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내 노래를 들어줘

한국 댄스 음악의 퀸, 열일곱 살에 데뷔한 아이돌의 시초, 선구적인 해외 활동 뮤지션… 과거에 이룩해놓은 설명을 다 젖혀두더라도 현재 가수 김완선은 완전하다. 여전히 노래하고 스스로가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으니까.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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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SGEE COLLECTION 글리터 코팅 처리된 레이스가 돋보이는 시스루 드레스.

 

SON JUNG WAN 양털 재킷. MATIAS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싱글 이어링.

 

작고 가느다랗지만 탄탄한 체구. 여린 음색으로 천천히 말하는 디바를 앞에 두고 적잖이 긴장했다. 그녀가 펑키한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촬영 내내 잔잔한 곡을 틀었다. 힘을 뺀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3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거쳐 1986년 열일곱 살에 첫 앨범 <오늘밤>을 낸 후로 그녀는 여전히 가수 김완선으로 살고 있다. 일찍 이룩한 것들이 많아, 현재의 음악적 열망을 종종 붙들고 있을지언정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는 굳건하다.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의 해외 활동과 은퇴기를 거쳐 새롭게 음악을 시작한 지 8년의 해가 저물어간다. 더 노련해지고 단단해진 뮤지션은 후배들과 협업해 상생의 기회를 찾고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 음악으로 감동을 주는 일도 놓치지 않는그녀. 끊임없이 변신해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찾아가려는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 시간이었다.   

 

 

FENDI 로고를 수놓은 보디슈트, 스카프 벨트, 시스루 원피스. GIANVITO ROSSI 골드 체인 장식 스트랩 샌들. BVLGARI 로즈 골드에 루벨라이트와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이어링. 블랙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근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상을 받은 소식을 접했어요. 2019년 좋은 소식이 많았죠? 올해는 연초부터 좋은 일들이 생겼어요. <불타는 청춘>의 콘서트가 반응이 좋았고, 제가 출연한 다른 예능 프로그램도 두루두루 괜찮았어요. 최근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뮤직비디오가 기대 이상으로 인기를 얻었고요. 올 한 해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꾸준히 해온 활동이 올해 결실을 맺은 것이 아닐까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1990년 5집 앨범 수록곡이에요.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에버랜드 광고 프로젝트로 진행한 거예요. 콘셉트가 삐에로인데 제작진 쪽에서 ‘삐에로는 김완선이지’ 하면서 아이디어를 냈대요. 오히려 좀비가 출연하는 콘티에 제가 거절할 줄 알았대요. 사실 600만 뷰를 넘길 정도로 반응이 좋을지는 몰랐죠.

비주얼 세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이 아닐까요. 컴백 후 활동하면서 젊은 세대와 문화적 차이를 느끼지는 않았나요? 차이가 많이 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뮤직비디오를 본 10대들이 나를 알아보고 제 공연에서 환호성을 질러 깜짝 놀랐죠. 웬일이래? 하고. 사랑받으면 좋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떤 곡이든지. 제가 하는 퍼포먼스나 음악에 반응해주면 그저 기뻐요. 젊은 친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고. 이번 기회에 제 곡을 많이 들어주면 좋겠어요.

 

한편으론 김완선이 가요 프로그램에서 처음으로 1위를 한 곡을 리바이벌한 것이 지금의 활동 흐름에선 다소 벗어난 듯했어요. 과거에 기대고 싶은 마음도 있겠지만요. 기본적으로 저는 안 해본 것을 시도하길 좋아해요. 과거의 음악에 기댄다… 음, 전혀 그렇지 않아요. 물론 한번은 과거 제 노래를 다시 편곡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과거에는 전혀.

 

GOLDEN GOOSE 실키한 원피스. SAM EDELMAN 아이보리 롱부츠. 



뮤지션들과 컬래버레이션을 계속하고 있어요. 특별한 음악적 영감을 준 아티스트가 있을까요? 인디 음악 신에서 활동하는 친구들, 신인 작곡가들과 작업하고 있어요. 유명 뮤지션은 이미 많은 곡을 갖고 있어요. 굳이 나까지 함께 작업할 필요가 있을까 싶죠. 저는 개성이 강하고 색깔 있는 곡을 좋아하는데, 그런 음악적 영감을 그들로부터 얻죠.  그들은 저를 통해서 음악 활동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지금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어요? 우연치 않게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몰렸어요.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이야기해주세요> 프로젝트의 음반에 참여하고 있어요. 이미 CD가 두 번 발매되었고, 이번이 세 번째인데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을 발표하려고 해요. 뮤직비디오도 찍고. 또 한 가지는 제주도 미혼모들이 머무는 센터를 후원하기 위해 구본승, 최재훈과 함께 앨범을 만들고 있어요. 판매 수익금으로 그들을 후원하는 프로젝트예요. 이 외에도 신곡 두 곡을 녹음했죠.
 

