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경계를 허무는 눈

유신애 작가는 인간이 긋는 선을 경계한다. 주류보다 소수에 관심을 가지지만 그 안에서 발견되는 부조리함에도 날을 세운다. 작가는 인간 스스로 모든 경계를 벗어나 자유롭기를 희망한다.

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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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푸투라에서 열린 <Petrichor>(2019) 전시 전경.

 

암흑의 시대다. 로또 아파트 한 채를 확보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된 것만 같은 좌절감, 신기루 같은 아파트를 사더라도 꿈꾸던 삶과는 거리가 먼 현실, 일확천금을 갖고 살아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 저마다의 이유로 불안과 절망감에 시달리며 사는 시대다. 과학 기술은 발전했고 사람은 이전보다 살기 편해졌지만, 그만큼 그늘도 많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손쉽게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시대지만 온라인 내의 권력 구조로 인한 차별과 폭력도 흔하다. 그 부조리함은 오히려 오프라인보다 더 은근하고 미묘하다. 시스템 안에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부조리함을 들추고 곱씹어 작품을 만들고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일. 작가의 업이다. 

 

 

 

유신애 작가는 드로잉, 비디오, 사운드, 세라믹,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활동을 10여 년간 펼쳐온 현대미술 작가다. 2004년 국내 대학의 회화과에 입학해 공부하다가 2학년 때 유럽으로 유학길에 올라 런던, 앤트워프를 거쳐 베른에 안착한다. 앤트워프 왕립 예술 아카데미에서 패션을 공부하던 중 다양한 학문이 결합된 전공이 베른 응용과학 대학원에 있음을 알게 된다. 학과 이름은 융복합 미술(Interdisciplinary Art). 실험적인 커리큘럼이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역시 미술만이 아니라 다양한 관심사를 갖고 있었다. “1960년대 후반 큐레이팅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곳이 베른이에요.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이 주도했죠. 전공도 흥미로웠지만 이런 히스토리 또한 베른을 선택하게 된 이유죠.” 머지않아 학교는 전공 이름을 컨템퍼러리 아트 프랙티스(Contemporary Art Practice)로 변경한다. 현대미술 신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자 했던 작가의 선택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대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과 매체의 작품을 발표하며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Shadow Rift>(2016) 전시의 설치 작품.

 

“국내를 떠나 이방인으로 살면서 친밀함과 친밀함의 수단에 대해 고민했어요.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이 현지 커뮤니티에 빠르게 속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인데, 혹시 어떤 계획이나 전략, 타협, 절충 부분에 있어 나 자신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싶었죠. 본격적으로 전시 활동을 하기 전엔 이러한 개인적인 고민이 작업의 주제가 되었어요. 이후 점차 확장되었죠.” 


 

전시 활동 초기에 그 존재와 의미에 대해 주목하게 된 니베아 크림 설치.

 

그가 처음으로 발표한 개인전은 2015년 <Delivery near Me>였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발발한 테러로 전 세계 페이스북 유저들이 프랑스 국기의 3색으로 프로필을 바꾼다. 애도와 공감을 표현하는 일은 클릭 한 번이면 가능했고, 손쉬운 방법으로 전 세계 사람들과 연대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페이스북에는 신변 안전을 확인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베이루트에서만큼은 이 기능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녀는 지역에 따라 차별을 둔 것을 비틀며 타투를 입힌 세라믹과 디지털 이미지 작품을 선보였다. 이후 2016년에 선보인 <What a Silencer Sounds Like> 전시를 연 후 에슐리만 코티 어워드에서 상을 받는다. 스위스 정부가 주관하는 이 상은 스위스 현대미술에 기여한 작가 3명에게 주는 상이다. 전시 이력이 많지 않았지만 그는 청색 직물에 니베아 크림으로 그린 ‘자아도취적 귀신과 경계 없는 친밀함(Narcissistic Ghosts and Borderless Intimacy)’ 등으로 국내외 미술 신에서 큰 주목을 받는다. 니베아 크림으로 그린 장승 이미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천에 흡수되어 사라지는데, 천에 남은 잔여물은 면역학적 패턴을 형성한 것으로 본다. “나와 너를 구분하는 위생적인 요소를 독일 역사와 니베아의 창립 과정을 통해 다뤘죠. 니베아는 독일 나치 정권 때 탄생해 아주 오랫동안 이어온 회사예요. 나치 정권이 인종 위생 정책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 브랜드의 마케팅은 나치의 정치적인 선전 쪽으로 기울었죠. 당시 나치도 니베아도 면역 작용의 구성 요소, 즉 안과 밖, 친구와 적, 자신과 남, 공격과 방어를 명확하게 구별하기 위해 무척 애썼잖아요. 이런 이유로 저는 내면의 부정성과 면역, 방어의 대상을 견디는 영혼을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채택한 요소들을 결합해 작품을 완성했어요.” 

