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임수미의 오늘

열등감에서 자신감으로, 혼자만의 작업에서 협업으로, 침잠하는 생각에서 확장하는 대화로, 개인적인 사유에서 공감으로, 하나의 오브제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녹아든 공간으로. 작가 임수미는 그렇게 변했다 .

201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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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한 인물의 현재를 파악하기에 가장 수월한 도구는 아마 SNS 피드일 것이다. ‘artist_imsumi'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의 소유자인 임수미는 각종 목재와 철, 도구가 가득한 작업 현장을 열정적으로 누비고 있으며, 가끔 애드버토리얼에도 등장한다. 려원, 공효진, 손담비 등 유명 연예인의 친구이기도 하다.
소위 ‘힙하다’는 표현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오늘을 살고 있는 임수미 작가는 어릴 때 부모와 떨어져 시골에서 자랐고, 아궁이에 불을 땠고, 소에게 여물을 먹였다. 까막눈인 할머니 아래 글을 배우지 못했고, 일곱 살 끝자락에 부모라는 존재를 알았고, 또래를 처음 보았다. 어린 시절 쟁기, 호미, 낫 따위를 가지고 놀던 그녀는 필연적으로 공구를 이용해 물체를 만드는 조각과를 가게 됐다. 선택해서 간 곳인데, 사람들은 실력보다 학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세계에서 가장 평가가 좋은 미술 학교를 검색했다. 스스로 준비해 시카고 미대에 합격했고, 미국으로 떠났다.  

 


시카고에서 작업실에 박혀 작업만 하다 보니 답답했다. 뉴욕 진출을 제안받았지만, 그 제안을 받고 나니 더욱 답답함이 차올라 몰래 휴학했고 뉴욕 퍼포먼스를 끝으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는 그동안 썼던 공구를 옻칠로 묻어버리고, 작업복도 가뒀다. 작품이라는 게 고민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러움과 열등감과 야망의 상징 같았던 구두 작품에는 장례식을 치러줬다. 여기까지는 ‘아티스트 임수미의 과거’라는 한 챕터의 요약본이다.

 

지금 있는 평창동 작업실에 둥지를 튼 지 얼마나 됐나요?  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TV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 때문에 한국에 들어온 후 계속 쓰고 있는 작업실이에요. 아무것도 없던 황량한 공간에 버려진 것들을 주워다 만들었죠. 


작업실이 멋진데요. 저도 이 작업실에 오면 편안하고 좋아요. 미국에 있었을 때도 이 작업실과 비슷했는데, 그때는 제 허름한 작업실이 창피했어요. 실력보다 학력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 보란 듯이 시카고 미대에 들어갔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그곳에는 또 부자이고 세련된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계속 챌린지가 생기는 거예요. 하나둘 깨면서 살았는데, 사회 앞에 서니 또 다른 관문이 생기더라고요.

 

작업실에 틀어박혀 잠도 자지 않고 작업에만 열중하는 자신이 싫어 만든 작품. 


어떤 관문을 또 맞닥뜨렸나요? 당연히 작가가 될 줄 알았는데, 그냥 되는 게 아니었고, 방법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건방지다는 말로 되돌아오는 거죠. ‘작품을 만들어야 돼’, ‘다른 건 할 수 없어’라는 생각에만 몰입하니 점점 답답해지는 거예요.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꽤 긴 시간 힘들었어요. 그러다 그냥 놓았어요. 점점 외로워졌는데 내려놓으니 사람들도 다가오고 스스로 편해졌죠. 그랬더니 거짓말같이 일이 많이 들어왔어요. 사람들은 제 작업이 바뀐 뒤로 저를 아티스트라고 편하게 불러줘요. 작업실이 아닌 곳에서 작업하니, 더 작업을 하는 느낌이고요.


한순간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변화였네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습관이 된 거예요. 다들 잘한다며 쓴소리도 안 하면, 깨달을 수가 없거든요. 

 

아무나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이케아 같은 작업을 하고 싶었고, 모든 사람들이 끼고 있는 안경에서 알을 빼고 세상을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쓴소리해주는 사람이 있나요? 려원 언니요. TV 프로그램 <아트 스타 코리아>에서 그녀를 만난 것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심정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는데, 제 생각에 당시 려원 언니도 비슷한 상태였던 것 같아요. 사람은 서로 아픈 부분을 알아보게 되어 있거든요. 저나 언니나 누구랑 쉽게 어울리는 성격은 아니에요. 서로의 싫은 점을 상대방에게 발견하고, 서로 혼내는 거죠. 아픈 것을 드러내고 인정할 때 더 좋아지는 법이고요. 