‘Super Love’로 컴백한 것이 2011년도니까, 벌써 8년이 지났더라고요. 그간 저 혼자 음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드백이 없다 보니,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 걸까, 종종 고민했죠. 그러다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을 끝냈죠.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계속 작업해 나가자고.   

고백하자면, 저 또한 김완선이 많은 곡을 만들고 발표했다는 것을 잘 알지는 못했어요. 제 노래를 들으세요. 좋은 곡 많아요. 노래를 찾아서 듣는 연령대와 저를 아는 연령대가 다른 거죠. 제 노래를 듣던 세대는 제가 TV에 나오면 아, 김완선이네 반갑네 정도지, 신곡을 찾아 듣지는 않죠. 젊은 친구들이 제 음악에 관심이 있는 것 같진 않아서 저 혼자 음악을 한다고 느낀 거예요. 20곡 정도 발표했는데 내년에는 이 곡들을 모아 LP 앨범을 빵, 하고 낼 계획이에요. 좀 들어라, 하고. 

컴백한 8년 전과 지금 음악 활동을 비교한다면요? 이전 공백기가 5~6년 정도 돼요. 음악계도 변하고 낯설어서 다시 시작할 땐 시행착오를 좀 겪었죠.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요. 곡을 많이 만들었으니까. 그러면서 자신감도 생겼고.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고, 자유로움도 얻었죠. 지금이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땐.
 

 

FENDI 실키한 재킷, 팬츠. FAYEWOO 러플 디테일 톱. 1064 STUDIO 몽환적인 컬러의 아크릴 이어링.

 

지금 대중에게는 김도균, 장호일, 최재훈, 김광규의 내시경 밴드와 함께 하는 김완선이 더 익숙할지도 몰라요. <불타는 청춘>과의 오랜 인연을 듣고 싶어요. 굉장히 멋있고 베일에 가려진 듯한 신비로움이.. 다 깨져버렸죠?


깨졌다기보다 자연스러워졌죠. 과거엔 그런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까요. 처음에는 출연 제안을 거절했어요. 계속 거절하기 미안해서 한두 번 출연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힐링이 되더라고요. 사람들과 여행을 하고 아름다운 장소를 볼 기회가 주어지니까. 출연 초기에 많은 위안을 받았어요.

타고난 것이 많은 사람이지요? 그렇죠.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예술적인 DNA가 저보다 더 뛰어난 분이세요. 옛날 분들이라 이런 일을 하지 않았던 것뿐이고.

오랫동안 춤을 췄지만, 세월을 이기기 어렵죠. 그래도 여전히 탄력적인 몸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요즘은 춤도 안 춰요. 제가 생각보다 키가 작고 몸무게가 적게 나가요. 또 피자 같은 걸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 할 정도로 서양 음식을 안 먹고 소식하는 편이에요. 이제는 진짜 운동을 해야 하는데… 어휴. 제게는 어려운 숙제예요.

뮤지션으로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요? 저는 딱히 노력하고… 그런 부분은 없어요. 제 일을 할뿐이에요. 노래 한 곡 발표하면 다음 곡을 또 만들기 시작하고. 그 곡이 새롭게 느껴지면 좋은 거고. 그런데 일단 많은 사람이 들어야죠. 알아줘야죠(웃음).

 

 

BELL&NOUVEAU 깃털 디테일이 돋보이는 원피스.  


댄스곡을 떠나 발라드 장르에도 남다른 애착이 있나요? 1992년 은퇴하기 직전에 발표한 곡 ‘애수’가 발라드였죠. 사실 저는 발라드를 좋아하지 않아요. 리듬이 있는 곡을 좋아하는 편이죠. 그렇다고 빠른 곡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발표할 곡 중에 발라드가 두 곡 있어요. 딱히 이게 더 좋다 싫다 그런 건 없고. 그때 상황을 보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거죠.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추던 사람이 한곳에 앉아 그림을 그린 적도 있죠. 하와이에 머물 때요. 그 시간이 궁금해요. 4~5시간이 훅 지나갔어요. 저도 깜짝 놀랐죠. 제가 아직도 이렇게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구나. 재미있어요.


지금도 종종 그림을 그리나요? 집에는 어떤 그림이 있을까요? 요즘은 안 그려요. 그런데 좋은 취미여서 언젠가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지금은 여러 프로젝트 때문에 그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예전 그림을 몇 점 가지고 있는데 조금 조잡해요(웃음). 다음에 잘 그린 거로 보여드릴게요.

아시아 지역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했죠. 다시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요? 글쎄요.  이 나이에 해외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외국에서 산 기간이 7년 정도 돼요.  일과 상관없이 많은 것을 배웠죠.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호기심이 충족되긴 했어요. 

2005년 9집 앨범 <리턴>에 수록된 ‘세븐틴’은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가사로 화제를 모았죠. 최근 발표한 곡 중 자신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노래는 없나요? 3년 전에 <오즈 온더 문>(2016)이라는 저예산 독립 영화에 출연했어요. 촬영 현장도 열악했고, 편집도 오래 걸렸죠. 올해 처음 영화제에 출품했으니까. 본래 시나리오 내용이 그렇진 않았는데, 결국 제 고민을 담게 됐죠. 저는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인데 왜 항상 과거에 묶여 있듯이 살까. 과거에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거예요. 그런 제 자신의 고민을 드러냈죠. 계속 새로운 곡을 발표하는 것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고요.

