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새로워라, 해치

보이지 않는 세계에 기대며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상상 속 존재인 해치는 과거 공정함을 심판하고 화기나 재앙을 막아주는 행운의 존재였다. 최진호 작가는 해치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며 동시대 사람들에게 행운과 희망, 소박한 기쁨을 건넨다.

2020.01.01
페이스북 트위터 링크

주석으로 제작된 경주 해치석, 60×50×33cm, 2018

 

해치는 중국과 한국이 공유하는 전설의 존재다. 중국의 해치는 강한 맹수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반면 한국의 해치는 친근한 모습으로 차이를 보인다. 중국 한나라 때 양부가 지은 책 <이물지(異物志)>에는 해치에 대해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으로서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품행이 옳지 못한 사람을 가려 뿔로 공격한다”라고 기록돼 있다. 또 조선 시대 민속 해설서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동물 그림을 그려 집 안 구석구석에 붙여 액운을 쫓았는데 호랑이 그림은 대문, 개는 광문, 닭은 중문, 해치는 부엌에 붙였다고 전해진다. 몸통에 난 비늘을 토대로 물짐승임을 짐작할 수 있는 해치가 불을 막아주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조선 시대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도성을 세울 때 남쪽에 자리한 관악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센 화기를 막기 위해 해치를 경복궁 앞에 세웠다는 얘기도 있고, 궁문에 들어서기 전 정직하고 경건한 마음가짐을 갖추라는 뜻에서 입구 양쪽에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사람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적 세계에서 사람들은 봉황, 용 같은 상상 속 동물에 기대왔다. 가까운 일본에는 사자와 개의 중간쯤으로 보이는 고마이누가 있고, 싱가포르에는 사자 머리와 인어 꼬리를 한 머라이언이 있다. 뿔을 단 유니콘은 미국에서 여전히 사랑받는 존재가 아닌가.


우리에게 영적인 세계의 수호자였던 해치가 서울 곳곳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간 관심은 적었다. 광화문에 우뚝 자리한 해치의 주변을 무수히 지나치며 멈춰 서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언제였을까. 고백하건대 해치로 작품을 만드는 최진호 작가를 만나기 전까지 해치에 대해 새로이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신화 속 존재로만 생각했고 존재 이유마다 조금씩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또 창작이 가능한 존재인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최진호 작가는 지난해 11월 관훈갤러리에서 개인전 <비움과 채움>을 열며 다양한 해치 상을 전시했다. 앉아 있는 모습도, 형태나 크기도 다르고, 어떤 재료를 사용했느냐에 따라서도 해치 작품은 저마다 다른 느낌을 건넸다. 재미있는 것은 서울시 곳곳에 남아 있는 과거의 해치들이 다 똑같은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광화문 해치는 화기를 막는 소임을 나타내듯 몸뚱이 털을 마치 불꽃처럼 표현했고, 창덕궁 금천교 및 홍예에 설치된 해치는 물길 따라 궁으로 침입하는 악귀를 막는 역할을 담당해 물길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해치의 표현에 엄격한 규칙은 없었던 듯 지금도 얼마든지 새로운 모습으로 창작할 수 있다. 사실 궁궐이나 박물관에서 익숙하게 마주치는 해치를 화이트 월 공간에서 만나는 일 자체가 드문 일이다. 조사해보니 해치를 모티프로 작업하는 다른 현대 조각가를 찾지 못했다. 관훈갤러리의 개인전은 끝났고, 인근 나인트리 프리미어 호텔에 위치한 문화 공간 스페이스 오에서 2020년 2월까지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예정에 없던 연장전이다. 관훈갤러리에서 작가의 해치 작품을 본 컬처 스페이스 오 관계자도 에디터처럼 마음이 동했던 모양이다. 

 

 

지노 공간 작업실은 파주에 있다. 작업실 마당에 자리한 대형 해치들. 