아티스트라고 하면 흔히 자기만의 세계에 몰입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되죠. 성향뿐만 아니라 작업물 역시 개인 작업에서 협업으로 변화했어요. 개인 작업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쓰는 일기 같은 것이었어요.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것이었죠.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 공감하려면 하라는 일방향적인 것이라면, 지금은 공간을 기획하며 머무를 사람들의 이야기를 먼저 듣고 반영하는 쌍방향의 일이죠. 또 제가 만든 결과물을 보고 사람들이 영감을 얻기를 바라고요. 

 

한국에 돌아온 후 이전의 작품들과 함께 장례식을 치렀다.


공간을 기획하며 가장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이 공간에 대한 첫인상이 어떨까를 생각해요. 공간에 머무는 사람이 행복한 곳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귀찮을 정도로 묻죠. “무슨 색을 좋아해?”, “어떤 게 좋아?” 사람들도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몰라요. 사는 게 바쁘고, 남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죠. 같이 발견해가는 과정이 너무 즐거워요. 그리고 그 사람과 내가 섞였을 때 나오는 결과물은 더 특별하죠. 각기 다른 사람들의 공간을 만들지만, 그 안에 제가 묻어나오기는 하더라고요. 작업한 공간 중 정말 비슷한 곳은 하나도 없어요. 매번 놀라죠. 


공들이는 작업이 있나요?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요. 내가 배운 예술이 소수를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 제가 추구하는 건 더 많은 사람을 위한 것이에요. 전시장에 놓일 조각품이 아니라 길거리 휴지통을 하나 만들더라도 공감을 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사람에게 눈을 돌리고 싶어진 이유가 있을까요? 전 자신에게 공격적인 사람이었어요. 저처럼 남이 아닌 자신에게 해를 주는 사람이 많죠. 가혹하고, 못되게 굴고. 그런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요. 다 똑같거든요. 인스타그램으로 엄청나게 많은 DM을 받아요. 대부분 힘들고 우울하다는 이야기죠. 저도 그래요. “나도 정말 힘들었어”가 아니라 “나도 그 기분 알아”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다 힘들어, 괜찮아질 거야. 지금 울면 내일 웃을 수 있어. 저 역시 너무 바보 같았어요. 욕심이 많았고, 항상 열등감으로 작업을 했죠.


지금의 임수미 작가에게 열등감은 잘 어울리지 않는 단어인데요. 열등감은 카테고리별로 다 느껴본 것 같아요. 시골에서 할머니 밑에서 자라다 도시로 오니, 연년생 오빠는 하얗고 귀공자 같았어요. 다른 친구들도 참 깨끗하더라고요. 난 작고 까맣고 꼬질꼬질했죠. 여자인 것도 조각을 전공할 때는 굉장히 불편한 조건이었어요. 방학 때 교수님이 관련 아르바이트를 주는데, 남자들만 뽑는 거예요. 제가 더 힘도 세고 섬세하다고 따졌어요. 30킬로그램 포대를 50개씩 날라야 한다고 겁을 주시더라고요. 여자라서 숙박도 따로 해결해야 했고요. 제가 숙식 알아서 해결하고 반값만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하니, 그 이후로는 계속 부르시더라고요. 

 

최근 포토매틱의 새로운 아날로그 프로젝트인 '다크룸(@darkroom_seoul)' 작업을 마쳤다. 

 

항상 협상에 능했네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싫어질 거 같았어요. ‘안 되면 말지’ 하고 일단 도전하는 편이죠. 내가 원하는 걸 솔직하게 말해야 덜 아파요.


외형적으로도 특유의 스타일이 있어요. 보이시하다고들 하죠. 그런데 전 남자 옷, 소위 보이프렌드 룩이라고 하는 것을 입어본 적이 없어요. 힘을 많이 쓰니 골격이 달라지고, 남자들 사이에서 일을 많이 하다 보니, 표정도 좀 닮아가는 것 같아요. 절 흘끔거리기도 하고, 대놓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물어보는 사람도 많아요. 이게 한두 번이 아니니 정말 힘들었어요. 핀이라도 꽂고 다녀야 하나 하는 이상한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고민을 하게 되는 제 자신이 싫었어요. 지금은 그나마 보이시한 것을 매력으로 봐주는 시대 흐름이 있어서 다행이죠. 

 

미국 백화점에서 루부탱을 보고 느낀 미묘한 감정을 작품으로 만들었다. 부러움과 열등감과 야망의 상징인 ‘구두’. 뉴욕에서는 아무 곳에나 올려놓고 ‘전시’를 했다. 


