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호기심과 웃음의 미학

이탈리아가 사랑하는 디자이너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그의 60년 디자인 역사를 조망한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 특별전에는 허를 찌르는 반전 드라마가 숨어 있다. 거장이 남긴 역작은 경외심을 일으키기보다 오히려 그 민낯을 드러내며 웃음과 호기심을 유발한다.

2020.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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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2018년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다시금 주목 받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아킬레 카스틸리오니(Achille Castiglioni)가 아시아 최초로 열리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 전시로 한국을 찾았다. 오는 4월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그가 지난 2002년, 85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58년간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현대 디자인 역사에 남긴 업적을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 따라서 일반 관람객은 물론 디자인 마니아와 전공 학생이라면 ‘카스틸리오니의 역작을 빠짐없이 보리라’며 사뭇 진지한 태도로 전시장을 찾을 터. 하지만 카스틸리오니의 제자이자 전시 기획과 공간 디자인에 참여한 세계적 디자인 듀오 이코 밀리오레(Ico Migliore)와 마라 세르베토(Mara Servetto)는 관람객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아,  모든 것을 다 보려고 하지 마세요! 순서대로 볼 필요도 없고요. 그냥 당신이 궁금한 것만 골라 봐도 충분합니다!” 


디자인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에게 현대 디자인의 시조인 ‘아킬레 카스틸리오니’라는 이름이 친숙한 건 당연지사. 그러나 그의 이름은 마니아들조차 정확히 발음하거나 표기하기 쉽지 않을 만큼 어렵고, 그렇다 보니 일반 대중이 그의 이름을 듣고 존재를 인지할 리 만무하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누구나 <이탈리아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 전시를 보다 보면 분명 어느 한 지점에서 이미 자신이 알고 있던 카스틸리오니를 만나게 된다는 사실! 이른바 고급스러운 모던 주택 거실의 인테리어 사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아르코’ 조명, 요즘 레트로 열풍을 타고 핫한 아이템으로 떠오른 웃음 짓는 표정의 ‘라디오포노그라포’ 모듈 오디오, 자전거 안장으로 의자를 만든 엉뚱함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셀라’ 체어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이를 마주한 사람들의 반응과 감흥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거장의 작품’이 우리 집에 있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 ‘요즘 디자이너가 파격적으로 만든 건 줄 알았는데 60년 전’ 것임을 알게 된 충격, 그리고 ‘이 낯익은 조명이 자동차 헤드라이트’라는 사실에 터져 나오는 웃음. 전시 오프닝 행사를 위해 지난 1월 방한한 카스틸리오니 재단 운영자이자 그의 막내 딸 조반나(Giovanna)는 이런 반응은 당연한 거라 설명한다. “우리는 카스틸리오니 전시를 통해 당신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의 생각법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카스틸리오니의 막내 딸이자 재단 운영자인 조반나 카스틸리오니가 60년 전 카스틸리오니가 통화할 때 사용하도록 만든 스툴 ‘셀라’에 앉아 실제 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의 이름을 직접 지었는데, 모두 제 ‘이름값’을 한다. 만화 <피너츠>의 주인공 스누피를 닮은 조명의 이름은 실제 ‘스누피’다. 

 

쓰임새 분명한 물건이 중요해!  
밀라노공과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카스틸리오니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4년, 이탈리아 산업디자인계에서 활동하던 형 리비오, 피에르 자코모와 함께 건축 사무소를 세우고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일상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관찰하고, 거기서 발견한 것들을 디자인에 접목하며 실험적인 아이디어와 기능성이 돋보이는 제품을 만들었다. 60여 년간 480여 개에 이르는 건축·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290여 점의 제품을 디자인한 가운데, 그가 만든 제품 중 하나는 무려 1500만 개가 팔리는 신화를 기록한다. 이른바 ‘틱톡’이라는 의성어로 잘 알려진 ‘롬피트라타(Rompitratta)’ 스위치가 바로 그 주인공. 지금은 너무 당연한 존재라 누가 개발했는지조차 궁금해할 턱이 없는 존재지만 개발 당시에는 조명을 켜고 끄는 문제를 손가락 하나만 까딱 하면 해결할 수 있게 해준 혁신적인 솔루션이었다.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제 기능을 잘 수행하는 것이라면 누가 디자인했는지 중요하지 않다’고 한 카스틸리오니의 말처럼 ‘롬피트라타’ 스위치는 거장이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익명’의 디자인으로 일상에 녹아 있다. 