 

해치와의 시간
해치에게 가장 감흥을 많이 받은 이는 최진호 작가 본인일 것이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고 오랜 시간 조각가로서 활동해온 그가 처음부터 해치 작업을 했던 것은 아니다. 졸업 후 개인전을 처음 열 때만 해도 작가의 주요 관심은 인물상이었다. 본인의 성향처럼 편안하고 기분 좋은 표정의 돌 조각상을 발표한다. 화순 운주사에서 만난 소박한 불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정겨운 돌 초상들이다. “운주사에서 돌 조각을 봤어요. 천불천탑이 있는 곳이죠. 잘 깎은 건 아닌데 돌 조각들이 툭툭 놓여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더라고요. 그때 돌 조각에서 매력을 느꼈어요.” 공격적이거나 분노와 같은 나쁜 감정이 배제된 온화한 초상 작품을 선보이다가 해치를 만났다. “1989년 즈음 졸업하고 3~4회 정도 개인전을 치른 후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작업할 것인가지 고민했어요. 캄보디아, 이스터섬 등 조각으로 유명한 곳들을 가봤어요. 컨템퍼러리 아트라고 해도 한국의 고유한 것들이 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한 번은 호주 대사의 부인이 한국 해태상에 대해 질문해온 적이 있어요. 중국에서 오래 근무한 분이셨죠. 화기가 강한 관악산으로부터 한양을 보호하기 위해 도성에 세운 상상의 동물이라는 등 자료를 찾다 보니 매력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해치를 주제로 작업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구상하기 시작하다가 해치에게 푹 빠졌어요.” 

 

 

해치는 돌로만 제작하지 않는다. 콘셉트에 따라 대리석, 브론즈, 철재 등 다양한 소재와 형태로 제작해 느낌이 다 다르다. 

 

해치를 붓으로 그린 스케치들. 

 

지노 공간 작업실은 파주에 있다. 지금은 작고한 화백이 지은 건물로 중간에 미국 작가 부부가 살다가 현재는 최진호 작가가 사용하고 있다. 

 

파주의 한적한 주변 환경에 우뚝 솟은 작업실 지노 공간 앞에서도 커다란 해치상들이 반기고 있다. 그가 고안해 제작한 해치 작품에는 대표적으로 2009년 서울특별시청 앞의 ‘플라워링 해치(Flowering Heichi)’와 2010년 건립 100주년을 맞은 조선호텔서울 입구 양옆에 세운 해치가 있다. 2014년에는 네덜란드 헤이그 국제재판소 입구에도 그의 작품이 놓이는 영예도 안는다. “당시 외교부에서 기증 작품을 공모했어요. 조선 시대 사헌부 수장인 대사헌에게 해치관을 쓰게 했고, 관복의 흉배에도 해치가 사용됐죠. 해치가 옳고 그름을 판단해서 옳지 못한 사람을 재판했다는 기록이 있어 법의 역사와도 연관이 있으니 의미 깊은 일이었죠.” 당시 헤이그에 작품 관련해 첫 협의를 하러 갔는데 이준 열사가 떠올랐다고 했다. “그가 헤이그에 가서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작고한 것을 생각하며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협의를 마치고 거리를 걷는데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더라고요. 조각을 하면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일이 어려운데 참 고마운 직업이라고 생각했죠.” 작가는 서울 곳곳에 있는 중국에서 기원한 해치들을 바꾸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사람들이 해치에 대해 잘 모르니, 어떤 것이 중국 것인지 모를 수 있다. 언젠가는 안중근 의사의 흔적이 있는 하얼빈역에도 해치상을 두고 싶다고 했다. 물론 이건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만 또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해치의 모습은 작가의 콘셉트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띤다. 

 

화강석으로 제작된 돌호랑이. 

