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 2020 S/S 쇼장 내부에 사용한 나무는 숲 조성 장기 프로젝트에 쓰일 예정이다. 

구찌는 모든 사업 활동에 탄소중립성 개념을 재정립했다. 

고백하건대, 지난날 에디터는 지속 가능한 패션과 관련된 아이템을 사는 데 남다른 만족감을 느꼈다. 일반 소비자보다 좀 더 고상해진 기분이랄까. 그러한 이유로 이름부터 친환경적인 뉘앙스가 가득한 에코백을 득달같이 사들였고 매일 다른 에코백을 메고 다녔다. 에코백이 진짜 ‘에코’가 되려면 대략 131회를 사용해야 그 효과가 있다는 것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때였다. 찰나의 순간에도 생성되고 사라지는 트렌드의 흐름과 함께 그 많던 에코백은 조용히 종적을 감췄다. 잠깐 유행에 그친 에코백 현상은 어쩌면 지속 가능한 패션에 기댄 일종의 ‘비즈니스’ 아니었을까? 하지만 현재의 지속 가능한 패션은 좀 다르다. 상품을 제작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원의 낭비와 노동 착취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 지속 가능한 패션이지만 이를 넘어 환경이 중심이 된 패션이 화두로 떠올랐다. 한때의 유행이나 틈새시장을 노리던 것이 주류 시장으로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이 깊다. 옷의 소재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궁금해한다. 궁극적으로 환경을 생각하는 패션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거다. 사실 이전에는 이런 패션에 대한 선택지가 좁았다. 재활용 천으로 만든, 별로 예쁘지 않은 옷이나 가방이 전부였으니까.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지금의 현상은 패션에 친환경을 아예 이식하려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다양하고 참신한 방식으로. 

컨버스는 버려진 페트병을 재활용해 그들의 대표 모델인 척 70과 척 테일러를 만들었다.

자라의 조인 라이프는 지속 가능한 소재만 이용한 컬렉션이다. 

우선 친환경 패션을 이야기할 때 스텔라 매카트니는 늘 먼저 나오는 이름이다. 일찍이 지속 가능성에 대해 모색하고 윤리적 패션을 추구한 그녀는 동물 가죽이나 털을 이용한 옷은 결코 만들지 않는다. 스텔라 매카트니의 공식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면 지속 가능성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브랜드가 다루는 소재가 어디에서 온 건지 밝히고, 환경적으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연구하며 힘쓰는 노력이 역력하다. 

늘 지속 가능한 패션을 염두에 두는 스텔라 매카트니의 2017 F/W 광고 캠페인.

 재활용 소재로 만든 구찌의 2020 S/S 쇼장. 

에코닐(ECONYLⓇ)이라는 재생 나일론 소재로 만든 프라다의 가방 라인을 소개하는 ‘리나일론(Re-Nylon)’ 프로젝트. 

코스의 생산 공장에서 모은 자투리 면으로 만든 스웨트 셔츠와 토트백. 가방은 일회용 포장과 쇼핑백을 대신한다. 

지난해 지구의 날에는 버버리와 리바이스, H&M, 자라 등이 2030년까지 온실 배출량 감축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H&M과 자라는 대표적인 패스트 패션 브랜드다. 하지만 그들 역시 환경 이슈에 긍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H&M은 재활용 소재를 이용하는 컨셔스 컬렉션(Conscious Collection)을 선보이는 중이고, 자라 역시 유기농 면과 재활용 울 소재를 사용하는 조인 라이프(Join Life) 라인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실시하지 않지만 헌 옷을 수거하는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패스트 패션과 대척점에 있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행보도 눈여겨봐야 한다. 우선 샤넬과 구찌, 그리고 앞서 언급한 버버리는 모피 사용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에코 퍼가 모피 자리를 대신해도 전혀 무리가 없음을 증명하겠다는 선언이다. 구찌는 이 밖에도 다양한 환경 윤리적 방침을 제시한다. 원자재 추적을 95퍼센트까지 보장하고 버려지는 가죽의 양을 최소화하는 ‘스크랩리스’ 프로그램을 내놓았으며, 2020 S/S 컬렉션의 쇼장은 재활용 가능한 소재로 만들었다. 쇼에 참석한 사람의 수에 해당하는 2000여 그루 나무를 밀라노에 심는다는 발표와 함께. 디올도 마찬가지. 170그루의 나무로 런웨이를 장식하고 쇼가 끝난 뒤 파리의 숲 조성 장기 프로젝트의 재료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1월 10일, 2020 F/W 컬렉션을 선보인 제냐는 패션쇼 콘셉트를 ‘기존 자원의 재활용’으로 설정하고 제냐 공장의 잔여 원단으로 제작한 리본 수천 개로 만든 설치 미술을 전시하기도 했다. 시몬 로샤 역시 이전 시즌에 사용하고 남은 옷감을 재사용하는 브랜드다. 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일환이다. 여기에 몽클레르도 힘을 실었다. 다운 재킷을 개발하는 동안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고 아마존 열대우림을 보존하기 위해 탄소 중립 바이오 다운 재킷을 개발한 것이다. 이 제품에 사용한 패브릭과 버튼, 지퍼는 모두 피마자(Castor Bean)에서 추출한 소재로 만들었다. 이 식물은 극소량의 물만 있는 척박한 곳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다. 프라다와 버버리는 낚시 그물과 방직용 섬유 폐기물에서 모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활용해 얻은 소재인 ‘에코닐’을 사용해 제품을 만든다. 프라다는 2021년 말까지 브랜드가 사용하는 모든 나일론 소재를 에코닐로 전환할 계획이다. 랄프로렌은 재활용 플라스틱에서 추출한 원단으로 만든 ‘Earth Polo’ 셔츠를 출시했다. 셔츠 하나당 평균 12개의 플라스틱 병이 쓰이는데, 이를 통해 2025년까지 매립지와 바다에서 1억7000만 개의 플라스틱 병을 없애는 목표를 세웠다. 이 밖에 컨버스는 페트병을 재활용한 컬렉션을 만들어 ‘컨버스 리뉴 캔버스’라 이름지었고, 아디다스는 2024년부터 모든 운동화 생산에 재활용 플라스틱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발렌시아가는 조금 특별한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인 해리 누리에프(Harry Nuriev)와 손잡고 소파를 만들었는데, 투명한 비닐 소재 소파 틀 안에 발렌시아가의 오래된 재고를 마치 충전재처럼 사용했다. 투명한 소파를 단단히 채운 옷은 형형한 패턴과 다채로운 색감 덕에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발렌시아가와 가구 디자이너 해리 누리에프가 만든 재활용 소파. 

몽클레르가 최근에 출시한 탄소 중립 바이오 다운 재킷. 

랄프로렌은 재활용 플라스틱 병에서 추출한 원단으로 물 없이 염색 공정을 거친 폴로 셔츠 ‘Earth Polo’를 출시했다. 

제냐는 그들의 원단 공장이 보유한 잔여 원단으로 수천 개의 리본 테이프를 만들었고, 이것을 활용한 설치 작품 ‘Art of Earth’를 2020 F/W 컬렉션의 쇼장에 사용했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패션 브랜드의 현재는 이렇다. 일시적인 캠페인이 아니라 근본적인 과정을 친환경적으로 변화시키고 그것이 일상에 스며들도록 각자의 방식으로 실행하는 중이다. 버려진 쓰레기를 이용해 번듯한 옷을 만들어 윤리적 태도가 결국 훌륭한 결과물을 낼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더네이버, 패션 캠페인, 친환경 패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