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두 코브라가 미니애폴리스 5번가의 건물 234m2 벽면에 실사처럼 펼쳐낸 밥 딜런의 초상 벽화. The Times They Are A-Changin’

Minneapolis X Eduardo Kobra
“이 도시는 변화하고 있어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밥 딜런의 초상 세 점이 숨 쉬고 있다. 이 도시 출신인 뮤지션 밥 딜런의 청년 시절과 중년, 그리고 현재까지, 세 시간대의 얼굴이다. 이 벽화의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금융 위기를 맞아 힘든 시간을 극복하고 변화하는 도시를 인물에 빗대어 상징한 것. 1920년대 아르데코 스타일로 설계된 한 건물의 내부를 전부 개조하는 과정에 벽화를 세운 것이다. 이 건물에는 새로운 경제 사업을 이끌 사무실이 들어서 있다. 이 도시의 공연 예술단 헤네핀 시어터 트러스트(Hennepin Theatre Trust)가 주선한 벽화 작업은 브라질 아티스트 에두아르두 코브라 팀이 진행했다. 10대 시절 스트리트 아티스트로 활동을 시작해 5개 대륙에 3000개가 넘는 벽화를 그려온 작가는 조국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 올림픽 때 초대형 벽화 ‘에스닉(Ethnic)’을 발표하며 당대 가장 뜨거운 그라피티 예술가로 등극했다. 5개 대륙 원주민의 표정을 레드, 옐로, 그린, 블루, 블랙 등 올림픽 오륜기 색깔로 표현하며 전 세계 다양한 민족의 화합과 포용의 정신을 담은 작품은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밥 딜런 벽화 작업은 올림픽 벽화 작업 이후에 진행된 것이다. 만화경 같은 면 분할과 대비가 또렷한 컬러 조합으로 사랑, 평화, 자연 등 국경을 넘어서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전한다.

2019년 리스보아의 뮤로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Rings Stairway 2019

프랑스 게브빌레 부근의 벽화 작업 2019 
 

a.DNA 컬렉티브가 기획한 이탈리아 아그로폴리의 과학고등학교 작업 A.Gatto 2017 

A.gatto X Peeta
“세상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세요”
마누엘 디 리타(Manuel Di Rita)는 1993년부터 ‘페타’라는 이름으로 활동해온 이탈리아 그라피티 예술가다. 오랫동안 베네치아를 기반으로 유럽을 넘어 미국과 아시아 도시 곳곳에 그의 조각 레터링을 새기고 있다. 그의 작업은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 볼 법한 기이한 형태와 구조가 특징인데, 이는 단순한 광물에서 복잡한 광물이 생성되는 화학 작용을 일컫는 아나모르피즘 현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예술 작업에서는 본래의 형태를 조각조각 자르거나 완전히 분해하여 새롭게 재창조하는 방법으로 알려졌다. 페타는 전문 3D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형태를 설계한 후 평면으로 옮기거나 입체적인 건축물에 입힌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불규칙한 면들이 융합된 기하학적인 구조물이 평면과 입체로 펼쳐진다. 작가는 주변 환경의 구조 및 문화적인 모티프에 착안해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작업한다. 1972년 설립된 이탈리아 아그로폴리의 과학고등학교 벽면에 시도한 작업은 학생들이 전통적인 학습을 뛰어넘어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탐구하는 목적에 걸맞다. 물론 작가의 세계는 온전히 학습을 목적으로 하진 않을 것이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세계, 이것을 현실로 끌어내며 고정 관념의 오류를 찾게 한다.

피치트리 센터의 두 번째 벽화. 리빙 월의 아티스트 1010과 ICART, 애틀랜타 작가 조지 F 베이커(George F. Baker III)가 어시스턴트로 참여하여 완성했다. 

호파레(Hopare)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알렉상드르의 작품 ‘심포니’.

Peachtree Center X 1010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갈 준비가 됐나요?”
도시 노동자가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머무는 오피스. 특급 전망까지 갖췄다면 커다란 행운이다. 애틀랜타 피치트리센터는 오피스와 쇼핑몰이 들어선 대형 복합 단지다. 대부분의 건물을 건축가 존 C. 포트먼 주니어가 설계했다. 이곳의 오피스 타워 여섯 곳에 출근하는 이들이라면 단순히 도시 전망말고도 신비로운 세계를 매일 접하게 됐다. 지난해 플라자 뒤편에 있는 빌딩 옥상에 멋진 페인팅이 탄생한 것. 작품의 이름은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다. 특별한 형태와 색채, 명암을 배합한 구조로 현실을 떠나 마치 4차원으로 들어가는 듯한 이 작품은 아일렌 파르치(Eileen Parcie) 주도로 완성되었다. 아일렌 파르치는 1010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독일 작가다. 캔버스와 벽화, 평면과 입체 사이를 오가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능한 그는 지난 10년간 반복적이고 기이한 형태와 색감, 착시 효과를 동반한 신비한 작품을 선보여왔다. 피치트리센터에게 벽화 프로젝트는 처음이 아니다. 전 세계 아티스트와 벽화 작업을 주도하는 리빙 월(The Living Wall)과 ICART와 함께 초대형 벽화를 진행한 바 있고, 프랑스 스트리트 아티스트 알렉상드르 몽테이로(Alexandre Monteiro)는 피치트리센터 애비뉴에 다분히 추상적인 인물화를 남겼다. 이제 건축물은 애틀랜타 사람들에게 낯선 차원으로 인도하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었다.

