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28일. 평창동 서울옥션에서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술품 경매가 열렸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백남준, 이우환 등 내로라하는 한국 근현대 거장들의 작품이 경매장을 뜨겁게 달궜다. 특히 김환기의 ‘무제’는 김환기 작품 중 최고 낙찰가인 5억 6000만원을 기록하며 새 주인을 찾았다. 한데 이날 시선을 사로잡은 또 다른 주인공이 있었다.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장에 첫 등장한 자동차가 바로 그 주인공. 대체 어떤 차이기에? 이 차는 독일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BMW 딩골핑 공장의 50주년 기념식에 발표된 차로 1000만 번째 생산이라는 뜻깊은 의미를 지닌다. 전 세계 오직 한 대뿐인 뉴 5시리즈 딩골핑 에디션이 그것. 520d 모델을 기반으로 한 딩골핑 에디션은 올 초 한국에 배정됐으며, BMW 코리아는 이 의미 있는 딩골핑 에디션을 경매에 붙이기로 한 것. 딩골핑 에디션에는 패널 커버, 센터콘솔 등 유일한 모델임을 증명하는 에디션 배지가 새겨졌다. 무엇보다 BMW의 역사와 가치를 말해주는 의미 있는 컬렉션인 셈이다. 520d 모델의 일반 차량 판매가는 6770만원. 딩골핑 에디션의 경매 시작가는 그보다 조금 낮은 6100만원에 시작됐다. 첫 자동차 경매에 대한 열기는 예상보다 뜨거웠고, 치열한 경쟁 끝에 7500만원에 최종 낙찰됐다. 뉴 5시리즈 딩골핑 에디션 낙찰자에게는 차량 구입일로부터 8년 또는 주행 거리 16만 km까지 주요 소모품의 교환이나 차량 정기 점검 서비스를 무상 제공하며, 독일 뮌헨에 위치한 BMW 벨트, 박물관, 딩골핑 공장을 투어할 수 있는 1000만원 상당의 2인 여행 패키지가 추가로 제공됐다. 사실 이번 경매에서 주목할 것은 국내 최초의 자동차 경매라는 일차적인 이유가 아니다.    
“미술품 경매장 하면 아트 작품만을 떠올리는데, 장 프루베, 한스 베그너의 디자인 가구부터 오토바이, 자전거, 오디오, 피겨, 명품 가방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패션 아이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미술품 경매 시장의 주인공은 여전히 파인아트다. 한데 최근 몇 년 사이 패션, 라이프스타일 오브제가 미술품 경매 시장의 새로운 주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회화, 사진 등 파인아트 컬렉션에 집중된 경매 시장이 라이프스타일, 패션 등으로 그 범위가 확장된 것. 이는 달라진 컬렉터들의 취향을 말해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그림에서 라이프스타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손지성 서울옥션 홍보팀장의 말처럼 전통적인 아트 컬렉팅을 넘어 가구, 피겨, 오디오, 자전거, 자동차, 주얼리, 가방 등 우리의 삶에 가까운 라이프스타일, 패션 오브제들이 미술품 경매 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빈티지 디자인 가구 컬렉션에 대한 인기는 그림에 버금갈 정도. 실제로 최근 열린 서울옥션 경매에서는 장 프루베의 콤파스 데스크가 3100만원에, 한스 베그너 Ge 290 소파가 1100만원에 낙찰됐다. 이 밖에 콜나고 페라리 자전거가 560만원에, 카르마 오디오가 1억 3600만원, 돔 페리뇽×제프 쿤스 리미티드 에디션 5300만원, 베어브릭 ‘마스터마인드 재팬, 마스터마인드 재팬 크롬 실버’ 650만원, 에르메스 켈리28이 1440만원에 낙찰됐다.  

얼마 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새 컬렉션으로 자동차 한 대를 구입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MoMA가 구입한 자동차는 피아트 500F 베를리나로, 1965년에서 1972년 사이에 생산된 차다. 그런데 MoMA는 왜 자동차를 컬렉션으로 선택한 것일까. 피아트 500F 베를리나는 자동차 디자인과 생산을 근본적으로 바꾼 아이콘과 같은 차로, MoMA는 이 차에 담긴 디자인 역사성에 기꺼이 컬렉션을 결정했다. 현재 MoMA는 피아트 500F 베를리나 외에 자동차 7대를 컬렉션으로 소장하고 있다. 유명 미술관의 컬렉션은 개인 컬렉터들의 인식 변화에도 분명 많은 영향을 끼칠 터. 이러한 변화는 아트 컬렉팅을 넘어 자동차, 가구, 오디오, 자전거, 피겨 등 컬렉션 시장의 다변화를 예고하는 전초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아트 컬렉팅의 인기는 여전하다. 아트 컬렉팅에 관심이 많지만, 몇억원을 호가하는 미술품 경매에 부담을 느끼는 초보 컬렉터에게 라이프스타일 경매의 활성화는 반가운 변화일 터이다. “쓰지 않는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경매에 팔아 비교적 가격이 합리적인 그림, 판화를 구입하는 사람도 생겨났어요.” 초보 컬렉터도 부담 없이 아트 컬렉션에 첫발을 디딜 수 있는 기회가 된 셈이다.       
경매 시장의 다양화, 그리고 젊은 층을 끌어들일 것. 온라인 경매에 중점을 두고, 작년 4월 오픈한 서울옥션블루는 한국 미술품 경매 시장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술품은 물론 오디오, 명품 가방, 시계, 주얼리 등 보다 다양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경매 전 출품작을 사전에 볼 수 있는 프리뷰 전시가 열리고, 한 달에 1회, 많게는 4회까지 경매가 열립니다.” 오프라인 경매와 달리 상대적으로 젊고 다양한 컬렉터층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위탁이 들어오면 스페셜리스트가 진위 여부, 생산 연도, 개런티 박스 유무 등을 꼼꼼히 체크해 가격을 책정합니다. 경매 수수료는 아이템별로 다르지만 18% 전후입니다.” 철저한 검증을 통한 신뢰 확보와 다양성. 온라인 경매의 성패는 이제 거기에 달린 듯하다. 파인아트를 넘어 패션과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되는 컬렉션 문화. 우아한 취향의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이다.   

콜나고 페라리 CF1-500

베어브릭 ‘마스터마인드 재팬, 마스터마인드 재팬 크롬 실버’ 

BMW 뉴 5시리즈 딩골핑 에디션

피아트 500F 베를리나

에르메스 켈리28

한스 베그너 Ge 290 소파  

더네이버, 미술품, 경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