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영국 모던 주택 디자인 프로젝트

인테리어 디자이너 부부가 영국 모던 주택의 새 주인이 되었다. 1950년대 건축 당시 모습으로 집을 복원하기로 결심한 부부의 디자인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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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리빙룸과 작은 응접실이 있는 메자닌. 미드센트리 모던 디자인의 단순 미학을 엿볼 수 있다.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플로팅 계단은 집이 지어질 당시 그대로다. 리빙룸의 라운지 체어는 노르웨이 가구 디자이너 헨리 발터 클라인(Henry Walter Klein)이 1960년대에 제작한 빈티지다.         

 

“이 집은 수많은 별명을 갖고 있어요. ‘글라스 하우스’, ‘우드 하우스’ 그리고 ‘제임스 본드 하우스’라는 멋진 칭호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이름이 있죠.” 1955년 지어진,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미드센트리 모던 하우스로 손꼽히는 이 집은 ‘판리 헤이(Farnley Hey)’라는 본명이 있음에도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 제각각이다. 회자되는 별명이 많아질수록 집에 대한 자부심이 더해진다 말하는 이 집의 소유주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리스천 하비(Christian Harvey)와 빅토리아 데이비스(Victoria Davies)다. “완공 당시 건축계 평단은 물론 이웃 사람들로부터 우주선이 내려앉은 것 같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해요. 지금도 그렇게 보이나요?” 빅토리아의 설명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본다. 유리와 나무로 마감한 직사각형 박스 2개를 쌓아 올린 판리 헤이는 당시 박공지붕의 석조 오두막이 대부분인 이 산골 지방에서는 본 적 없는 예외적인 변종임에 틀림없었을 터.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지금에는 전형적인 모던 건축물에 불과할 뿐, 우주선처럼 낯선 신비함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영국에서 경치가 아름답기로 명성이 자자한 웨스트 요크셔(West Yorkshire)에서 드라마틱한 페나인(Pennines) 산맥의 풍광을 집 안 어디서나 조망할 수 있게 설계한 건축가의 선구안이 현재까지 유효하다는 것과, 요즘 설계했다고 해도 믿을 만한 집이 60여 년 전에 지어졌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2층 메자닌은 아담한 응접실로 꾸몄다. 소파와 테이블은 기존 집주인이 물려주고 간 스칸디나비안 빈티지다. 소파 뒤쪽에 임스 라운지 체어를 놓아 원하는 방향을 향해 전망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다이닝 한쪽 벽면을 이 지방 전통 건축 자재인 요크 플래그 스톤으로 마감했다.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사이드보드에는 이 집의 본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이 놓였다. 

 

판리 헤이는 영국 모던 건축의 선구자라 불리는 건축가 피터 워머슬리(Peter Womersley)가 자신의 형 존 워머슬리(John Womersley)의 결혼 선물로 설계한 집이다. 원래 1952년에 설계되었지만 건축 개정법이 확정된 1954년에 착공됐고, 완공 1년 후인 1956년 증축을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 산으로 둘러싸인 약 6만 m2의 잔디밭 위에 자리한 판리 헤이는 당시 미국에서 유행한 전후 모더니즘 건축이 영국에서 구현된 초기작이다. 1958년 ‘영국 왕립 건축가 협회(RIBA, 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로부터 근대 건축의 시조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의 영향을 받은 가장 좋은 표본이 되는 모던 주택’, ‘영국에서 가장 가볍고 긍정적인 밝은 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브론즈 메달을 수상한 바 있다.    
존 워머슬리는 1970년대까지 이곳에 살았고, 이후 엔지니어인 조 바티(Joe Battye)에게 집을 넘겼다. 

 

 

집이 지어질 당시의 마호가니 벽면과 여러 차례  기름칠을 해 표면이 잘 길들여진 플래그 바닥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선사하는 서재. 소파는 영국의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 디자이너 로빈 데이의 포름 유닛(Form unit)으로 1960년대 빈티지다. 

