿고 읽을 수 있지. 바로 믿을 수 있는 ‘그 사람’이 쓴 에세이다. 


이 책은 짧고, 쉽고, 소소한 에피소드로 가득 차 있다. 이웃의 SNS 글을 읽듯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러다 문득 ‘미묘한 뉘앙스’에 대한 저자의 시선이 드러나는 문장을 만나면 그가 번역한 책을 떠올리게 된다. 이 감각으로 그 문장을 집어냈겠구나. 문화와 배려의 방식이 다른 사회의 글을 우리가 공감할 수 있도록 옮기는 데는 이런 섬세한 감각이 필요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잘 번역하려면 당연히 조사 하나도 허투루 쓰지 못할 것이다. 저자는 어느 날 편집자에게 이메일을 보낸다. 지난번 보내주신 책을 잘 읽었다는 인사를 덧붙이려 하는데,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확인하기 귀찮아 “<명치를…>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라고 보낸다. 답장이 왔다. “<명치가…>를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이런, 실수를 했구나.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러나 정작 책 제목은 <명치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지>다. ‘를’과 ‘가’와 ‘’나 사이. 그 에피소드로 한 편의 글이 꾸려진다. 


그 감각으로 딸과의 대화를 복기하고, 부모님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 이야기에 무방비하게 웃게 되는 건, 우리도 그런 순간을 무수히 겪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 독립문 알아?” “알지, 불나서 탔잖아.”(남대문입니다) “엄마, 인사동 알아?” “알지, 고물 파는 데.”(골동품이겠지요) “엄마, 정하가 롯데 장학생으로 뽑혔어.” “(다른 사람에게) 우리 손녀가 롯데백화점 추첨에 당첨됐다네.” 저자가 대화를 나누는 가족과 친구들은 지극히 보통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리의 삶도 웃음으로 가득 차 있음을. 


딸 정하는 어느 날 말한다. “엄마는 정말 편한 팔자를 타고났다니까. 나도 엄마 팔자 닮아서 편하게 살면 좋겠다.” 그 말에 저자는 흠칫 놀란다. ‘맞는 말 같기는 한데 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부정할 수는 없는데 긍정하기도 억울’하다는 것이 그의 심정이다. 싱글맘의 고단한 삶. 늙어가시는 부모님을 뵐 때의 무거운 마음. 나름대로 ‘차분하게 파란만장’했던 과거사. 목에 핏대를 올리고 불행 배틀이라도 할 법한데, 그는 오히려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주업인 번역 일도 그냥 집에 앉아서 노트북이나 토닥거리는 정도이고, 부업인 주부 일은 2인 살림이니 대충 하고, 싱글맘이라 명절에 시집 가서 고생하는 일 없고 친정에 가도 일 시키는 사람 없고. 거기에다 항상 본인이 자화자찬하는 대로 자식이 알아서 바르게 자라니 자식 걱정할 일도 없고, 그러므로 엄마 팔자 상팔자, 이런 논리인 것이다. 반박 불가.” 


그러니 그는 행복한가. 보란 듯 찬란하지는 않지만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그렇다면 행복은 무엇일까란 고민에 빠진다. 이 책의 제목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의 답은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단에 나온다. 읽고 나서 나는 행복한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의 논리를 빌자면 아니라고는 못하겠다. 행복하려는 노력이 귀찮게 느껴진다면 이미 행복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잠옷을 입으렴>,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등을 집필한 이도우 작가의 첫 산문집. 작가가 오래도록 기억해온 사람, 말, 글, 풍경, 그날의 마음에 대해 작가 특유의 깊이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살피고 섬세한 문체로 기록했다. 
저자 이도우
펴낸 곳 위즈덤하우스


뉴턴의 아틀리에
틈만 나면 미술관으로 향하는 물리학자 김상욱과 물리학회까지 참석하며 과학에 열정을 보이는 타이포그래퍼 유지원이 찾아낸 과학과 예술의 연결고리. 자연스러움, 복잡함, 감각, 가치, 유머 등 26개 키워드를 중심으로 관찰과 사색, 수학적 사고와 창작의 세계에 대한 고민을 담아냈다.
저자 김상욱, 유지원
펴낸 곳 민음사

 

 

 

 

더네이버, 북,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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