 

 

에슐리만 코티 상을 수상하게 된 작품 ‘Narcissistic Ghosts and Borderless Intimacy’(2016) 설치전경과 부분. 방수 처리된 패브릭에 장승 이미지를 표현했다.  


작가는 지역이 내포한 고유한 특색, 문화, 역사, 토종 등에는 늘 관심이 많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지역의 특색을 전시 기획이나 작품의 목적으로 삼지는 않는다고. “그보다 작품 초기부터 다뤘던 이뮤놀로지 차원에서 얘기할 수 있는 인종, 문화, 커뮤니티, 젠더 이슈 등의 주제에서 여전히 맴돌고 있어요.” 

 

 

 <페트리코어> 전시 중 죽음을 상징하는 얼굴과 포켓몬의 다리를 결합해 창조한 ‘Dance of Death’ 벽화 2019. 

 

전시 <페트리코어>(2019)는 스위스 베른의 안티샹브르 (Antichambre)에서도 진행됐다. 

 

해방과 자유를 기원하는 오페라, 페트리코어 
공기가 습기로 채워지고 대지에 빗방울이 내리는 순간, 우리는 신선한 후각적 자극을 체험한다. 빗방울이 땅 위에 떨어지기 시작할 때의 생경한 비 내음. ‘페트리코어(Petrichor)’는 1960년대 과학자들이 오래 가문 땅에 빗방울이 떨어질 때 느껴지는 오감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단어다. 유신애 작가는 지난해 체코 프라하의 컨템퍼러리 아트센터 푸투라(Futura)에서 열린 개인전 타이틀에 이 단어를 택하고 인상적인 비디오와 음악, 평면 작품을 발표한다.  

 

 

로마 더 갤러리 어파트(The Gallery Apart)에서 진행된 <페트리코어> 전시 장면. 작품 ‘The Inner Music Can Be Heard When You Close Your Eyes’(2019)에 선 사람들. 

 

비디오는 타이틀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세미 오페라처럼 웅장한 연주가 흐르는데 그 무대는 공연장이 아닌 자동차다. 차의 외관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깨질 정도로 극대화된 사운드가 시각적으로 표현된다. 미국에는 자동차를 남성의 과시적인 수단으로 삼아 내외부의 근육을 키우고 강력한 오디오 시스템을 장착해 개조하는 집단이 있다. 하이퍼 머스큘린을 지향하는 커뮤니티로, 유리창을 깨는 것은 그들만의 세리머니다. 극단적인 경쟁에 기초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표현이나 서브컬처 안에서 개개인의 관계를 지배하는 방식이 그들을 통해 표현된다. 영상 후반부터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 흑인이자, 성소수자, 그리고 시인이다. 그는 지휘봉으로 상황을 중재하며 모든 긴장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역할로 등장한다. 


 

 

볼티모어에서 진행된 <페트리코어>의 비디오 작품 스틸컷.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자본의 축적을 통해 자유를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자본으로 인해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권력 구조와 룰, 경쟁 속에 놓인다.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등과 같은 어쿠스틱 악기로 특정 기술만 사용한 클래식 시대의 음악 타임라인을 볼 때 주파수와 실제 파형은 모두 매우 부드럽고 역동적이에요. 우리가 듣는 주파수만 특정 수준으로 귀에 도달하죠. 즉, 실제 소리는 많이 느끼지 않고 우리는 그냥 들을 뿐입니다. 그런데 실제 가능한 소리를 디지털화하는 데 성공한 현재는 주파수를 느낄 수 있고 기술을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어요. 과거와 달리 물리적인 방식으로 음악을 듣고 사운드 형식을 사용하는 것이 주류 시장에선 무기가 되었죠.” 클래식 음악은 감정적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음악 구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지금은 시각적인 요소나 기술에 집중한다. 페트리코어 비디오에 나오는 커뮤니티만 해도 그들에게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닌 과시의 수단이다. 또 최근 유행하는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 휴식 차원에서 듣고 즐기는 음악에서 한참을 벗어난다.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음악 프로그램에 노래가 있지만, 우리가 보는 것은 경쟁이 아닌가. 