코브레가 그레타 툰베리 작업을 끝낸 후 벽 앞에 섰다.

the Native Sons X Cobre
“지금 당장 멈추세요”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어른보다 많은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이름으로 기후위기 운동을 시작한 10대 소녀 툰베리의 얼굴이 지난해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도심 한복판에 새겨졌다. 가로 9미터, 세로 18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인물 벽화는 니뇨 드 코브레라는 활동명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 출신 앙드레 페트로셀리(Andrés Petroselli)의 작품이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렘브란트와 같은 거장들을 흠모해 캔버스보다 다양한 질감의 벽에 그림을 그리며 20년을 활동해온 작가다. 세밀하고 인상적인 인물 표현은 그의 자랑이다. 샌프란시스코 NGO 단체 One Atmosphere에서 추진한 이 기념비적인 프로젝트는 코브레의 재능 기부로 이뤄졌다. 그는 도시 곳곳을 다니며 작업에 적합한 건물 외벽을 찾았다. 그렇게 찾은 곳이 바로 메이슨가에 위치한 네이티브 선스였다. 1800년대 후반에 지어진 이 건물은 현재 나이트클럽과 행사장 등이 들어서 있다. 코브레가 건물 북쪽 벽면 전체를 그레타의 모습으로 메우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작업 기간과 더위는 미션을 고되게 했다. 여기에 환경 메시지를 전하는 작업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스프레이 등 각종 벽화 작업의 요소가 환경 오염을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오명에 맞서 남다른 각오를 해야 했다. 70%를 아크릴 물감으로 수작업하고 나머지를 탄소발자국을 줄인 유럽산 친환경 스프레이를 사용한 것. 또 작업 기간 내내 도보 이동을 하고 전기자동차나 스쿠터를 이용했다.

시실리 고등학교의 정원에 입힌 그라피티 작업 Ragusa Sun 2018

호주 FORM and CBH 그룹과 작업한 Western Australia Silos 2015

헨스가 완성한 툴루즈 그라피티 전경. 

Toulouse X Hesnse
“툴루즈는 그라피티의 도시예요”
미국 애틀랜타 출신 알렉스 브루어(Alex Brewer)는 지난해 프랑스 툴루즈에 있는 건물 외벽 작업을 끝냈다. 툴루즈시가 애틀랜타시와 파트너십을 맺고 2019년 로즈 베통 비엔날레(Rose Beton Biennale)를 위해 5개의 거대한 벽화 작업을 추진하며 탄생한 작업이다. 다분히 예술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알렉스는 13세 때부터 헨스라는 닉네임으로 스트리트 아트 세계를 펼치며 30년 가까이 독보적인 추상 미술 세계를 구축했다. 미술관과 갤러리 전시를 포함해 작품 또한 평면과 설치, 조소 등 다양한 형태로 전개하고 있다. 곡선과 직선으로 이뤄진 면들이 만나고 강렬한 색채가 어우러진 그의 벽화에서는 천진하고 순수한 느낌마저 전해진다. 테라코타로 지은 오래된 건물들이 늘어선 툴루즈 거리는 이 작가의 경쾌한 에너지를 얻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비엔날레 총감독 틸트는 1980년대 이후 툴루즈의 유전자에 뉴욕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된 스트리트 아트가 있었다며, 1990년대 재능 있는 작가들이 펼친 그라피티 작품, 수도원의 거리를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블룸버그 런던 내부 벽화 2018 

렐라이스 산 마우리치오 성당 내 작업한 Wall Drawing in Pastel 

Relais San Maurizio Chapel X David Tremlett
“파스텔 빛 중세로 여행하시겠어요?” 
이탈리아 피에몬테의 쿠네오 지방에 있는 산토 스테파노 벨보의 중세 마을은 17세기에는 일대가 수도원이었다. 이 지역은 랑게(Lange)의 구릉지와 인접해 있는데 역사와 문화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었고, 현재는 비옥한 와인 생산지로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곳에 렐라이스 산 마우리치오 예배당이 있다. 작가 데이비드 트렘렛은 토리노 누아르 갤러리와 함께 이 성당의 벽화 작업을 진행했다. 성당은 오랜 시간에 따른 풍화로 시간이 축적된 빛을 품고 있었다. 조토,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만드레아 만테냐 등 과거 이탈리아 거장들이 남긴 프레스코화 천장에 둘러싸인 작가에게 주어진 벽은 천장과 바닥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잇는 작업이 되었다. 천장의 프레스코화를 향한 그의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아트워크에는 직사각형, 원, 사다리꼴, 삼각형이 서로 결합했다. 건축물이 품고 있는 빛깔에 흡수될 수 있도록 창백하고 예리한 색감을 사용했다. 작가는 런던의 왕립예술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1970년대 초 런던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작업을 하고 있다. 테이트 모던의 벽화 작업 등 현대미술 작가로도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축적이 가능한 소유의 형태라기보다 그 반대다. 여행을 통해 이뤄진 작업이 세계 곳곳에 있으니 그의 흔적을 따라 여행해보자. 

더네이버, 건축,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