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파장을 만들기 위해 돌 던지는 사람

어린 시절 놀이터에 있는 철봉에 오를 때면 새로운 눈높이로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이은새 작가는 관습이 되어버린 세상의 편견과 폭력을 낯설게 만들어 우리를 환기시킨다.

20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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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로잡힌 돌> 전시장 전경, 2019, 사진: 이의록, 작가 제공 

 

한 여성이 토사물을 내뱉으며 조롱의 눈빛을 보내고, 어떤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주저앉아 노상 방뇨를 하고 있다. 얼큰하게 취한 듯한 무리가 큰 소리로 시끄럽게 웃고, 또 다른 여성은 별 위협을 느끼지 않는 듯 대자로 바닥에 누워 있다. 이은새 작가가 2018년 ‘대안공간 루프’에서 연 개인전 <밤의 괴물들>의 장면들이다. 큰 사이즈 그림을 오간 역동적 붓질에서 느껴지는 힘 그리고 채도 높은 강렬한 색감이 주는 에너지에 눈과 속이 시원하기도 했지만, 인물들의 행위를 하나하나 보면서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를 채우는 여성을 향한 혐오 폭력에 비한다면 타인에게 물리적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 소박한 수준의 일탈, 고작 술주정에 지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저 장면들이 아주 낯선 풍경은 아니다. 주인공의 성별을 바꾸어 떠올리면 수도 없이 만나온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율학습을 끝내고 처음 밤늦은 귀가를 했던 10대 때부터 성인 남성이 소변을 보는 행위 정도는 수도 없이 목격했다. 항상 이런 문제적 행위를 벌인 자들은 어떤 죄책감도 없는데,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된 나는 공포에 내몰려 잰걸음으로 그 상황에서 탈출하려 애썼다. 당연히 모든 밤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어떤 밤은 갑작스럽게 두려움의 소용돌이 안으로 날 데려다놓았다.

 

물론 ‘밤’만은 아니었다. 한 걸음 옮길 여유도 없던 만원의 ‘지하철 1호선’에서 잊고 싶은 끔찍한 기억이 한 움큼 호출되고, 어떤 여성에게는 공중화장실이, 또 다른 여성에게는 안전할 것만 같은 교실이 괴로웠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1호선 같은 객실 안에서 어떤 이는 별일 없는 일상의 시공간으로 인지한 채 졸고 있을 때, 본인은 불쑥 싸한 기운을 감지하는 감각이 무엇인지 여성들은 알고 있다. 공기처럼 일상에 만연한 폭력이 이제 지하철에서 밤의 골목길을 넘어 SNS로, 메신저 단체방으로 넘나드는 중이다. 

철봉 운동, oil on canvas, 181.8x227.3cm, 2018

 

이은새 작가의 전시에서 느꼈던 해방감은 몸에 쌓인 이런 감각 때문에 나온 반응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철봉 운동은 세상을 거꾸로 보게 하는 매개다. 어린 시절 철봉에 올라 몸을 뒤집고 풍경을 보면 매일 찾던 놀이터가 다른 곳으로 느껴졌다. 철봉 운동은 시작하는 데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지만, 막상 경험하면 그리 어렵지 않다. 세상을 빗겨 본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철봉에 올라 평소와 다른 눈높이로 바라보면 세상의 편견과 폭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너무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해버리는 관습 뒤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작가가 그려온 장면들을 언뜻 보면 계속 다른 서사를 스타카토처럼 포착한다고 느낄지도 모르지만, 스스로 타자화하지 않고 오롯이 서 있을 때 보이는 질문, 사회가 만든 정상성의 기준에 대한 균열 내기로 그 장면들은 연결된다. 이은새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작품의 영감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분노와 무력감이 작업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한 줄의 짧은 대답이었지만 정확하게 페미니즘적이라 생각했고 공명이 되어 작품이 더욱 또렷이 보였다. 여성주의 상담을 해온 활동가이자 연구자인 김민예숙은 ‘페미니즘은 공격하거나 방어하지 않는, 상처를 힘으로 전환시키는 정치’라고 말한다. 이은새의 작업은 세계를 구성하는 오류에 대항하면서도, 분노의 대상을 공략하지 않고, 스스로 명징하게 발언하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다.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파장을 만들기 위해 돌을 던지는 사람, 그 파장은 균열이 되고 물결을 이루며 또 다른 물결과 만나 파도가 될 것이다. 

 사진 제공 이은새 

 

 

관객의 재료
인간의 공감 본능이 작동하는 지점으로서 ‘재료’에 주목한 현대미술 작가 8명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이번 전시는 작품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작품과 관객이, 관객과 관객이 서로의 재료를 쓰고 또 쓰이는 교환의 순간 속에서 작품의 의미가 다층화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일시 4월 25일~8월 23일
장소 블루메미술관 
문의 031-944-6324

 

프롬프터
이상향을 좇는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과 환상, 그리고 그 이면에 자리한 모순을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전하는 장종완 작가의 개인전. 전 세계 지도자들이 회담을 갖거나 중요한 연설을 하는 다양한 장(場)에서 발견된 정치 선전적인 회화 혹은 오브제에 주목했다. 이러한 조형물 속에 숨겨진 정치 선전적인 이야기를 유희적으로 보여준다.
일시 4월 24일~8월 16일 
장소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문의 02-736-5700

 

 

 

 

더네이버, 전시, 이은새 작가

CREDIT

EDITOR : <더네이버>편집부PHOTO : 이은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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