 

 

DIOR 니트 보디슈트, 블랙 펀칭 디테일 키튼 힐. COS 패널드 A라인 시스루 스커트. FRED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화이트 골드 링.


오랫동안 뮤지션으로 살 수 있는 원동력이 있다면? 글쎄요. 제 천직인 것 같아요. 직업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제게 잘 맞고. 그러니까 계속할 수 있는 거겠죠.

음악은 나를 표현하는 최적의 장르일까요? 모든 예술은 결국 자기표현이에요. 그게 처음이자 끝인 것 같아요. 얼마큼 잘 표현하고 자신이 얼마나 표출되느냐의 문제인 것이지. 그런데 결과물이 만족스러운 경우가 많지 않아요. 찾아가는 거예요. 좀 더 나은 게 나오겠지, 하면서. 언젠가는 나를 제대로 표현한 음악이 나오지 않을까요?

음악을 통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현재의 음악적 욕망에 대해 듣고 싶어요. 오, 많죠! 사실 안 해본 것이 더 많아요. 곧 새로운 곡들을 전부 발표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어요. 가요의 틀이 있잖아요. 김완선 하면 고정된 이미지가 있고. 그것에서 벗어난 것. 나를 깨보고 싶어요.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요.


확실히 늙지 않는 것 같아요. 물리적인 나이를 떠나서. 그게 음악 하는 사람들의 장점인 듯도 해요. 나이를 잘 안 먹어요. 음악을 들으면 세포가 젊어진대요(웃음). 음악 한 곡 끝내고 나면 다음 새 곡을 구상하기 시작하죠.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하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경우도 적은 것 같고.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시간도 모르고 세월도 모르고 그냥 철없이 사는 거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젊게 살았지만, 나이가 주는 중압감도 무시 못하죠. 50대에 어떻게 살아야겠다 마음먹은 결심이 있나요? 음. 아무 생각하지 말고 본능적으로 살자. 앞으로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자고 생각했죠. 머리가 아닌 마음과 감각으로. 지금 제 인생 모토예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실수할 확률이 적기 때문에 그런 결심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노! 살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했고 경험했기 때문에 상황 판단에 대한 결정은 확실히 빨라요. 하지만 늘 새로운 상황이에요. ‘과거에 이랬지?’ 하지만 단 한 번도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진 않아요. 조금씩이라도 다 달랐지.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해서 이땐 이래야 하고 저럴 땐 이래야 해… 하는 생각은 위험해요.  제 생각에 삶은… 그렇게 기를 쓰고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뭔가 있겠지, 했는데 별것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그런 의미 찾는 일에 힘 빼지 말고 매일매일 즐겁게,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으로 채워야겠구나.

 

 

EMPORIO ARMANI  더블브레스트 재킷, 보디슈트. BELL&NOUVEAU 플로럴 크리스털이 세팅된 링. 


지금 김완선을 설레게 하는 일상의 음악이 있나요? 가슴 뛰게 하는? 어릴 때처럼 막 가슴 뛰는 순간이 많지 않아요. 음…. 아델이 맨 처음 나왔을 때 심장이 뛰었던 것이 생각나고. 요즘 즐겨 듣는 뮤지션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예요. 무척 자유롭게 표현하잖아요. 몇 년 전 들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에요.

누구에게든, 무엇에든 기대고 싶을 순간엔 어떻게 해요? 음…. (한참 생각) 글쎄요. 지금은 기대고 싶을 정도로 삶이 버겁거나 힘들지 않으니까요. 재미있게 살고 있거든요. 또 음악 활동도 혼자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고. 그렇게 잘 흘러가고 있어요. 매니저 일을 하는 동생도 잘해주고 있고 든든하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최근 곡들을 찾아 들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가사도 집중해 듣는 편인데, 사랑을 노래하는 몇몇 곡이 좀… 이입이 잘 안 되죠? 저도 사랑 가사는 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유에서요? 아니, 제 옷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다른 사람 옷을 입은 듯한. 전 사랑…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게 이유일 수도 있겠어요. 이성에 대한 호감이나 매력을 느끼고 좋아하고 음미한 적은 있지만 이 사람 없으면 못 살아, 정도의 경험이 없어요. 그러니 사랑 노래가 되겠어요? 어울리지 않지.

앞으로도 사랑해서 결혼하는 일은…. 친구처럼 지낼 순 있겠죠. 그건 노바디 노예요. 그런데 같이 뭐… (손사래를 치며) 제 생활에 만족하고 제일 행복해요. 현재. 

Stylist 이민규 Hair 유다 Makeup 홍성희 Assistant 이진혜

 

 

 

더네이버, 인터뷰, 김완선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류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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