여러 면에서 많은 것을 거쳐 평온해지고 강해진 느낌인데요. 전 박쥐 같은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지금도 친구들은 다 연예인이고. 전 여기에도 저기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해요. 이런 삶은 제가 만든 것 같기도 해요. 어느 정도에서 멈춰도 되는데, 그러지 않고 더 찾아다니는 성향이 있어요.


요즘 시대에 맞는 삶인 거 같은데요. 멀티맨? 그런데 어르신들은 하나만 하래요. 잔재주 많은 놈 중에서 잘 사는 사람이 없다고요(웃음). 


아티스트, 크리에이터, 설치미술가, 조각가 등 정말 많은 이름이 있네요. 그중 하나를 꼽자면요? ‘아티스트 임수미’요. 전 기술이 뛰어난,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현재 저의 다른 작업이나 능력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는 건 제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죠. 저도 미학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요. 지금 하는 작업을 선택한 거죠. 

 

평창동에 만들었던 책의 정거장이자 마을 사랑방 같았던 ‘스테이션 B’. 


선택과 집중이네요. 현재 작업이나 일의 양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나요? 물론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만, 일종의 유익한 스트레스예요. 일하다 죽으면 후회 없겠다는 생각으로 일하죠. 돈은 내 인생의 목적이 아니에요. 미국에 갈 때도 청바지 두 장, 티셔츠 두 장 가지고 갔어요. 인생에서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도 저주라고 생각해요. 성취감이 없고, 작은 행복을 못 느끼면 큰 행복도 느끼기 어렵죠. 인생은 단순해요. 1 더하기 1이잖아요. 공식은 정말 간단한데, 15937 더하기 83842처럼 숫자들을 자기들이 바꾸는 것이죠. 차분하게 내려놓고 생각해보면 다 풀 수 있어요. 


생각이 참 많아요. 심지어 매우 건설적인 생각들이요. 그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작업도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책을 쓰는 거요. 글을 잘 못 쓰는 걸요? 그리고 뭔가를 쓰려고 하는 순간 전 괴로울 거예요. 그냥 많은 사람을 만나면 좋을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쉽지만은 않지만, 대화하다 보면 문득 하나씩 떠오르는 게 있어요. 그런 생각이 모였으면 좋겠어요. 특히 함께 현장에서 작업하는 아저씨들은 정말 철학적이고, 낭만이 뭔지를 알아요. 단순한 이야기를 하지만, 울림이 있어요. 심지어 실력도 좋은 ‘크래프트맨’들이죠. 전 그들을 존경해요. 모든 사람이 아티스트라는 말이 맞아요. 

 

길거리에 버려진 자재를 활용해 자유로운 느낌을 살린 본스튜디오.

 

연륜을 높이 사네요. 맞아요. 작업실이 평창동에 있으니 어르신들과 대화할 기회도 많아요. 평창동에는 ‘오리지널 힙스터’들이 많거든요. 정말 오래전 ‘꾸밈’이라는 잡지를 만드신 토탈 회장님께서 1930년대 책까지 다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그 책을 다 옮기고 카페처럼 꾸민 ‘스테이션 B’를 만든 적이 있어요. 1980대부터 아이들까지 누구라도 와서 책을 보는 ‘책의 정거장’ 같은 느낌이었죠. 그때 어르신들과 정말 많이 대화했어요. 그들은 개척자고,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놓은 것을 즐기는 세대죠.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간접 경험을 하는 거예요. 내가 고민하는 걸 그때도 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위안이 되죠. 그리고 모든 것에 역사와 사연이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많은 것이 보여요. 버려진 가구도 불쌍하죠. 주인이 그 가구를 살 때는 정말 행복하고 설레었을 거예요. 당시 ‘여기에 놓으니 완벽해’라는 이야기도 했겠죠.


공감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전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를 좋아해요. 사실 변태적인 영화죠. 남의 몸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것으로, 그 사람이 보는 대로 보고 다른 생각을 하죠. 정말 재미있어요.


좋은 아티스트란 어떤 모습인가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하고, 그것들을 연관시켜서 쌓아놔야 하죠. 좋은 아티스트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꺼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행운은 준비된 자에게 주는 신의 선물’이라는 말이 있어요. 기회는 준비되어 있으면 항상 만들어지더라고요. 

WRITER Kim Su Jung

 

 

 

더네이버, 인터뷰, 임수미 작가

CREDIT

EDITOR : 한지희PHOTO : 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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