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된 그림 13점은 나만의 호흡, 리듬과 색채로 그린 작품으로 작가인 내 눈으로 확인한 바, 틀림없는 내 작품이다.” 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 화백의 작품 13점. 경찰은 과학적 검증 절차를 거쳐 위작 판정을 내렸고, 이우환 화백은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작가는 본인의 작품이 맞다는데, 전문 감정 결과는 위작인, 조금은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미술계의 이러한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박수근, 천경자 등 여전히 미궁에 빠진 위작 사건의 전례는 굳이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금 주목해야 할 것은 위작 논란이 아닌, 미술품 감정에 관한 구조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미술품 감정은 주로 어디에서 하나요?” 미술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들에게선 자신 없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그동안 미술품 감정을 너무 폐쇄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미술 애호가들에게마저 불신을 자초했죠. 투명한 감정 기구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한국미술감정원 백동기 원장의 지적처럼, 이우환 화백과 경찰 간의 첨예한 대립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폐쇄적인 한국 감정 기구의 시스템과 아직 체계적이고 저변화되지 못한 미술품 감정의 한계.

“우리나라에 미술품 감정위원으로 활동하는 분은 20~30명 될 겁니다. 인원이 적으니 각 감정 기구에 중복으로 활동하는 분이 많죠.” 1만2000여 명, 70개 분야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감정가들의 수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턱없이 부족한 수다. 그나마 감정 기구라야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산하의 미술품감정평가원과 한국미술저작권협회 산하의 한국미술감정원이 대표적. “2007년 감정위원 24명과 함께 서울미술품감정원이란 이름으로 시작됐는데, 2014년 한국저작권협회 산하 기관으로 발족되면서 한국미술감정원으로 공식 활동하게 됐죠.”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감정위원의 자격을 갖게 될까. 우리나라엔 국가에서 정한 감정자격증은 아직 없는 상태. “양심에 입각해 감정에 임할 수 있는 인격과 품성을 지닌 자로, 해당 분야 20년 이상의 감식안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됩니다.” 여기에 과학적 분석 전문가, 딜러, 유족 상속인, 카탈로그 레조네 편집인, 액자와 재료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관련 전문가들이 사안에 따라 참여한다.  
“이우환, 천경자 선생의 작품은 차라리 감정이 가능하지만 가짜가 많은 박수근, 이중섭을 비롯해 조각가 문신 선생이라든지, 제주도의 변시지, 그리고 황유엽 선생의 작품은 유족과의 마찰 등으로 전문가들 역시 감정하기 어려운 작가죠.” 이쯤에서 주목할 것은 카탈로그 레조네다. 이는 특정 작가에 대한 최고의 권위자가 저술한 책으로, 일종의 도록이다. 이 도록에는 작가의 모든 작품 사진, 출처, 작품의 크기, 보존 상태, 서명이 안 들어가거나 진위 논쟁을 하는 작품, 작가 서명 샘플, 소장 뮤지엄, 작품에 대해 연구를 진행한 학자의 이름 등까지 세세하게 기록된다. 그 제작 기간만도 길게는 10년에 달할 정도(만약 여러 저자가 쓴 카탈로그 레조네가 있을 경우,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한 저자의 것이 공신력을 얻게 된다). 하나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엔 카탈로그 레조네가 전무하다. 장욱진이 유일할 정도. 마땅히 대조, 비교의 근거가 취약한 상황에서 감정을 하다 보니 위작 시비 앞에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진짜를 위한 가짜

“정부나 공공 기관의 의뢰가 대부분이지만 재해로 파손된 작품의 감정가를 의뢰하는 손해사정사의 감정 의뢰가 많은 편입니다. 최근에는 중국 도자기 붐이 일면서 온라인을 통해 중국 미술품 감정을 의뢰하는 사람도 늘었습니다.” 온라인 감정이 보편화되면서 대중의 의뢰 역시 많아진 편. 생각보다 높지 않은 감정료 역시 장벽을 낮추는 데 한몫한 듯하다. 생존 작가냐 작고 작가냐에 따라, 혹은 주요 작가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가격 차가 있지만, 작품당 20만~60만원. 진위 감정이 아닌, 시가 감정일 경우 평가액에 따라 금액이 달라진다.  
“우리나라 미술품 감정 시스템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긴 합니다. 제가 몇 년 전부터 구상해온 게 있는데, 바로 미술행정(美術行政)입니다. 작가들이 제작한 모든 작품을 한곳에 등록해서 UCI 코드(미술품 유통에 따른 표준 식별을 발급받아 시중에 유통하는 시스템)를 가진 작품만 유통, 거래하게 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감정서가 필요 없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위작 논란의 불씨도 사라질 것이라는 게 백동기 원장의 설명이다. 전문 감정가의 부족과 과학적 감정보다는 안목 감정에 의지하는 상황, 자료 검증과 카탈로그 레조네 등의 부족 등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한국 미술품 감정의 세계.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흑과 백을 가릅니다. 외국은 우리나라처럼 진위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양은 물론 일본은 협회 없이, 직계 제자나 가족이 감정서를 발급해주죠. 우리나라는 특정 미술품을 모방할 경우 위작으로 보는데, 중국에서는 모방품도 인정해줍니다. 심지어 중국의 어느 경매에서는 방품(倣品)이 진품보다 더 비싸게 팔린 경우도 있죠.” 더 놀라운 건 가짜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도 존재한다는 사실. 네덜란드 블레더에 위치한 ‘가짜 미술관’에서는 오직 위작만을 전시한다. 샤갈, 달리, 고흐, 마티스, 피카소 등  위작품의 종류도 다양하다. 오스트리아 빈의 ‘가짜 박물관’은 물론 파리 위조품 박물관에선 세관에서 압수한 위조품을 전시한, 진풍경을 만날 수 있다. 한데 이들은 왜 폐기 처분해야 할 가짜를, 숭고한 박물관 안에 안치해놓은 걸까. 판매되지 않는다면 위품도 범죄 수사 면에서나 미술사적으로 상당한 평가를 받는다는 게 그들의 생각. 나아가 사라져가는 전문가의 기술을 계승하고 그들의 기법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전문가의 눈을 속일 수 있을 정도라면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다고 그들은 믿는다. “어제 이 그림은 수백만 달러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고, 전 세계 전문가와 미술 애호가들은 그 그림을 보기 위해 돈을 지불했다. 오늘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고 누구도 길거리를 건너와 그것을 공짜로 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은 변한 게 없다. 무엇이 변한 것인가?” 위작 전문가 한 판메이헤런은 위조한 페르메이르의 작품 앞에서 이렇듯 당당히 반문하지 않았던가. 그의 말마따나 작품은 변하지 않았고, 진위만 엇갈렸을 뿐이다. 아직은 먼 이야기겠지만 5000점 가까이 위작을 그린 에릭 헵번의 가짜 작품을, 그것도 한국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면? 진짜와 가짜만을 평가하는 미술품 감정의 흑백 논리를 넘어선 그 무엇. 한국 미술품 감정 시장에서 풀어야 할 숙제는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