 

 

세라믹으로 고안된 생물체와 전 세계 통용되는 인큐베이터 같은 초밥 상자로 구성된 <Shadow Rift>(2016) 전시의 설치 작품.

 

작가가 사라지는 협업의 의미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줄 다른 분야 작가들과 함께 협업하고 결과물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완성해간다. <페트리코어> 전시는 지역성은 물론 여러 아티스트가 함께하는 성공적인 협업을 보여준다. 그가 2년간 체류한 볼티모어는 1784년을 시작으로 재즈, 오페라, 웨스턴 클래식 음악 등의 부흥을 이끈 미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무척 중요한 도시다. 음악적으로 많은 인재를 배출한 도시임에도 빈곤층이 많고 정치적 마케팅으로 인해 그 명성이 과소평가되었다. 작가는 이 점에 집중해 이 지역 출신인 아티스트들과 대대적인 협업을 진행한다. 가수 겸 작곡가 매슈 스타크, 시인인 키넌 브리스, 엘론 베틀, 알렉스 데라니안과 실뱅 게르보드 등은 비디오와 사운드트랙 제작에 참여했다. “저는 종종 예술가로서 나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들이 없으면 예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든 안 했든 재능이 있는 사람이 정말 많거든요. 또 주류로부터 재능을 착취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잖아요. 그들과 함께 무대를 오르는 일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언더그라운드 안에서조차 모노폴리가 존재하니까, 항상 그에 맞서 작업해 나가기란 쉬운 일은 아니죠. 전시 기회조차 없는 사람은 저보다 더 힘들지 않을까요.” 


 

신자본주의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모호한 도덕 관념, 죄책감, 소외감과 관습에 대해 다룬 <길트 트립(Guilt Trip)> 전시 전경 2019. 

 

그가 하는 일의 80%는 글 쓰는 일이다. 전시 기획에 관한 과거의 작가들과 달리 현대미술가의 달라진 역할이기도 하다. “협업에 있어 작가는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에게 작품을 이끄는 최종 결정권이 있겠죠. 하지만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겸손해지는 부분이 있어요.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거든요. 협업은 구성원들과 나란히 손잡고 걸어가는 것과 같아요.” 자기주장이 강해서 타인들과 쉽게 연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조화로운 방식의 협업을 이끌어가는 능력 또한 그가 가진 장점일 것이다. “현재 오감으로 설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위해 비디오라는 매체를 택한 거예요. 또 이것이 제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작업 형태라고 생각하고요. 해외에서는 가끔 ‘트러블 오브 페인팅’, ‘트러블 오브 스컬처’라며 전통적인 예술의 방식을 꼬집는 경우도 있어요. 저 또한 다양한 매체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지만, 평면 작품에서 오는 감동을 여전히 좋아하고 있죠.” 

 

 

에슐리만 코티 수상에 고려된 또 다른 영상 작품 ‘Enemy’(2016)의 스틸 컷. 국내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유신애 작가는 작품 구상을 위해 오래된 서적과 문헌을 곁에 둔다. 여러 도시를 이주한 탓에 지금은 많은 부분 잃어버리기도 했지만 역사서부터 요리책까지 다양한 카테고리의 관심사는 창작에 자양분이 되고 있다. 미국에 거주할 때는 아트 전문지의 글보다 <틴 보그>의 정치 칼럼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찌든 세상을 비트는 맛이 그를 흥미롭게 했을 터다. 아트 신이 끊임없이 젊은 작가에 관심을 두는 이유를 그에게서 찾는다.쉼 없이 타성에 젖지 않으려 시스템으로부터 탈주하려고 하기 때문인 것이다. 

 

 

비디오 작품 ‘The Dead by Many Firsts’(2016)의 스틸 컷.

 

올해 작가는 슬로바키아와 중국 셴젠에서의 프로젝트 그리고 국내 개인전을 예정하고 있다. 국내 전시는 스튜디오 콘크리트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알려졌다시피 그곳은 배우 유아인이 이끄는 창작 스튜디오다. 스튜디오 콘크리트는 기존에 보지 못한 예술 형식을 실험하는 일종의 공동체로 늘 새로운 시도를 예고해왔다. 비슷한 지점이 있는 유신애 작가가 그곳에 펼쳐놓을 이야기에 적지 않은 기대를 해본다.    

 

 

 

 

더네이버,아트, 유신애 작가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이향아(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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