 

 

디자인 거장의 스튜디오를 재현한 전시 공간.  

 

거장이라 불리는 창작자는 어디서 영감을 얻을까? 아킬레 카스틸리오니 전시는 그의 영감의 기원, 생각법을 짚어보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교수님은 수업에 들어오실 때마다 ‘메리 포핀즈’처럼 큰 가방을 갖고 왔어요. 가방에는 일상에서 수집한 익명의 오브제가 가득했고, 거기서 나오는 물건은 늘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죠.” 카스틸리오니의 제자 이코 밀리오레는 그 잡다한 오브제에서 오늘날 카스틸리오니 디자인의 위대함이 비롯된다 말한다. 하찮아 보이는 것들조차 저마다 오랜 관찰과 지혜를 품고 있기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대상을 ‘관찰’하는 것이야말로 쓸모 있는 제품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라는 것. 이에 대해 카스틸리오니의 딸 조반나는 어릴 적 자신이 갖고 놀던 장난감도 아버지가 수집한 익명의 오브제였음을 회상한다. “용수철처럼 생긴 ‘슬링키’는 아버지가 만든 재떨이에 응용되었어요.” 애연가였던 카스틸리오니는 재떨이에 담배를 고정할 방법을 찾다가 트레이에 스프링을 걸쳐놓고 스프링 마디 사이에 담배를 고정하도록 했다. 이는 ‘스피랄레’(Spirale)라는 이름의 재떨이로 알레시에서 지금도 출시되고 있다.

 

 

신소재를 사용해 1960년에 만든 타락사쿰1 (Taraxacum1) 조명.

 

전시 포스터.  

 

일상에서 살아 숨 쉬는 디자인의 거장   
카스틸리오니의 디자인은 이미 존재하는 오브제를 관찰한 후, 여러 부분을 조합해 새로운 쓰임새를 만들어내는 ‘리디자인(Redesign)’ 개념에서 살펴보면 한층 흥미롭다. 자전거 안장을 응용해 만든 스툴, 릴(Reel) 테이프를 받침대로 활용해 전선을 감을 수 있게 만든 테이블 램프,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내장된 전구로 만든 조명 등은 익숙하면서도 재기 발랄한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한다. 


 

아르코 플로어 램프가 있는 공간. 

 

참신한 시각으로 일상의 것을 조합해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드는 데 일생을 바친 카스틸리오니는 이탈리아 디자인의 최고 영예인 ‘황금 콤파스상’을 무려 9회나 수상했고, 2002년 그의 별세 후 이탈리아 정부는 카스틸리오니의 모든 오리지널 아트워크와 아카이브를 문화재로 등록해 관리하고 있다. “카스틸리오니 재단과 관련해 해외 출장을 다니다 보면 아버지가 디자인한 제품이 놓인 집이나 매장을 마주칠 때가 많아요. 그때마다 제가 ‘아빠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세요?’ 인사를 건네죠.” 카스틸리오니의 딸 조반나는 아버지의 작품을 일상적인 장소에서 만날 때 더 즐겁다 말한다. 사람들이 아버지가 디자인한 오브제를 사용한다는 건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만들고자 했던 아버지의 뜻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Photo J.B. MondinoⓒAlessi S.p.A(인물 사진), Achille Castiglioni Foundation) 플로스 조명 by 두오모앤코(02-516-3022), 
브리온베가 by 오디오플랫폼(02-540-7901), 알레시(alessi.com), 자노타(zanotta.it)  Coopeation 프로젝트콜렉티브, 아트 마이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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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J.B. Mond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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