 

앞서 언급했듯 해치의 생김새는 하나가 아니다. 과거로부터 전해오는 해치상들이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모습을 달리했다는 것은 작가에게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선물한다. 조선호텔이 건립 100주년을 기념해 해치상을 의뢰했을 때, 그는 100이라는 숫자를 꽃줄기로 응용해 형상화했다. “이세옥이라는 석공이 만든 광화문 해치는 암수 두 마리 얼굴이 조금 달라요. 저 또한 해치를 구상할 때 콘셉트에 따라 어떤 부분을 과장하거나 축소하고, 은유적인 표현을 더하곤 하죠.” 서울성곽을 콘셉트로 완성한 해치의 등에는 성곽 모양을 얹고, 어떤 해치에는 탑을 올렸다. 구불구불한 몸통의 패턴 또한 해치마다 달리한다. 또 그가 제작한 해치들은 광화문에 있는 것보다 머리가 작고 몸통이 길다. 어떤 해치는 몸을 웅크리고 소심한 표정을 짓고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미소를 띤 온화한 얼굴들을 하고 있다. 해치의 신화적인 면뿐 아니라 민속적이고 해학적인 속성을 갖춘 모티프로서 정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1988년 모델라인 16기로 모델 활동을 겸했어요. 전혀 다른 분야 같지만 연관성이 있어요. 모델이 가장 좋은 포즈로 감정을 끌어내잖아요. 조각도 비슷해요. 그런 방식으로 저만의 느낌과 색깔을 넣으려고 노력해요.” 

 

 

2013년 제작한 후로 남다른 애정을 둔 브론즈 작품 ‘어머니의 손’.

 

해치는 돌로만 제작하지 않는다. 재료와 형태 모두 현대적인 시각으로 해석한 작품 ‘화려한 해치’(2012) 옆에 선 최진호 작가.  

 

다양한 재료로 인물을 형상화한 작품이 작업실 곳곳에 놓여 있다.  

 

작가의 인물상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온화하고 따뜻하다. 초기에 선보인 초상 작품뿐만 아니라 국내 주요한 곳에 공공미술로 세워진 조형 작품도 맥을 같이한다. 경기도 안산역, 강원도 양양체육관, 동대구역, 제주 등 지역과 테마에 따라 유의미하게 세운 현대적인 조형 작품들이다. 언젠가 오가며 접했을 그의 대형 작품에는 주로 행복을 기원하는 웃음과 사랑 모티프가 주를 이룬다. 작가 본인으로부터 출발한 메시지다. 관훈갤러리에서 진행된 전시에 <비움과 채움>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를 들으니 작가가 살아오며 정립된 인생관이 전해졌다. 지난해 여름 작가 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애잔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존재로 채워짐을 느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여러 가지로 아쉽고 마음에 빈 공간을 느꼈는데, 막내의 어린 시절 사진을 들여다보니 허전함이 채워지는 듯했어요. 시간에 따라 세대가 바뀌는 일이 자연스럽죠. 비워지고 채워지는 반복의 과정이라는 생각도 했고. 최근 이집트를 여행하는데 아주 묘하게 늪에 빠진 듯한 기분을 느꼈어요. 무척 긴 역사 속에 눈길을 두다 보니까, 지금 살아 있는 모습이 바닷가의 아주 작은 모래 알갱이 같은 존재더라고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죠.” 돌도 오랜 시간 풍화되어 변화하겠지만, 인간만큼 생명이 짧지는 않다. 자연을 곁에 두고 작업하는 작가이기에 겸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해치라는 존재가 그렇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손 작품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분도 뵀어요. 제가 만든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죠.  또 해치는 후대에까지 영향을 주는 작업이기에 제가 아무렇게나 만들 수가 없어요. 사실 그라인더와 같은 기계적인 터치가 들어간 결과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손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하죠. 또 어떤 치열한 흔적보다 문화의 향기가 피어나는 따뜻한 존재로 만들고 싶어요.”  

 

최진호 개인전 
인사동 나인트리 프리미어 호텔 12층 루프톱에 위치한 문화 공간 스페이스.오에서 최진호 작가의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해치 작품과 함께 조형 작품을 함께 전시 중이다.  
기간 2020년 2월 2일까지 
장소 스페이스.오 02-737-4222
지노공간 www.zeeno.net

 

 

 

 

더네이버, 아트, 비움과 채움, 최진호 작가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김태종

아이매거진코리아닷컴, 더네이버, 동방유행
©imagazinekorea.com,
©theneighbor.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