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권유하는 작가

오랜 기간 한국과 인연을 맺어온 독일 현대미술 작가 토비아스 레베르거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부산시립미술관에 이어 한남동 갤러리바톤에서 열리는 개인전 <TRUTHS THAT WOULD BE MADDENING WITHOUT LOVE>를 위해서다. 사물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를 권유하는 작가를 만났다.

202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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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Truths that would be maddening without love>가 열리는 갤러리바톤에서 포즈를 취한 토비아스 레베르거. 착시를 일으키는 서로 다른 컬러 패턴을 두른 공간에는 그의 목소리로 녹음된 질문들이 재생되고 있다. 

 

당신의 작품은 개념에서 출발해 공간과 사물을 시각화한 결과물이다. 이번 갤러리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고,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장치를 사용했는가?
갤러리바톤에는 매우 다른 두 개의 전시 공간이 있다. 하나는 커다란 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각형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복도처럼 매우 기다란 공간이다. 공간을 보았을 때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점은 명확했다. 나는 이 공간들의 밀도를 높이고 색다른 변화를 주기 위해 물리적으로는 다섯 개의 벽을 세우고, 전시 구성을 이미지, 오브제, 설치 세 부분으로 나누는 계획을 구상했다. 이미지가 가득 찬 벽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입구에서 들어오며 마주하는 방향에서 보이는 벽면) 앞면에는 주로 풍경 이미지를 사용해서 전형적인 벽지에 가까운 느낌을 주려고 했다. 낭만적이고, 약간은 위안이 되기도 하고, 조금은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말이다. 반대로 뒷면에는 특정한 아름다움을 품었으나 다소 혼란스럽고 불편할 수 있는 이미지를 배치했다. 모든 것들은 문에 숨겨둔 문장과 연관되어 있다. 문을 잘 들여다보면 ‘Something else is possible’이라는 문장이 보일 것이다. 거대한 이미지 벽들을 거의 다 지날 무렵 관람객은 내가 재떨이라고 명명한 오브제를 마주하게 된다. 앞에서 거대하게 확대된 이미지들을 담으려고 넓게 조망하던 시각을 전환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때부터는 작은 물체를 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공간에서 다음 공간으로, 그다음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당신의 시각은 모든 것을 흡수하기 위해 애를 써야 하고, 그 탓에 불안정해질 것이다. 물리적인 공간의 변화로 인해 인지 감각이 요동치는 경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문을 열고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보다가 작고 알록달록한 재떨이를 보느라 멈춰 서서 고개를 숙여야 하는 상황이 재미있다. 왜 갑자기 재떨이를 관찰해야 하나 싶다. 재떨이를 선택한 이유는?
첫 번째 이유는 나 자신이 흡연가라 관심 영역이어서일 것이다. 두 번째는 재떨이 자체가 지금 이 시기에 흥미로운 오브제라는 것. 아직은 기능성을 담지한 오브제지만, 흡연자가 사라진 미래에는 추상적인 오브제가 될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은 내 작업에서 대단히 중요한 질문인데, 이런 측면에서 재떨이는 관점의 전환이 예견되는 메타포라 할 수 있다. 또 인터넷의 수많은 랜덤 이미지를 3D 프린터로 제작하고 담배를 끼울 수 있는 작은 홀더를 만들었더니 모두가 재떨이 기능을 갖췄다. 이 작은 물리적 변화 과정에서 비롯한 사물의 전환이 내게는 무척 흥미로웠다. 

 

 

‘Something else is possible’이라는 메시지를 내건 문. 충분히 낭만적이고 희망적인 꿈을 꾸게 하는 이미지 반대편에는 다소 혼란스러운 이미지 작업이 설치되어 있다. 


왜 미래에 재떨이를 찾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가?
100년쯤 뒤에는 아무도 담배를 피우지 않을 것이다. 보험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어디서도 흡연자는 환영받지 못한다. 공공장소에서도 재떨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지 않은가. 지금 자라는 아이들에게 재떨이는 무척 생소한 물건이다. 그러니 종국에는 사라지지 않겠나. 지금 전환의 시기에 있다고 느껴지는 물건이다.