 

벽과 파티션 없이도 자연스럽게 공간이 분리되는 집의 특징이 엿보인다. 벽면을 따라 커브를 그리며 뻗어 나온 내부는 붙박이 책상을 놓아 작업실로 꾸미고 반대편은 소파와 테이블을 놓아 응접실을 만들었다.  

 

두 번째 소유주가 사망한 2013년, 판리 헤이는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온다. 건축적으로 기념비적인 주택임에도 도시와 너무 먼 입지 때문에 2년간 매매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덕분에 우리가 집을 소유하는 행운을 얻은 셈이죠.” 요크셔 중부 도시인 리즈(Leeds)에서 상업 공간 전문 인테리어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크리스천과 빅토리아는 4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다. 현재 그들은 이 주택을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살고 있다.

 

 

메자닌 아래에서 바라본 맞은편 거실은 바닥에서 2층까지 이어지는 전면 창과 높은 천장 덕분에 이 집의 첫 소유주 가족으로부터 ‘댄스 플로어’라는 별명을 얻었다. 부부가 앉아 있는 소파는 영국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 디자인 거장 로빈 데이가 1964년에 만든 포름 유닛으로 오리지널 빈티지다. 

 

침실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자리한 작업실 코너. 붙박이 책장은 이 집이 완공된 당시부터 그대로 전해져 오는 디자인이다. 

 

2개 층에 걸쳐 4개의 침실과 독립 서재, 주방과 다이닝룸 그리고 2개의 리빙룸으로 구성된 판리 헤이는 각 층이 메자닌으로 구성된 덕분에 전체적으로 마치 4개 층으로 이뤄진 저택처럼 느껴진다. 공간은 벽과 문 대신 기둥과 선반 유닛에 의해 나뉘고, 계단과 바닥 높이 차이로 분리되면서 개방적인 구조를 유지한다. “심지어 마감재에 의해 공간이 구분되기도 해요. 이 지방의 전통 석재를 사용한 다이닝룸 바닥과 회색 벽돌을 시공한 벽면이 있는 거실, 마호가니 우드 붙박이 책장을 설치한 작업실 등 특정 마감재 몇 가지가 각 공간에 나름의 법칙을 토대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죠.” 모던 주택 인테리어의 관건이라 할 수 있는 오픈 플랜의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이 집의 첫 소유주 가족으로부터 ‘댄스 플로어(Dance Floor)’라는 별칭을 얻은 거실이다. 1층에 자리한 거실은 메자닌이 있는 영역과 없는 곳으로 나뉘는데 그중 메자닌이 없어서 2층까지 뻥 뚫린 거실은 처음 집을 지을 때부터 가족이 흥겨운 파티를 즐기도록 설계했단다. “음악을 틀고 라이브 연주도 녹음할 수 있는 하이파이 시스템을 설치해둔 수납장도 남아 있어요. 1950년대 유럽에서 가장 큰 독일 라디오 제작사 그룬디히(Grundig) 라디오는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크리스천과 빅토리아는 워머슬리 가족처럼 이곳에서 댄스파티를 즐기진 않지만 이 집의 첫 소유주가 그랬듯 댄스 플로어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부부는 이 공간을 위해 영국의 미드센트리 모던 가구 디자이너 로빈 데이(Robin Day)가 디자인한 소파를 구했고, 여기에 앉아 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거실 소파는 이 집과 동시대에 탄생한 영국 디자인으로 매치하기 위해 신경 써서 구한 빈티지예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집의 가치를 잘 아는 한 아무거나 들일 수 없었으니 말이죠.” 크리스천과 빅토리아는 판리 헤이를 구입할 때 보수할 부분은 있겠지만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전 주인이 엔지니어로서 집을 세심히 돌봐왔고 찰스 레이 임스와 아르네 야콥슨 등 미드센트리 모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가구를 놓고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 집에 집중적으로 적용된 업그레이드의 흔적은 부부의 예상을 웃돌았다. 예를 들면 원래 목재 프레임 슬라이딩 도어였던 것을 알루미늄으로 교체한 문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던 것. “전 주인인 바티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관심이 많았던 거 같아요. 알루미늄 프레임은 1980년대 당시 막 나온 혁신적인 것이었는데, 아마도 바티는 이를 꼭 적용해보고 싶었을 거예요.” 문제가 되는 것을 모아놓고 보니 재미있게도 그 대부분은 처음 이 집을 지을 때 없었던 요소였고 부부의 개조 작업은 오히려 이런 것을 제거하는 ‘복원’ 프로젝트가 되었다. 그리고 집을 복원한 후 입주하려던 계획을 바꿔 이곳에 살면서 집을 복원해 나가기로 했다. 

