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다시 만난 소녀들

삐삐부터 제인 에어까지, 추억 속의 소녀들이 다시 찾아온다. 책 <안녕, 반짝이는 나의 친구들>은 그녀들과 다시 조우하며 만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준다.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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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였을 때 말 그대로 책 속으로 퐁당 빠졌다. 그때는 읽는 족족 삐삐였다가, 조였다가, 앨리스였다. 책 한 권에 어찌나 흠뻑 빠져들었는지 다시 빠져나오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 시간 덕분에 지금 내 일부는 여전히 삐삐이고 앨리스이고 조다. 나의 한 부분은 지금도 그들의 유체이탈이고, 그들이 꾸는 꿈이다. 


이 책의 부제는 ‘스물두 명의 전설적인 소녀들을 만나는 시간’이다. 저자 베아트리체 마시니와 파비안 네그린은 글로, 그림으로 소녀들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글을 쓴 베아트리체 마시니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이고, 그림을 그린 파비안 네그린은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멕시코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뒤 2000년에 이탈리아 최우수 그림작가로 뽑힌 작가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겪으며 살아온 이들의 공통점은 같은 소녀들을 사랑했다는 것. 이상하게 들리지만 이상하지 않다. 그들과 관계없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나 또한 그 소녀들을 사랑했으니까. 
 

소녀들도 있고 여인들도 있다. 엠마도 셰에라자드도 한때는 소녀였으니 ‘전설적인 소녀’에 넣어주자. 그 책을 읽을 때 우리 또한 소녀였고 그들은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아는 소녀도 있고 처음 듣는 이도 있다. 이미 읽은 책의 주인공은 그래서 각별하고, 아직 안 읽은 책의 주인공은 그래서 궁금하다. 소녀들은 세 그룹으로 나뉜다. 내 인생 최초의 히어로들, 어린 나에게 영향을 미친 소녀들이 한 그룹으로 묶였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만나는 새로운 세계의 소녀들, 마지막으로 내일의 나를 바라보는 사랑의 통로로서의 소녀들이 각기 모였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권 안에 있다. 세 카테고리로 나누었지만, 소녀들 하나하나의 개성을 생각한다면 스물두 개의 카테고리가 필요하리라. 영리하고, 명랑하고, 괴팍하고, 내성적이고, 욕망에 충실하고, 비극적인 얼굴들. 그들은 서로 닮았지만 무척 다르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쓴 <비밀의 화원>의 주인공 메리는 사랑받지 못하고 친구도 없는 미운오리 새끼 여자아이들에게는 말 그대로 분신 같은 존재다. 전염병으로 부모를 잃고 춥고 낯선 영국에서 살게 된 못생기고 성질도 나쁜 메리. 그 메리가 비밀의 화원을 발견하고 자기가 돌보게 된 나무들처럼 조금씩 싹트고 피어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행복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모든 성장소설이 그렇듯, 메리는 우리가 자라면서 변하고 바뀌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음을 말해준다. 


삐삐 롱스타킹의 뻔뻔함은 어째서 그토록 사랑스러운 걸까. “콩고에는 진실을 말하는 이가 한 명도 없다는 걸 너희가 알았으면 좋겠어. 사람들은 매일 거짓말만 한다니까. 아침 7시에 거짓말을 시작해서 해 질 녘까지 하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어쩌다 거짓말을 해도 용서해줘. 콩고에 너무 오래 살아서 그런 것뿐이니까. 그래도 어쨌든 우리는 친구가 될 거잖아. 안 그래?”라고 말하며 주근깨투성이 삐삐가 혀를 쏙 내밀면 우리는 도저히 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삐삐가 여러 어른을 만나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 그것은 삐삐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말한다. “혹시 문제는 어른이 아닐까?”


카린 미카엘리스가 쓴 <북유럽 소녀, 비비>의 저자는 말한다. “비비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전혀 없다. 세상 구경 좀 해보려고 학교를 빠진 것밖에 없다. 세상을 구경할 게 아니라면 이 세상이 왜 있단 말인가?” 그렇다. 하지만 너무 바른 말을 하는 책은 위험하다고 나쁜 어른들은 생각한다. 이 책은 나치로부터 출판금지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진정한 친구는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갇힌 문을 열고 나와 세상을 좀 구경하라고 우리를 꼬드기는 존재들.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의 브라다만테, <스타걸>의 수잔 캐러웨이, <내 이름은 미나>의 미나, <미스 채러티>의 채러티 티들러…. 어떤 소녀들은 책을 통해 만나기 전에 얼굴부터 익히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나하나의 얼굴은 다른 기법과 다른 시선과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을 알든 모르든, 밋밋하고 비슷비슷한 얼굴들 사이에서 이토록 생생한 얼굴을 만나는 것은 축복이다. 페이지마다 눈을 뗄 수 없는 얼굴이 불쑥 떠오른다.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새롭게 만나고 싶다. 처음 만나고 싶다. 아이였을 때처럼, 흠뻑 빠져서.

※ 이 글을 쓴 박사는 북 칼럼니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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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EDITOR : 양혜연PHOTO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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