당신의 전시 제목은 관람객에게 전하는 행동 지침을 수반한다고 느꼈다. 반면 이번에는 작가 자신이 예술에 대한 정의를 직접적으로 내포하는 듯 보인다.
전시 제목은 보통 예술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당대의 문제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시인이 시를 쓰는 것과 비슷하게 제목을 짓거나, 문구 일부를 인용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 제목은 개념과 감정 사이의 관계를 담았다. 예술 작품은 지성과 신중함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지지만, 그와 동시에 감정적이고 우연적인 요소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개념은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만약 당신이 사랑할 대상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강렬한 컬러 배색, 착시 효과를 일으키는 선과 도형은 당신이 작품에서 자주 사용하는 시각적 요소다. 현실로부터 달아나게 하는 인위적인 시각적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어디서 영감을 받는가?
최고로 좋은 영감은 지금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과 지루함에서 온다. 제1차 세계대전 함선에는 위장을 위해 검은색과 흰색을 사용한 패턴을 입혔다. 하지만 위장이라기에는 다소 눈에 띄지 않나? ‘대즐 카무플라주’가 역설적인 의미를 품고 있는 점이 흥미로웠고, 이러한 디자인을 차용해서 작업에 활용하고 있다. 

 

 

온라인상에 크레디트 없는 수많은 이미지들을 3D로 제작한 오브제들. 담배를 끼우는 U자 모양의 홀더를 만들자, 각기 다른 모양의 오브제들은 재떨이가 되었다. 


최근 부산시립미술관에 특별한 카페 공간을 조형했다. 당신의 작업에서 카페는 어떤 개념의 공간인가. 2009년 당신에게 황금사자상을 안겨준 베니스 비엔날레의 작품 의미와 동일선상으로 봐도 되는가?
베니스 비엔날레 때의 작품은 카페 또는 바와 같은 공간이다. 내게 흥미로운 지점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무언가를 예술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않을 가능성이다. 타인의 얼굴, 무언가의 표면을 바라보는 것보다 당신의 얼굴, 눈에 있는 주름을 바라보는 것이 오히려 예술적인 경험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법이다. 두 번째는 미적 표현을 마음껏 분출하기 위한 공간을 담은 컨테이너에 대한 아이디어다. 부산현대미술관에 있는 작품은 이런 측면이 반영된 공간이다. 사실 내 모든 작품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내 작품은 항상 내 다른 작품의 확장이자 재해석 또는 지속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현대미술관 작품은 안팎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공간) 조각이라는 점이 독특한 특징이다.  


지난해 상하이 록번드 아트 뮤지엄에서 선보인 개인전에서도 당신은 ‘진실’을 찾기 위해 수수께끼 같은 장치를 관객에게 선보였다. 특히 꽃을 꽂은 꽃병을 사용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꽃병은 미적 개념을 비구상적인 방식으로 담을 수 있는 전형적인 틀이다. 꽃은 선택자의 자아를 드러내고 ‘Portrait Vase’는 정체성을 담는 살아 있는 조각이 되어준다. 1990년대에 시작한 이 시리즈는 여러 사람과의 협업으로 가능했다. 나는 항상 작가는 독립적인 존재여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작가들의 미학적 소통을 위한 움직임을 형성하고 싶었다. 


당신은 늘 대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금 시대에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방해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큰 장애물은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유동적인 시각을 가지고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다. 예를 들면, 나는 무언가가 꼭 미술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구성하는 많은 대상은 모두 예술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는 숨겨진 핵심을 통해서만 예술적 가치를 증명하는 것과는 다르다. 미술은 관점이다. 당신이 원한다면 무언가는 작품이 되기도 하고, 무언가는 당신이 예술을 정의하는 특정한 기준 안에서 미술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래서 관점은 곧 투영이다. 나는 관점을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좋아한다. 어떻게 전환하느냐에 따라서 작품은 또 다른 무언가로 변화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2019년 상하이 록번드 미술관 전시 전경. 


동시대 작가 중 신선한 감흥을 주는 작가가 있을까?
당연히 있다. 프라뜨차야 핀통(Pratchaya Phinthong), 라우라 샤벨카(Laura Schawelka), 단 보(Danh Vo). 