 

 

디자이너 부부가 가장 아쉽게 생각하는 주방. 마름모 패턴 타일, 포대 같은 질감의 합성수지 패널로 마감한 주방 가구는 이전 집주인이 만든 것이다. 디자이너 부부는 이 집의 오리지널 주방 사진을 참고해 처음 모습대로 복원할 계획이다. 다이닝 테이블은 주인 부부가 디자인한 것이고, 의자는 아르네 야콥슨 디자인 ‘시리즈 7’ 탄생 60주년 한정판으로 나온 것이다. 

 

전면 유리창에 세면대를 설치한 세련된 욕실. 프라이버시를 위해 창문은 불투명하게 처리했다. 

 

개방 구조임에도 아늑한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 창문을 가리는 파티션 겸 수납장이 되는 헤드보드를 설치한 침실. 침대에는 1930년대 웨일스 지방 블랭킷을 놓아 복고적인 감성을 더했다.          

 

“저희 눈에 가장 시급했던 것은 외형 복원이었습니다. 그중 바로 전 소유주가 만든 유리온실은 건축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흔드는 요소였죠.” 원래 이 집은 건물 한쪽 끝은 바닥에 고정되고 다른 끝은 받쳐지지 아니한 상태로 떠 있는 캔틸레버 형식으로 지어졌는데, 두 번째 소유주는 그 빈 공간에 유리창을 덧대 온실을 만들었다. 현재 외관의 일부를 덮고 있는 PVC 패널 역시 목재로 교체해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예정이다. 한편 실내 복원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다. “주방은 처음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집의 예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니 특히 주방 가구와 타일은 많이 변형된 상태였습니다.” 빅토리아는 옛 주방 사진을 참고하며 고증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처음 설계자가 의도했듯 매우 개방적이고 심플한, 모던 주택의 라인과 일치하는 주방이 펼쳐지길 기대하며 말이다. 

 

 

건축 당시 혁신적인 모습으로 주목을 받은 판리 헤이 주택 외관.   

 

최근 부부에게는 복원 작업을 더 신중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영국 건축계에서 건축가 피터 워머슬리의 디자인 세계가 재조명되면서 그의 초기작인 판리 헤이는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실제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난 것. 지난 1998년, 역사보존위원회 잉글리시 헤리티지(English Heritage)에서 판리 헤이를 제2차 세계대전 후 지어진 가치 있는 개인 주택으로서 보존 가치를 인정해 상위 등급(Grade II)에 올린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집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는 건 영국 최초의 모던 건축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뜻이잖아요? 덕분에 저희 부부는 여기에 산다는 게 자랑스럽고, 이런 느낌을 디자인에 열정이 남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합니다.” 크리스천과 빅토리아는 집을 복원하는 데 조바심을 내거나 ‘오버’하지 않을 생각이다. “여기 살면서 생긴 버릇이 있어요. 자연 채광이 잘 들어오는 자리를 찾아다니며 생활하는 건데 이를 4년간 반복해보니 이제야 시간, 날씨, 계절에 따라 각 공간의 의미가 파악되더군요.” 이곳에 살면서 하나둘 알아가는 판리 헤이의 의미, 이를 진정성 있게 복원해가는 것은 이제 부부가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꿈이자 소명이 되었다.   

WRITER LEE JUNG MIN

 

 

 

더네이버, 공간, 인테리어, 판리 헤이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TARAN WILKHU(Photofo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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