스승인 마르틴 키펜베르거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작고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유효한 가르침이 있다면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신이 무언가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면 다른 관점에서 이것을 바라보는 시도를 해야만 한다. 당신이 스스로를 믿을 수 있고 또 자신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진실을 관철하는 세상에서 당신이 무언가의 여러 면을 다각도에서 파악하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것들은 여느 때보다도 더 굳건히 유효한 가르침이 될 것이다. 


1980년대 독일 현대미술계를 주도한 그와 함께 활동한 예술가 중엔 요셉 보이스가 있고, 그에게 영감을 준 이로는 지그마르 폴케가 언급된다. 독일 현대미술사의 계보를 보는 듯하다. 현재 시기에 당신은 어떤 예술가로 기록되길 바라나?
누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아는 것은 항상 어렵다고 생각한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예술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과정은 마치 큰 혼합체처럼 느껴진다.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이가 같거나 더 어린 사람들로부터도 영향을 받는다. 


마르틴은 “예술가에게 휴일이 없다”는 인상 깊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신이 쉬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는 훌륭한 예술가에게 결코 휴일이 없다고 했지만, 나는 사실 “나쁜 예술가에게는 절대 휴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예술가란 충동에 사로잡히거나 즉흥적인 영감으로 작업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작업은 즉흥성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작업에 들어가면 매우 오랜 시간 고민한다. 이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건 모르건 간에 이를 통제하려는 욕구를 내려놓으면서도 계속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작업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내 작품을 (나보다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2009년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 전경. 


당신 역시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갖출 수 있도록 당신만의 특별한 교육 방식이 있는가.
내가 공부를 한 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나 역시 선생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 지금의 나는 학생들을 가르친다기보다는 돕는 것에 가깝다. 내 역할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다만 목적이나 목표를 너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끌어내려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우리는 ‘예술’이라고 표현하지 않아도 결국에는 항상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패션이나 리빙 브랜드와 협업도 종종 한다. 브랜드와의 작업은 어떤 영감을 주는가.
협업을 하면서 기술적인 문제나 콘셉트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가 나를 자극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은 이후에 진행되는 작업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커머셜한 세계와의 결합에 자유로운 듯하다. 상업적이라는 것인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와 작업을 하고 잘 팔리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웃음).  


독일에 있는 당신의 스튜디오에서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는가?
10명 정도의 기본 스태프가 있다. 스튜디오 매니저, 프로덕트 디자이너, 목수, 건축가 등 다양한 직업군이 모여 있다. 프로젝트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외부의 공예가, 엔지니어 등과 함께하기도 한다. 

 

 

갤러리 바톤의 전면에 배치된 전시 공간. 전시 제목의 레터링을 네온 사인으로 작업했다. 전시는 5월 13일까지 진행된다.


한국을 여러 차례 찾으면서 인상 깊게 본 현상이 있는가?
한국 첫 방문이 20여 년 전이다. 아트선재센터 개인전, 광주비엔날레 참여, 리움 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까지, 떠올려보니 외국 작가로는 비교적 많은 작업을 함께한 것 같다. 한국에는 인상 깊은 부분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어디에도 없는 한국 특유의 식문화에 관심이 있다. 


당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한국이 낯설었겠다. 어쩌면 불확실성을 안고 비행했을 텐데 두려움은 없었나?
두려움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이곳도 많은 사람이 사는 국가이지 않나. 오히려 이번 유행성 바이러스 관련한 시스템은 여기가 더 잘 구축되어 있다는 생각도 했다. 바이러스 검사를 다른 국가보다 많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전 오프닝도 늦춰졌고 예정보다 일찍 독일로 돌아가는 상황을 맞았다.
아쉽지만 국가가 입국 제한을 준비하니, 나로서는 아이들이 있는 가족에게 가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예정된 프로젝트가 있는가. 지난해 상하이 개인전에 이어 상하이시가 의뢰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강을 사이에 두고 20미터에 달하는 두 개의 타워가 세워진다. 일종의 조각물이다.  이 두 타워는 서로 LED로 구현되는 문자 대화를 자동으로 주고받는다.두 타워의 대화를 위해 현재 독일과 중국 AI 전문가가 함께 끊임없이 연구를 거듭하고 있고, 내년 완성을 기대하고 있다.   

자료제공 갤러리바톤

 

 

 

 

더네이버, 전시, 토비아스 레베르거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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